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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고궁박물관

정중헌

러시아의 크렘린 궁(宮)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에는 제정(帝政)시대의 황실유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표트르 대제의 왕관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옥좌(玉座), 예카테리나 2세 여제가 탔던 황실마차 등은 눈이 부실 정도다. 유럽 왕실에서 바친 금은 세공품과 각종 전리품들은 제정 러시아의 위세와 품위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말안장까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극단의 사치는 농민혁명이 왜 일어났는지를 느끼게 한다.






▶중국 역대 왕조의 유물을 보려면 본토보다 대만으로 가야 한다. 타이베이시에 있는 구궁(故宮)박물관은 중국 은대(殷代)부터 청대(淸代)에 이르는 황실예술품 7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제스(蔣介石)가 본토에서 쫓겨나면서 궁중 유물들을 배로 실어온 것이다. 구궁박물관의 진열품들은 극도로 세밀하고 지나치게 화려해서 우리 정서에 벅찬 감도 있지만 관람자의 혼을 빼놓는다.

▶신라 금관, 백제 향로, 고려 청자, 조선 백자 등 우리 역대 왕조유물들 역시 당대 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이런 왕조유물을 따로 전시하는 장소가 마땅치 않아 600년을 이어온 조선왕조 유산들이 산지사방에 방치되어 왔다. 이번에 경복궁 안 국립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국립고궁(古宮)박물관이 들어선다니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순종은 1908년 창경궁 안에 제실(帝室)박물관을 만들었다. 일제가 이를 이왕가(李王家)박물관으로 개칭했다가 광복 후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왕실의 몰락과 함께 값을 매길 수 없는 궁중 예술품과 생활문화들이 궁마다 흩어진 채 창고신세를 져야 했다. 이번에 창덕궁에 있던 일월오악도 병풍과 어차(御車), 종묘의 제기(祭器)들과 육군박물관의 과학문물들을 한자리에 모으면 조선왕조의 영화(榮華)가 일부나마 되살아날 것이다.

▶고궁박물관이 왕실 유물 전시장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왕도정치의 근간이 무엇이냐와 함께 왕실의례와 생활문화, 과학문물을 통해 조선왕실의 품격과 권위를 들여다 볼 창(窓)을 마련한다는 뜻이 소중하다. 고궁박물관은 내부에 양탄자를 깔아 관람객이 신발을 벗도록 하고 안내원도 배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왕실의 분위기와 예절을 체험해 보라는 의미인 듯하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왕조시대 같으면 감히 접할 수 없던 옥좌와 어보(御寶)를 모조 아닌 진품으로 본다고 생각하면 참을 만한 것이다.

- 조선일보 2005. 8.6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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