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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갤러리현대 40주년 기념전

정중헌

2010년은 한국 현대사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 뜻 깊은 해이다. 6.25 전쟁이 터진 지 60주년이 되며, 4.19혁명이 일어난 지 50주년을 맞는다. 1950년대의 비극과 60년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가까스로 안정을 찾은 1970년에 문을 연 현대화랑이 40주년을 맞은 것도 한국 문화예술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이지만 우리 사회는 격변했고, 불모나 다름없던 문화예술계는 질적 양적으로 풍성해져 글로벌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은 그 흐름의 중심에 갤러리현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미술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화랑은 화가들의 창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을 갖춰 대중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감(美感)을 심어주었을 뿐 아니라 화가와 고객을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함으로써 미술품의 가치를 높이고 사회에 소통시키는 문화사업의 사명도 해낸 것이다. 한국 근현대 대표작가 대부분은 갤러리현대를 거쳤다고 자부할 만큼 창작과 유통의 중심에 갤러리현대가 있음으로 전업작가가 생겨났고 전문 콜렉터 군이 형성됐다. 갤러리현대의 40년을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로 보는 소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
대학원에서 ‘미술시장론’을 강의할 때 갤러리현대를 표상(表象, 대표로 삼을 만큼 상징적인 것)으로 삼아왔다. 한국 미술시장의 역사가 갤러리현대의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현대화랑(1987년 갤러리현대로 개명)이 문을 연지 올해로 40주년이 된다. 1959년 이대원 화백이 인수해 운영하던 반도화랑에서 1961년부터 화상(畵商) 경험을 익힌 20대의 박명자 사장이 인사동 네거리에 차린 작은 화랑이 40년 풍상 속에서 거목으로 자란 것이다.

필자는 1975년부터 조선일보 문화부 미술 기자로 현대화랑과 연을 맺어 현재의 갤러리현대까지 지켜보고 있으니 35년간 성장사의 증인인 셈이다. 1975년은 현대화랑이 사간동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한 해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기반을 다져 현재의 갤러리현대와 두가헌으로 확장하고, 신사동에 대규모 전시장을 갖춘 갤러리현대 강남, 그리고 2002년 설립한 젊은 예술가 중심의 두아트에 이르기까지의 발전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본 것이다.

화가와 콜렉터를 연결하는 미술전문지 <화랑>을 1973년에 창간하여 1988년까지 통권 60호를 냈고, 이어 <현대미술>을 16권까지 내 아티스트와 미술의 다양한 분야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도 했다. 1987년 한국 화랑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시카고 아트페어에 참가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LA 아트페어, NICAF(일본), FIAC(파리), 바젤 아트페어, 쾰른 아트페어 등에 참가하면서 세계 미술시장에 한국 작가를 알리고 교류도 하는 국제적인 갤러리로 위상을 높였다.

4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 갤러리현대가 써 내려간 미술시장의 역사는 자못 화려하다. 1970년 개관해서 첫 초대전을 박수근전으로 꾸민 것부터 대단한 안목이 아닐 수 없다. 라일락의 화가 도상봉의 작품전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현대화랑이 뿌리를 내리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2년에는 이중섭전을 열어 이중섭의 신화를 만든 모태가 되었고, 1973년에 연 천경자 초대전은 천경자 특유의 화풍과 캐릭터가 맞물리면서 관람객이 장사진을 쳤다. 이 전시로 미술이 폭발적 인기를 모으는 이벤트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 같은 축제를 계기로 현대화랑은 미술인구의 저변 확대를 주도해 나갔다.

필자는 사간동 이전(1975년) 후부터 출입을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근대 한국화 6대가로 꼽히는 소정 변관식 선생이 화랑 카운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몇 번 본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걸어 주고 팔아 주는 화랑이라는 곳이 신기하기도 했겠지만, 그 보다는 그림 값 얼마를 받아 가기 위해서였다니 화가와 화랑의 관계를 그때 실감할 수 있었다. 몇 해 후부터는 소정이 앉아있던 그 자리에 명륜동의 장욱진 화백이 앉곤 했으니 한국 현대미술사의 명당이 아닐 수 없다.

