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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이중섭 '뭉텅이 그림' 실체 밝히자

정중헌

이중섭은 박수근과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다. 이들의 작품은 1점당 평균 수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한 고서수집가가 이중섭 유작 650점과 박수근 미공개작 200점을 갖고 있다면 이건 엄청난 일이다.

화단에서 파악한 이중섭 작품은 유화 100여점에 연필소묘·엽서화·은지화(銀紙畵)·수채화를 합친 330여점 등 430점 정도다. 이 중 삼성미술관 리움이 25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림값이 비싼 것도 이런 희소성 때문이다.

한데 공개되지 않은 수백 점이 새로 나타났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다. 값으로 쳐도 수천억원대에 달한다. 진품(眞品)이라면 국가의 재산이고 경사지만 가짜라면 범법행위일 뿐 아니라 세계적 망신이다. 한국 미술시장을 뒤흔드는 큰일이 벌어진 것이다. 핵심은 미공개작의 실체가 무엇이냐다. 그런데 진위(眞僞) 논란이 일어난 지 3개월이 되도록 이 뭉텅이 그림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유족이 공개한 몇 작품을 둘러싼 감정(鑑定) 시비와 고소 공방만 거듭되고 있다. 지금 시급한 것은 뭉텅이의 정체며 그 이면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다.

사건이 불거진 것은 미술품감정협회가 서울옥션이 의뢰한 이중섭의 드로잉 ‘물고기와 아이들’을 가짜로 판정한 지난 3월 초다. 도상(圖上)이 뒤집힌 데다 밀도가 떨어진다는 감정위원들의 판단에 이중섭의 둘째 아들 태성씨는 50년간 소장해온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서 이중섭의 작품 수백 점을 소장하고 있다는 고서수집가 김용수씨가 나타났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이 뭉텅이 그림을 “70년대 초반 서울 인사동 고서점에서 한꺼번에 샀다”고 밝혔다. 태성씨도 아버지 그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했으나 숫자의 공개를 꺼렸다. 더욱이 태성씨는 이중섭예술문화진흥원을 설립해 기념사업을 기획 중이었고 서울방송(SBS)이 미공개작 전시사업과 다큐멘터리 제작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김용수씨와 태성씨의 관계를 심상치 않게 보는 일부 화상들은 서울옥션이 그들 소장품 중 일부를 유통시키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중섭의 미공개작이 700~800점에 달한다. 이에 대해 화상과 평론가들은 물론, 화가의 조카까지도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기획자는 “이중섭 작품 중에는 미완성작도 많고 습작이나 삽화 형식도 적지 않지만 미공개작이 수백 점이라는 추정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했다. 얽히고설킨 이번 사건의 실타래는 소장자들이 나서서 풀어야 한다. 그들이 진정 떳떳하다면 작품 전모를 공개하고 평가를 받아야 한다. 때마침 리움에서 ‘이중섭 드로잉’전을 열고 있어 양쪽을 비교해 보는 것도 실체 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술품 감정은 과학적 분석도 필요하지만 전문가들의 안목(眼目)이 절대적이다. 이중섭 그림은 모방하기 어려운 골법용필(骨法用筆)과 기운생동(氣韻生動)의 선묘적 특성이 숨겨 있어 진짜와 가짜의 식별이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래도 안 되는 경우 과학적인 감정을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수사로만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범(汎)문화계 또는 범미술계가 나서 이중섭·박수근 뭉텅이 그림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전문가들로 진상조사팀을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그 결과 의혹이 나타나면 검찰이 수사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수집가 김용수씨, 둘째 아들 태성씨, 서울옥션 관계자, SBS 취재 및 사업팀, 이중섭예술문화진흥원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일에 협조해야 한다. 감정협회도 가짜라는 증거와 감정결과를 내놔야 하며 내막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화상(畵商)들도 입을 열어야 한다.


조선일보 2005. 5. 31 태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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