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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배가 산으로 가서는 안될 문화예술위원회, 비전설정과 지원혁신이 필요하다

정중헌

32년간 관 주도로 운영되어온 문예진흥원이 폐지되고 민간 주도의 문화예술위원회가 8월에 출범했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위촉한 11인의 위원들은 문예진흥기금 5,000억원을 인수하고 매년 정부에서 주는 복권기금 500억원을 받아 연간 1,000억원을 예술가와 예술단체에 지원하게 된다.
김병익 위원장을 비롯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분야별로 위촉된 11명의 위원들이 현 정권의 코드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없지않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일은 합의 설득형의 민간위원회를 어떻게 꾸려갈지 기초를 다지고 합리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관 주도 시대의 경직성과 문제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정권까지 문예진흥원의 지원 심의에 여러차례 참여해온 필자의 경험도 참고가 될 것같아 몇가지 사례를 꼽아본다.
첫째, 지역의 비영리 민간예술단체에 대한 지원 심의가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연초가 되면 문학, 연극, 미술, 음악, 무용 등 분야별로 위촉된 위원들의 회의가 소집된다. 진흥원 사무국이 취합한 지원서류를 검토하고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산더미 같은 서류철을 한나절 훑어보고 판단한다는 게 여간 고역스러울 수가 없다.
전국의 시ㆍ군만 해도 몇백개에 이르고 그 안에 장르별로 지원금을 신청한 단체가 몇천개에 이르는데 중앙에서 그 개별단체의 성격이나 실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단 하루만에 재단하다 보니 전년도 실적을 보고 지원여부를 결정하게 마련이다. 신규 지원은 판단할 근거가 취약하다 보니 탈락하기 십상이다. 지원액수도 주먹구구 식이다. 진흥원 직원 들이 몇가지 근거로 산정한 액수가 그대로 통과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연고가 있거나 서류 잘 꾸미는 단체가 소액이나마 지원을 받는 식이고 외부 위원회는 이를 추인하는 장치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두번째, 김대중 정부 때 공연예술계의 심각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20억원의 지원금이 책정됐다. 이를 집행하기 위해 3개의 위원회가 구성됐다. 문광부 주도의 종합위원회가 소집됐고 문예진흥원에 집행기구와 심의기구가 위원회 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문광부 위원회에 언론쪽 위원으로 참석한 필자는 20억원이라는 액수를 장르별로 쪼개면 효과가 없으니 될성부른 공연단체를 엄선해 집중지원하자고 제안했다. 회의 초반에는 이런 제의가 먹혀들 것 같더니 중반을 지나자 위원들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기 장르쪽에 지원금이 많이 배정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넘어 상대 장르를 헐뜯는 설전까지 오갔다. 결국 목소리 큰 위원들의 주장대로 지원금은 장르별로 쪼개졌다. 그 지원금이 심의위원회를 거쳐 각 단체별로 지원됐지만 결과가 신통했다는 평가는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 납득이 안되는 것은 국민의 세금 20억원을 배분하기 위한 운영비용이 1억원이나 됐다는 사실이다.
문예진흥원이 발족돼 예술가들을 지원해온 공적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관 주도의 단독책임제이다 보니 현장의 실정을 반영하기 보다는 행정편의, 책임떠넘기 식으로 경직을 드러낸 측면이 적지않았다. 지원방식 또한 ‘선택과 집중’은 구호로 내건 이상일 뿐 매번 찔끔찔끔 나눠주는 소액다건주의로 생색내기에 그쳤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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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위원회의 산적한 과제

민간위주로 탈바꿈한 문화예술위원회는 이같은 중앙 중심의 지원제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개선하느냐가 관건이다. 미국의 경우 지역에서 지원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우리도 이번에 지방문화예술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했고 장르별로 소위원회를 운영할 방침이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또한 문화관광부에 평가기구를 두어 책임성을 강화한 것도 개편의 특징인데 이 제도가 어떻게 기능할지도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민간기구로 전환한 후 가장 큰 우려는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지 않을까다. 자율, 분권, 현장 예술인 참여등의 취지는 좋으나 앞서 예를 들었듯이 장르를 대표하는 위원들이 자기 주장만 내세울 경우 정책과 사업이 허술해져 기초예술 전반의 균형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술인들이 국가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을 누리려면 위원들이 자기 분야를 뛰어넘어 문화예술계 전반을 아우르는 안목과 소통능력을 가져야한다.
문화예술위원회가 제자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예술재원의 안정적 확보가 필수다. 현재 복권기금을 받고 있지만 항구적이지 못한 만큼 선진국들처럼 기부금 확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원대상과 방식도 혁신되어야 한다. 문화산업 육성을 위해 기초예술 지원이 필수지만 이제는 예술가와 예술단체 지원못지않게 수용자 중심 지원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고령화 추세가 가속되는 만큼 예술 체험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예술가 중에는 국가지원을 받으면 간섭을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정부 지원을 받느니 예술을 포기하겠다는 극단파도 없지 않다. 이들의 말대로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이 홀로 서는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위원회가 앞으로 어떤 비전을 설정하고 어떻게 공정 투명한 지원정책을 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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