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Something New’로 세계에 우뚝 선 김기덕 감독과 한국영화의 과제

정중헌

‘주제’와 ‘접근방식’과 ‘표현방법’의 새로움.

올해 베를린과 베니스 양대 영화제에서 감독상 2관왕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의 무기는 ‘섬싱 뉴(Something New)’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데뷔때부터 매우 도발적인 주제를 다뤄왔다. 첫작품 ‘악어’에서 ‘섬’ ‘수취인 불명’ ’사마리아’ ‘빈집’에 이르는 그의 작품들은 위악적이고 잔혹하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밑바닥 인생을 훑어내는 시각이 날카롭고 생소한 소재 자체가 신선한 충격을 주고있다.
최근 국제영화제 수상작을 비롯한 출품작들의 두두러진 경향은 ‘이야기의 회복’이다. 근친상간이나 동성애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등 기존의 인륜도덕으로는 상상조차 못했던 파격적인 주제와 소재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인접예술 전반으로 번지는 이같은 금기파괴 추세는 이제 현실의 잣대로 제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거세다. 금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차지한 마이크 리 감독의 ‘베라 드레이크’는 낙태이야기를 다뤘고,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마 아덴트로’는 안락사 문제를 제기했다. 김기덕 감독은 원조교제를 다룬 ‘사마리아’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을 그린 ‘빈집’을 통해 현대인의 소통과 소외를 담아냈다. 그의 잇단 수상은 유럽의 정서와는 다른 강렬한 내러티브가 평가를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감독의 접근방식도 남다르다. 작가주의 영화지만 주제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재미도 소홀히 하지않는 치밀함이 ‘김기덕표’의 매력이다. 어느 평론가는 김기덕 작품세계를 ‘작가주의와 상업영화. 이야기와 스타일을 결합시킨 퓨전영화’라고 평했을 만큼 묘한 맛을 풍기는게 장점이다. 한때 미술을 전공했다는 김기덕 감독의 영상은 신표현주의 회화처럼 강렬하고 표현 방법 또한 실험성이 강하다. 그가 이례적으로 구도자의 삶을 관조한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너무도 유려한 영상미로 구미관객들의 호응을 얻고있다.
김기덕 감독의 또하나 미덕은 상업영화의 주류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저예산 독립영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제와 내러티브구조, 표현방식만 결정되면 속전속결로 영화를 완성해내는 것이 그의 특기다. 2월에 베를린에서 수상한 그가 9월 베니스에서 다른 작품으로 감독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역시 그만의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은 국제영화제의 평가와 달리 국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비판자들은 그가 선택하는 소재와 표현이 잔혹스럽고 엽기적이라고 혹평한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국내 보다는 국제영화계에서 일찌기 독창성을 인정받으며 미래를 이끌 대표감독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한국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므로써 세계 3대 영회제를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과는 달리 최근 국내 영화계는 화려한 잔치가 끝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렵게 되찾은 한국영화 관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영화가 안고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찾아내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는 관객 점유율이 아직 50%을 넘고 있지만 겉만 화려할 뿐 속은 곪아가는 징조가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올 상반기 제작된 32편중 22편이 흥행에 실패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점유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편당 채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기획이나 생산라인에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관객들은 요즘 보고싶은 한국영화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여파가 워낙 큰 탓도 있겠지만 눈길을 끌만한 ‘매혹적인 영화’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소재제약과 가위질로 홍역을 앓던 한국영화는 이런 규제가 풀리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남북 분단을 소재로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블록버스터시대를 열면서 한국영화는 매년 고성장을 지속해왔다. 투자와 배급이 안정되고 창의력 있는 인재들이 모여든 것도 밑거름이 되었지만 가장 큰 성공요인은 대중의 문화코드를 간파한 마케팅전략이 맞아떨어졌다는 점이다.
‘조폭’과 ‘엽기’를 코드로 한 ‘친구’와 ‘엽기적인 그녀’ ‘신라의 달밤’등이 한국영화 붐을 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중적인 현상들은 반짝 유행이 지나면 대중은 이내 식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한탕’을 꿈꾸는 제작자들은 ‘국화빵’같은 아류를 찍어내 흥행실패를 자초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과제

한마디로 한국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소재의 벽에 갇혀버린 상상력 빈곤이다. 세계영화의 조류는 끝없이 지평을 넓히고 표현의 심도가 깊어지는데 반해 우리는 흥행만을 노려 판에 박은 장를에 엇비슷한 소재만 되풀이 하다보니 관객이 외면하는 것이다. 한때 전세계에 붐을 일으켰던 홍콩영화가 망한 것은 이소룡식 액션이 한계에 이르자 코믹요소를 가미시킨 저질 코미디를 양산했기 때문인데 우리가 그 전철을 밟고 있다는게 문제인 것이다.
소재가 빈곤한데 색다른 것처럼 보이려니 인기스타를 써야하고. 판촉과 홍보 등에 엄청난 마케팅비용을 투입해 과대포장을 하는 것도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병폐다. 흥행을 예측할 수 없는데도 배우들은 이름값으로 2중3중의 러닝개런티를 요구하고. 여기에 제작비 절반수준의 마케팅비용을 쏟다보면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는 10편에 1편꼴도 안된다. 더우기 투자자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개성없는 짜깁기 영화가 나오는 것도 패인중의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김기덕 감독의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의 의미는 크다. 우선 소재의 벽을 과감히 깨부시고 상상력을 무한대로 넓히는 창의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한국영화는 경쟁에 살아남기 힘들다. 지금 우리영화의 소재폭은 케이블이나 위성TV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TV에서 다루는 주제나 표현의 수위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지 오래다. 그런데 오히려 영화가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누가 흥미를 가지겠는가.
대박이 몇번 터졌다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건비며 제작의 비능률이 빚어내는 손실도 한국영화의 전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가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지상파 TV에 의존하는 홍보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가 체질을 강화하려면 젊은작가들의 실험작품과 개성있는 감독들의 예술영화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기덕 감독의 세계영화제 석권은 매너리즘에 빠지려는 한국영화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리라고 본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