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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광주 비엔날레의 변화와 리움의 개관

정중헌

지난달 미술계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그중에도 광주 비엔날레의 변화와 삼성이 지은 리움(Leeum)의 개관은 특기할만하다. 서울에 세계적인 미술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 광주 비엔날레가 세계 속의 미술축제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올해 10년을 맞는 광주 비엔날레(11월 13일까지)는 예년에 비해 한결 정리된 느낌을 주었다. 그간의 네차례 전시가 주제의 난해성과 의욕의 과잉으로 다소 산만했던 것에 비해 올해는 작품 수를 줄이고 공간을 널찍하게 활용함으로써 관람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먼지 한 톨 물 한방울’이라는 올해 주제도 전시장을 둘러보기 전까지는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것이 동양적 사유에서 건져낸 담론이라 하더라도 현대미술로 소화해 내기에는 모호하고 벅차다는 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구심은 ‘먼지’ ‘물’ ‘먼지+물’ ‘클럽’으로 나뉜 주제별 전시장을 둘러보며 말끔히 가셨다. 오히려 관념적인 화두를 현대적인 언어로 읽어낸 작가들의 상상력이 무디어진 관객의 사고에 신선한 충격을 가했다. 비엔날레를 보는 재미는 관객과의 소통 방식, 특히 작가들의 새롭게 뒤집어 보는 문화읽기를 통해 형상화된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 아닐까.
제 1 전시장에서 만난 중국작가 리 티엔, 쑨 위엔, 펑 위의 ‘하나 또는 모두’는 뒷통수를 맞은 것처럼 강렬한 인상을 안겼다. 인간은 죽어 한 줌의 흙이나 재로 변하는 먼지같은 존재다. 이들은 화장장에서 타고 남은 사람의 뼛가루를 갈아 거대한 분필기둥을 만들었다. 그 뼛가루기둥 앞에서 그것이 나의 분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싹 한기가 엄습했다.
한국작가 박불똥은 연탄을 탑처럼 쌓아올린 후 일부는 무녀뜨려 ‘불후?진폐증에서 삼림욕까지’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나무가 썩어 석탄이 되고, 석탄가루를 찍어내 연탄을 만든다. 그런데 이를 캐는 광부들은 진폐증에 걸리고 연탄이 뿜어내는 가스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이같은 생태계의 순환현상에 결국 치명상을 당하는 인간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중국작가 위에 민 쥔의 ‘전투’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포복절도 하는 인간군상의 뒤편에서 행해지는 각가지 만행들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일본작가 쿠마 켄고와 토리미츠 모모요의 ‘지평/시야’란 인스톨레이션이 던진 메시지도 강렬했다. 100개 정도의 움직이는 인간 로봇들이 연출하는 비지니스맨들의 경쟁과 야욕은 전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쟁과 사회 갈등, 인간 소외 등 현대의 많은 문제들을 비쳐내고 있지만 매우 관념적이거나 상징성이 강해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고 전문적이었다. 청소년들과 중년 관람객들이 뻥튀기가 수북한 ‘행렬달빛소나타’와 여고생 참여관객이 제안한 ‘정은미용실’에 몰리는 이유는 작품이 시사하는 대중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비엔날레를 재미있게 보려면 도슨트(전문지식을 갖춘 안내인)의 설명을 듣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번에 투입된 도슨트들은 단순한 자원봉사가 아니라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가이드 역할을 함으로써 전시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개개인의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2004 광주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을 참여자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60여명의 세계 각국, 다양한 계층의 관객을 선발하여 창작자와 짝을 이뤄 작업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비엔날레에 처음 도입된 만큼 어떻게 평가될지 지켜보아야겠지만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에서 문화 생산자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만하다. 관객에게 한발 더 다가서려는 노력을 보인 광주 비엔날레는 주제와 내용에 독자성을 확보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반면 주제가 너무 현학적인데다 설치 작품에 치중해 관객이 보고 즐길만한 축제적 요소가 적은게 흠이었다.





리움의 문턱 낮추기를 기대
삼성이 서울 한남동 부지에 신축한 ‘리움’은 건물 자체가 세계적인 명소가 될만한데다 국내 최대의 컬렉션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강남 교보빌딩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스위스)가 고미술 전시관 ‘뮤지움 1’을,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현대미술 전시관인 ‘뮤지엄 2’를, 그리고 네덜란드의 렘쿨하스가 삼성어린이 교육문화센터를 맡아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현대 건축의 앙상블을 이뤄냈다는 것은 건축계의 토픽이 아닐 수 없다.
공개된 ‘리움’은 명성 그대로 개성을 뽐냈다. 엄청난 건축비를 투입한 결과지만 현대의 다양한 건축술과 신소재들을 선보였고 환경친화적인 디자인도 돋보였다. 다만 작가들의 발언이 너무 강해 전시작품이 건축에 눌리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아뭏든 건축만으로도 한국의 문화랜드 마크가 되기에 충분한 리움은 고미술이나 현대미술 컬렉션에서도 세계 유수의 사립미술관과 겨누어 손색이 없다는 점에서 한국을 대표할만 하다.
이병철-이건희로 이어지는 ‘리(Leeㆍ李)’가의 고미술 수집품들은 국보만 36점, 보물이 96점에 이른다. 이를 전시하는 보타의 ‘뮤지움 1’은 4층에서 나선형 계단의 동선을 타고 이동하게 설계되었다. 습도 온도는 물론 최첨단의 도난방지 시설을 갖춘 리움은 모든것이 최상이지만 우리 조상의 숨결과 손길을 느끼기에는 왠지 부자연스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장 누벨의 현대미술관 역시 국내외 거장들의 걸작 컬렉션이 볼만하지만 인위적인 공간 배치로 인해 감흥이 단절되는 아쉼움이 컸다.
이만한 미술관을 가졌다는 것은 한국의 자랑이다. 이제는 얼만큼 일반과 거리를 좁히느냐가 관건이다. 최고의 시설에 최고의 수장품, 삼성다운 최고의 관리와 서비스로 최상의 관객을 모시는 삼성의 정신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문턱을 낮춰야 한다. 미래의 고객이 될 초중고생들에게 대폭 문호를 개방하고, 한달에 하루 정도는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무료 초대하는 여유를 보인다면 삼성 이미지 확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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