화상(畵商)의 기본은 명품을 볼 수 있는 안목과 신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파는 역할 못지않게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상품가치를 키우는 역량이 중요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상에서 40년간 험한 일, 구설수도 있었겠지만 큰 굴곡 없이 2세에게 대물림 할 수 있는 비결도 화단과 시장에서 분수를 지키며 신뢰를 잃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미술가들의 본향
현대화랑으로 개관해 1987년 갤러리현대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대’라는 미술공간에서 벌어진 전시회는 몇 가지 특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작가 선정의 탁월성이다.
개관 초기에는 동서양 구상 계열의 대가들을 집중 초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1970년부터 초기 5년간 초대 작가 중 도상봉 유화전을 5회나 열었다. 그만큼 고객들로부터 인기가 있었다는 반증이다. 개관 초기 현대화랑의 저력은 개관 첫 해에 연 박수근 유작 소품전과 1972년의 첫 기획인 이중섭 작품전에서 드러났다. 한국 미술시장에서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발전이 있었을까.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가격대가 높은 박수근 이중섭의 신화는 구상이나 박완서 같은 문인들의 역할도 컸지만 미술상 현대화랑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1985년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린 박수근 20주기 회고전은 보름간 긴 전시에도 관람객이 줄을 이어 1주일간 연장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말로만 듣던 박수근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한 것은 기획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소장가들로부터 작품을 빌려올 수 있는 정보력과 공신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999년 1월에 이중섭이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문화인물로 선정되어 열린 이중섭 특별전 역시 관람객들이 밀려들어 40일간 장기전시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중섭의 오리지널 유화와 은박지 그림뿐 아니라 부인 이남덕 여사가 소장해오던 엽서그림과 사연이 함께 선보인 입체 전시도 주목을 받았지만 예술도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대중화가 가능함을 보여준 인상적인 기획이었으며, 최초로 화랑 관람객 9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남겼다.

세계를 일주하며 채색과 풍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일군 천경자라는 개성 넘치는 화가가 없었다면 한국 화단은 썰렁했을지도 모른다. 이 열정적인 화가 천경자는 1970년대 이후 신작 발표는 현대화랑에서 했다. 70-80년대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대중과 소통했던 천경자 화백이 뉴욕의 큰따님 댁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2006년 갤러리현대는 ‘천경자,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라는 멋진 타이틀의 종합전을 열었다. 대표작은 물론이고 처음 공개되는 미완성 스케치들, 의상과 장신구와 해외여행 수집품들까지 천경자 화백의 손때가 묻어있는 전시품들은 관람객들을 매료시켰다.

둘째는 화랑과 화상의 으뜸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전시기획력이다.
현대화랑을 거쳐 간 큐레이터들이 후에 독자적 화랑을 차린 사례도 있지만, 지난 40년간 매년 한 두 차례씩 해온 자체 기획전은 매우 상업적이면서도 참신함을 잃지 않았다. 상업화랑의 기본인 이윤추구를 감추려하지 않으면서 큐레이팅의 기본인 시대를 종합할 것인가 또는 시대를 리드할 것인가 하는 양면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온 것이 갤러리현대만의 노하우이자 ‘힘’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를테면 몇 주년 개관전이나 신춘 초대전들은 창작인들을 배려하고 고객 서비스를 내세우며 화랑의 이윤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기획이다. 이에 비해 1990년대 이후 기획인 ‘현대미술의 기호와 상형전’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전통과 현대의 만남’ 등은 한국미술의 한 조류를 정리하고 한국적 특성을 찾아보려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 특히 1999년 3부로 나뉘어 열린 ‘한국미술 50년전 1, 2부’와 ‘한국조각 50년전’은 상업화랑이 한국미술 반세기를 독자적 시각으로 재조명 재평가했다는 점에서 중량감 있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기획의 다양성이다.
사실 미술 창작인들이 갤러리현대의 문턱을 넘기란 매우 힘들다. 창작인구의 급속한 팽창도 원인이지만 현대미술 분야가 세분화되고 있어 상업화랑이 모든 장르를 수용하기가 벅차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같은 여건 속에서도 갤러리현대는 어려운 조각전시회를 비롯하여 서예와 사진, 도자-금속-섬유 등의 공예작가전을 꾸준하게 열어왔다.

넷째는 고객서비스가 남달랐다는 점이다.
간혹 외국인들이나 지인들이 필자에게 서울에서 어떤 화랑, 어떤 전시회를 보면 좋으냐고 질문하면 필자는 서슴없이 갤러리현대에 가보라고 권해왔다. 그만큼 격이 있는 전시회가 열려 크레딧을 보장하고, 관람객들이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혹 미술품 값이 너무 고가여서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관람객들을 위해 특별한 전시회를 연 것도 서비스 차원의 배려라고 볼 수 있다. 1993년에 연 ‘현대미술 100인의 열정전’, 1998년에 연 ‘호당 가격 없는 작품전’ 등이 그것이다.

