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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제작자와 건축주의 왕따현상

정중헌

1993년 4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장안의 화제를 모으며 연일 관객이 밀려들 때의 일이다. 야근을 하던 필자에게 자정이 넘어 전화가 걸려왔다. ‘서편제’를 제작한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내일 영화사 문닫겠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뜬금이 없어 무슨 얘기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흥분된 어조로 “영화 제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처럼 영화가 빅히트를 치고 있는데 제작자가 느닷없이 영화사 간판 내리고 영화와 연을 끊겠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불과 몇시간 전에 영화기자들과 어울려 화기애애한 회식을 하고 기분좋게 헤어졌는데 왠 영문인가 싶었다.
자초지종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밤늦게 귀가해 신문을 펼쳐보다 울화가 치민 것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기 한 페이지에 걸쳐 ‘서편제’ 특집을 실었는데 지면 어디를 뒤져봐도 제작사나 제작자 이름은 없더라는 얘기였다.
“영화가 어디 감독 혼자 만드는 겁니까. 온갖 매스컴이 감독만 치켜 세우는데 그럼 제작자는 도대체 뭡니까. 제작비 없이 영화가 완성됩니까. 그리고 돈만 별려고 했다면 영화 아니고 다른 사업했을 겁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제작자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데 영화사는 해서 뭘 하겠습니까.”
그의 하소연은 절절했다. 우리영화를 살리려면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아야 한다면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과 3총사를 이루어 ‘장군의 아들’을 시리즈로 제작해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영화계에 활로를 연 이태원 사장은 충무로가 인정하는 영화매니아다. 제작자로서뿐 아니라 기획자 겸 프로듀서로 현장을 뛰어 다니며 배우와 스태프를 독려해온 그로서는 장사꾼 취급하며 거명조차 않는 세상 인심에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음날 단성사 앞에서 다시 만난 이 사장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운함의 대상은 신문 방송 등 매스컴이었지만 이 일로 임 감독과의 관계도 서먹해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중재로 임 감독과 화해를 하고 영화사 문도 닫지 않았지만 문화예술종사자들이 되새겨 볼만한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서편제’는 관객들이 몰려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 시대를 열며 국내 영화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일이 있은 후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임권택 감독은 물론이고 상을 받는 배우나 스태프들은 수상소감 때 한결같이 “제작자인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은 것이다.
그 후로 필자는 영화나 책을 소개할 때 영화사나 출판사 이름을 명기하도록 했고, 공연예술 분야도 되도록이면 공동작업자 이름을 많이 넣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도 아직껏 개선이 안되는 분야가 건축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신축건물을 보도할 때 건축가나 설계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건축가들은 기자들이 의도적으로 건축가 이름을 빼는 것 아니냐고 불쾌감을 표시할 정도다.





필자는 얼마전에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주거를 곁들인 갤러리 건물을 지었다. 다행히 좋은 건축가를 만나 예술마을 내에서도 화제를 모으는 명소로 꼽히고 있다. 건축학도들의 견학이 끊이지 않고있고, 건축전문지와 여러 잡지에 소개되고 있다.
건축에 문외한인 필자는 건축가의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애썼다. 준공식 때도 건축가 이름을 앞세우고 그 뒤에 시공자, 건축주 이름은 맨뒤로 돌렸다. 팜플렛을 만들 때도 건축가 이름 밑에 건축가가 붙여준 건물이름과 컨셉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았다. 잡지 등에 소개될 때마다 담당자에게 건축가 이름을 빼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한데 필자는 최근 ‘서편제’의 제작자 심정을 이해할만 일을 당했다. 전통있는 건축전문지 ‘공간’ 4월호에 필자의 건축물 사진이 표지와 포스터를 장식했고, 이를 설계한 건축가의 특집이 실렸는데 어디를 살펴봐도 건축주의 이름을 찾지 못한 것이다. 무려 20여 페이지에 걸쳐 헤이리 작품이 실렸는데 건축가만 있고 건축주는 보이지 않다보니 솔직히 소외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공간’의 편집의도가 건축가에 대한 집중조명이고 그중에도 최신작인 헤이리 건축물에 비중을 둔 것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다. 더우기 건축주 중에는 자기 신상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렇다해도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건축주가 없다면 아무리 설계가 기발해도 모형이 아닌 완성품을 소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건축사진 역시 마찬가지인데 건축주 동의없이 사진작가만의 판권이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 건축주가 난관을 무릅쓰고 하나의 공간을 만들었다면, 더우기 그것이 상업목적이 아닌 문화공간이라면 건축가 못지않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전문지 편집자는 특집기획단계에서 건물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며 건축주 이름을 밝힐지 여부도 당사자와 상의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건축물 홍보해 주는데 웬 군말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전근대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작은일 같지만 이런 사례들이 문화계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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