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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영화인들은 왜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려는가

정중헌

스크린쿼터가 뭐길래

스크린쿼터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최근 영화인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조정을 검토할 때”라고 한 말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영화계는 ‘절대 불가’라며 사수투쟁을 불사할 태세다.
스크린쿼터가 뭐길래? 일반인들은 의아하기만 하다. 스크린쿼터란 한마디로 자국영화를 보호 육성하자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연간 146일 이상 한국영화를 상영토록 의무한 한 것이다. 1967년부터 시행됐으니 꽤 오래됐으나 정착된 것은 몇년밖에 안된다.
그런데 미국은 이 제도를 폐지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해왔고 한미간 무역과 통상 협상때마다 이를 연계시켜 한국정부를 압박했다. 정부가 축소 입장을 밝힌 배경도 98년 시작된 한미 투자협정(BIT)협상에서 줄기차게 쿼터폐지를 요구한데 기인한다.
스크린쿼터가 국익의 걸림돌처럼 돼버린 것이다. 경제 논리로 보면 불합리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작은 문제때문에 큰 것을 잃는다는 비판도 나올만 하다. 더우기 한국영화가 어려울 때라면 그같은 보호제도가 필요하지만 요즘처럼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는데도 ‘절대 불가’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우리영화를 지켜본 필자는 영화인들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한마디로 한국영화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스크린쿼터라는 마지노선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보면 미국의 끊임없는 폐지요구가 우리영화를 살리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한국영화가 관객 천만시대를 돌파할 만큼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지만 불과 5~6년전만 해도 우리영화는 관객에게 외면당했다. 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한국영화는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침체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렸다. 소재제약과 검열 등 당국의 지나친 규제가 숨통을 쥔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외화 수입권 따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 영화정책이 우리영화를 망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무역보복’이라는 협박까지 하며 한국의 영화시장개방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영화인들은 극장에 뱀까지 집어넣으며 미국영화 직배저지투쟁을 벌였지만 결국은 내부적인 붕괴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들의 대작이 쏟아져 들어왔다. 물량이나 수준에서 비교조차 안되는 한국영화는 벼랑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판에 미국은 스크린쿼터 폐지 또는 축소 압력을 가했고 우리 정부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자 98년 영화인들은 광화문으로 몰려나와 극한 투쟁을 벌인 것이다.





상승 기운 꺾지말아야

그러나 죽어가는 한국영화를 살린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이었다. 88년 영화인들이 궐기한 미국영화 직배반대운동은 우리영화와 우리 문화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주었다. 또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벌이면서 한국영화가 살 길은 우리영화 잘만드는 것 밖에 없다는 자각을 일깨운 것이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소재선택이나 작품의 질이 나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장개방으로 스크린 수가 늘어났고 인재와 자본이 영화로 쏠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시장개방과 스크린쿼터 압력으로 설 땅을 잃게된 영화인들의 자구정신이 한국영화를 살렸다고 필자는 믿고있다.
영화인들이 광화문 거리에 나와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을 벌이는데 자극받아 필자는 99년 ‘우리영화 살리기’란 책을 출간해 지난 20여년간 미국의 집요한 압력에 우리 영화인들이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정리했다.
그 책에서 필자는 ’21세기 문화전쟁에서 우리 문화주권을 사수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우리 정서를 이어주기 위해서도 한국영화는 살려야 한다. 스크린쿼터 지키기는 미국의 영화시장 독점을 막기위한 우리의 자주적인 문화운동’이라고 감히 주장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스크린쿼터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어섰으니 응당 보호막을 거두는게 시장논리 아니냐는 주장이 거세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미투자협정의 걸림돌을 제거하여 국익을 챙기자는 것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스크리쿼터제가 있다고 해서 할리우드 영화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내시장의 파이가 커져 재미 있으면 외국영화도 얼마든지 관객을 모을 수 있다. 세계시장의 80%이상을 점유하는 미국영화가 한국시장까지 석권하겠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통상이나 투자협정에 스크린쿼터를 물고 늘어지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한국영화의 높은 점유율을 이유로 꼽지만 속내를 보면 몇편이 잘 될뿐 아직 시작일 뿐이다.

영화감독 출신이자 쿼터 사수에 앞장서온 이창동 장관이 한 입으로 두 말한 것도 모양새가 좋지않다. 문화주권이나 문화의 다양성보다 경제적 실리가 우선이라면 국무위원직을 그만두고 다음 장관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영화인들도 투쟁보다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문화의 정체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풀어나가야 영화의 선택자이며 소비자인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WTO협상에서도 문화분야는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마당에 당근 몇조각으로 한국영화의 기운을 빼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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