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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문화부와 미 대사관 터에 현대미술관과 현대사박물관 나란히 짓자

정중헌

경복궁 옆 기무사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짓자는 캠페인이 다시 전개되고 있다. <기무사에 미술관이 들어서기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미술인들과 문화인들이 뜻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기무사를 옮기고 현대미술관을 짓자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기한 것은 아마도 필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1980년 대 후반 조선일보 칼럼을 통해 사간동을 미술의 거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무사 터에 현대미술관이 들어서야 한다고 제언한 것이다.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 군을 들먹이는 것은 금기였으나 당시 미술계 여론을 반영한 것이어서 뒤 끝은 없었다.
덕수궁에 있던 국립 현대미술관은 1986년 과천에 새 공간을 조성해 이전했다. 그러나 서울에서 먼데다 서울시와의 협상 실패로 진입로가 없는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진입로 문제는 사회면 톱기사까지 썼으나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이런 이유에서 서울 도심에 분관이라도 설치하자는 논의가 시작됐고, 그 최적의 자리로 경복궁 옆의 기무사가 거론된 것이다. 1993년 정부는 기무사를 교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1996년 이대원, 조병화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을 이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세우자는 건의서를 청와대와 서울시 등에 보내면서 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문화부 장관들이 나서 사간동 문화공간 조성 계획을 만들고 세미나를 열어 보고서도 냈다. 2005년 2월에는 <국군기무사 부지를 활용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시민단체가 발족해 대규모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 기무사는 우여곡절 끝에 과천에 새 청사를 준공해 10월에 이전할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기무사 자리에 미술관을 만들자는 모임이 다시 결성되고 있다. 최초의 제안자인 필자는 이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하나 발기인 명단에는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현 시점에서는 국가 전체, 또는 서울시, 더 좁혀 광화문 일대와 경복궁 주위의 문화공간 디자인을 새로 짜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부 따로, 문화계 따로, 시민단체 따로 자기주장만 해서는 효율적인 공간 디자인과 배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지금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이 원래 자리에 복원되고 있고, 그 일대를 광장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화문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대로를 국가 상징거리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광화문 열린마당과 인근 문화체육관광부 부지에‘현대사박물관(가칭 기적의 역사관)’을 건립하고, 경복궁 동벽에 위치한 국군기무사령부와 국군서울지구병원 부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대통령의 구상은 미술계의 바람과 다르다. 기무사와 병원 부지를 주차장 등 경복궁 지원시설로 활용하되 일부를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경복궁 복원 계획과 관련하여 규장각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지금 서울시는 현 청사 뒤에 현대식 청사 신축공사를 하고 있다. 불탄 숭례문도 복원을 위해 가림막이 처져있다. 광화문과 숭례문이 가림막에 둘러싸여 있고, 광화문 일대 역시 광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이쯤에서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서울의 정도심인 경복궁 일대의 공간 디자인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정부와 서울시가 다투어 계획을 발표하고 공사판을 만들 것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전문가 집단의 연구와 국민적 지혜를 모아 최상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효율적인 공간배치는 물론 신구의 조화, 건물 외관과 조경을 아우르는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 현대미술관과 현대사박물관을 나란히

필자의 개인 소견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을 신축하고, 그 자리에 세울 계획인 현대사박물관은 기무사와 국군병원 자리에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문화부와 나란히 있는 미국대사관 건물도 이전하게 되어 있는 만큼 이를 포함한 종합계획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문화부자리에 현대미술관을, 미 대사관 자리에 현대사박물관을 세운다면 미국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박물관 거리같은 국가 상징의 문화거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무사 자리는 새 건물을 짓기보다 기존 건물을 멋지게 디자인하고 재건축하여 중소형 공연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정책국 산하에 디자인공간문화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문화적 공간환경 조성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부서이다. 간판문화 개선 등 공공시설의 디자인과 국공립 시설의 공간 기획 업무도 맡고 있다. 지금 이 부서는 당인리 발전소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일, 경복궁 안의 국립민속박물관을 이전하는 일, 서울역의 구역사를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일 등 당면 업무가 쌓여있다. 그렇더라도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국가 상징부인 경복궁 일대를 세계적인 역사 문화 공간으로 가꾸는 일일 것이다.
지난 여름, 러시아와 북유럽 일대를 여행하면서 박물관 미술관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했다. 크레물린궁과 에르미타쥐박물관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비겔란조각공원도 관광객들을 끌어 모았다. 경복궁과 그 일대, 광화문과 시청 앞에서 숭례문에 이르는 서울 도심은 대한민국의 심장이고 얼굴이다. 이해관계에 얽혀 중구난방으로 개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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