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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정재호 / 늙어가는 집, 빼곡한 기억

강철

“내가 초등학교 1학년 이었을 때 우리 집은 새로 지은 5층짜리 아파트로 이사했다. 비록 전세이기는 했지만, 주인집 개가 우리 집 강아지를 무는 일도 없어졌고, 주인집 아들과 싸움을 하고 나면 사과를 먼저 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다. 5층 꼭대기 층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아주 좋았는데, 6학년까지 나의 소년기는 나뭇가지처럼 얽힌 동네골목길 구석구석에 바쳐졌다. 이제는 철거가 예정된 그 아파트를 바라보며 이미 떠난 사람들의 흔적과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의 절규를 마주했다. 놀랍게도 그 풍경들은 나의 과거였고 내 이웃의 현재였으며 또한 우리의 미래이기도 했다.
제인 야콥스(J. Jacobs)에 의하면 도시가 노후화 되는 것은 도시의 건물이나 구조물이 오래되어서가 아니라 도시 자체가 실패했기 때문이라 했다. 이 말은 아파트가 지어질 때부터 정확한 유통기한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거대 자본주의 도시 구조 속에서 경제적 수명을 다하면 관리가 소홀해지고 곧 용도폐기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패한 도시의 부속들에 대해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흉물스럽다고 단정하기 전에, 낡은 창틀과 어지러운 베란다가 들려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집이란 살기 위한 주거 수단임은 물론, 삶의 기억들이 빼곡히 적힌 고향이기 때문이다.”

- 작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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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과거를 복원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화가라는 직업답게 고증적인 자세와 붓 하나로 제대로 추억하고 있다. 잠시 훔쳐보고 싶었던 과거를 통해 느닷없이 현재와 미래까지 불거져 그림의 감상 시간이 길어지는 효과. 또한 예쁜 것을 억지로 탐하는 장식미술이 아니라 삶의 체취가 코를 찌르는 진솔함에도 눈물이 나지만, 이 그림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랑과 상처로 복잡하게 얼룩진 인생마다의 희로애락을 말없이 늙어가는 건물의 무미건조함으로도 충분히 전달함에 있지 않나 싶다.

※ 정재호 작가는 2007년 4월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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