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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한국화를 살리자

정중헌

정권이 바뀐 신춘 문화계에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하나는 구세대와 신세대로 동강 난 한국 영화인들이 통합 잔치를 벌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미술인들이 힘을 모아 한국화(韓國畵)를 살리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초반부터 특정 이념과 특정 코드에 경도된 얼치기 정치꾼들이 나타나 영화 현장에서 기성 영화인들을 몰아냈다. 기성 단체를 무시해 버리고 그들만의 이해집단을 만들어 예산과 사업에서 전횡을 일삼았다. 어느 장르나 뿌리가 있어 역사를 이었는데 유독 영화계는 몇몇 정권 앞잡이들이 신구세대를 무 토막 자르듯 갈라놓았다. 그 결과 구세대 영화인들은 뒷전으로 내몰렸고, 그 동안 헌신해 서 쌓아온 명성과 자존심마저 짓밟혔다. 선택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영화계인데도 완장 찬 그네들이 이념으로 편을 가르고, 나이로 선을 그어 영화계를 양분시켰다.

지금 한국 영화계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새봄에는 신구세대가 뜻을 모아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 창의적인 소재로 다시 관객들을 사로 잡았으면 한다. 지난 정권의 잘못된 정책과 조직, 예산과 인사를 바로 잡아 분위기를 일신하고, 산뜻한 도약을 위한 영화인 축제를 크게 열어 보자는 것이다. 영화계 단합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인들의 자율에 맡기고 간섭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한국화를 살리는 일은 쉽지가 않다.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우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일이 중요하다. 6백년 역사를 이어온 서울의 상징 숭례문이 한 노인의 방화로 어이없이 소실돼버렸다. 밤새 그 현장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참담하다 못해 가슴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늘 있을 때는 존재를 모르다가 불타 무너져 내리니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할 수가 없다. 그것이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담긴 전통이고 우리 핏 속에 흐르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귀중한 문화재를 방치했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어느 기관도 돌보지 않았다. 성급한 개방으로 노숙객들의 잠자리와 취사장이 돼버렸다니 억장이 무너진다. 숭례문 화재 사건은 노 정권말기의 누수와 관리 부재로 빚어진 인재(人災)며 우리 모두도 방조자로서 역사 앞에 대죄를 짓고 말았다.


한국화를 살리는 방법
숭례문 소실로 우리는 문화재의 귀중함,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새삼 눈뜨게 되었다. 판소리 명인 박동진 옹이 광고에서 외친“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가 빈 말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멋과 풍류를 즐겼다. 목기와 문방사우, 도자기와 서화로 집안을 꾸미고 가락과 소리로 운치를 더했다.

그런데 인간문화재로 명맥이 이어지는 전통 공예는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해 고사 직전인 상태다. 수묵과 채색으로 산수와 화조를 화폭에 담은 한국화는 지금 어떤가. 옥션에서는 물론 아트페어와 화랑에서 조차 외면 받고 있다. 대학마다 한국화과, 동양화과가 있는데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나와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전통 중국화와 전통 일본화는 평가 받고 대접 받고 사랑 받고 있는데 왜 유독 전통 한국화는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한옥 대신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생활환경의 급변으로 우리 것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을 이어 내려 현대화해야 할 화가들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자초한 일임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서화 부문에서도 숭례문 못지않은 전통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현대적 수용이 미흡한 것도 아니다. 근현대로 이어지는 한국화 6대가(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심산 노수현, 의재 허백련, 심향 박승무)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화업을 남겼다. 그 뒤를 이은 월전 장우성, 운보 김기창, 천경자 등의 작품 세계도 결코 미학이나 기법에서 서양미술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관심 소홀과 기획 미비로 대중과 멀어진 것이 한국화의 가장 큰 침체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시장에서 한국화의 인기가 떨어지자 화상들이 외면하고 있고 미술 전문지나 평론에서조차 한국화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 들어 미술시장은 소위 블루칩으로 불리던 몇몇 작가의 판세가 주춤하자 해외미술품 쪽으로 관심을 돌리는 추세다. 이러다가는 한국 시장을 외국 미술품 판로로 내주는 것은 아닐까 우려될 정도다.

한국화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부터 야심찬 한국화 기획전을 열어 일반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정초나 여름, 겨울 방학에 인기 있는 서양 미술품을 빌려다 블록버스터 전을 열게 아니라 청전 심산 운보 등의 주옥같은 작품을 비중 있게 기획하면 결코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대중의 관심을 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화상들도 아파트나 양실구조에 맞게 한국화를 조화시키는 입체기획을 할 필요가 있다.

신춘 화단에 한국화 전시는 가뭄에 콩 나듯 보일 듯 말 듯이다. 매스컴들 역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목기와 골동 서화까지 더불어 푸대접 받고 있다. 이대로 가면 숭례문 화재 같은 대형 참사가 한국 문화계에 불어 닥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그래서 올해 한국화를 살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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