다섯째 필자가 좋아하는 갤러리현대만의 독특한 기획전들이다.
1999년의 ‘김환기 25주년 기념전’과 한용진, 오수환, 이영학의 작품들로 꾸민 ‘큰 산의 세 물결전’, 그리고 2006년 정말 기분 좋게 감상한 ‘김환기 김창열 이우환전’ 등은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대표작들만 가려 뽑은 안목, 관람객 위주의 전시 형태는 갤러리현대의 장점이다. 특정 작가의 작품은 그 화랑에 가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데 갤러리현대는 그 같은 작가를 비교적 많이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매력 중의 하나다.

여섯째는 갤러리현대가 지난 40년간 훌륭한 전시들을 해왔지만 그 위상이나 규모에 비해 신인 발굴은 좀 안이한 편이었고 기성 작가 역시 이미 검증되고 네임 벨류를 쌓은 작가들을 영입 했다는 비판을 들을 여지가 없지 않다. 대가들 위주로 초대하다 보니 신인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적었을 것이다. 그대신 해외에서 활동 중인 화가들을 국내에 소개한 업적은 평가할 만하다. 갤러리현대를 통해 국내는 물론 국제적 명성을 얻은 화가가 더 많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백남준은 다른 화랑과 먼저 연결되었지만 갤러리현대와 궁합이 맞은 것 같다. 백남준의 작품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백남준이 1990년 7월 갤러리현대 뒤 한옥 마당에서 펼친 진혼굿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이벤트였다. 해외에서 살았지만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던 그가 요셉 보이스를 위한 진혼굿판을 벌인 것은 Canal Plus TV를 통해 유럽전역에 한국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궁극적으로 요셉 보이스를 뛰어넘으려는 천재적 발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감(美感)의 전파
갤러리현대는 40년동안 작가의 창작품을 화랑에 전시, 수많은 관람객들의 미의식을 일깨워 주었고 색채를 통한 행복한 감성을 안겨주었다. 필자는 그것을 미감(美感)의 전파라고 부르고 싶다. 1970년대부터 경제성장에 드라이브가 걸리면서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겼고, 바로 그러한 시점에 현대화랑이 개관해 본격적으로 미술작품을 보여주고 매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화가는 환쟁이 취급을 받았고 그림은 얻어 가지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런 시절에 화랑을 열어 그림을 걸어주고 팔아서 돈까지 주니 화가들에게 현대화랑은 사막의 오아시스나 다름 없었다.

누구나 마음만 내키면 예술가들의 혼과 기가 담긴 예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생활의 여유를 갖게 하는 멋진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이 서비스를 40년 동안 한결같이 해왔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큰 업적이며 이 나라 여러 분야 발전에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제언
한국화에 대한 재조명 재평가를 갤러리현대를 중심으로 여러 화랑이 한국화를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은 일본화, 중국화가 서양의 미술보다 우위에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한국화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심지어 6대가들의 그림 값은 서양화의 꼬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 정도의 경제 수준이면 세계의 현대미술을 수용하고 유통해야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한국화의 위상부터 바로 세워야 교류가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갤러리현대는 이미 10년 전 30주년 기념전 인사말에서 글로벌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미술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70년대에서 글로벌 세계로 들어선 오늘날까지 전환과 변화를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60년대 박수근에서 현재 백남준에 이르기까지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여러 작가 분들과 한 길을 걸어온 것에 긍지와 보람을 느낍니다. 그동안 미술애호가분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성원으로 오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갤러리현대는 2세 체제로 전환하면서 여러 분야로 활로를 트고 있다. 두아트도 그 중의 하나다. 두아트는 갤러리현대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신선한 작품과 활동을 소개하며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 두아트는 업투데이트한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세계와의 교류도 해왔다. 젊은 층의 고객이 늘어가고 미감이 발달하는 추세에 맞는 사업 확장이라고 보며, 이제 우물안 신세로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낙오될 수 밖에 없고 젊은 트랜드는 필수일 수 밖에 없다.

다만 노파심에서 한마디 한다면 40년 전통과 새로운 트랜드를 현명하게 조화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갤러리현대의 최대 장점은 브랜드 파워이며, 그 브랜드 파워를 만든 주역은 화가와 고객들이다. 새 것이 좋다하여 그 같은 덕목들을 무너뜨리면 전통과 명예를 이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필수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제2의 백남준 같은 큰 작가의 많은 배출을 기대한다.

40주년 기념전을 다시 한번 축하하며. 더욱 열린 문화공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필자가 50주년 기념전을 보게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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