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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앨리슨 래퍼

정중헌

프랑스 루브르미술관이 소장한 ‘밀로의 비너스’는 양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전문가들은 이 비너스상을 복원(復元)하면 오른손은 왼쪽 다리 쪽으로 내려지고, 왼팔은 앞으로 내밀어 젖혀진 손바닥에 사과를 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현대의 미술사가들은 팔이 온전히 붙어 있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가 느끼는 만큼의 진한 감동을 주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일부가 떨어져 나간 까닭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조각, 미술용어로 팔다리나 머리 등이 절단된 인체 형상을 ‘토르소(torso)’라고 한다. 로마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아프로디테의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비너스’나 바티칸의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신체의 일부가 훼손됐음에도 고대 조각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절단된 토르소의 볼륨과 선(線)이 주위 공간과 긴장 또는 조화를 자아낼 뿐 아니라 조각가의 영혼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게 비평가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토르소’가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2005 세계 여성 성취상’ 시상식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국의 구족(口足)화가 앨리슨 래퍼가 그 주인공이다. 양팔은 없고 다리만 조금 붙어 있는 중증(重症) 장애인이지만 시상대에 선 그의 모습은 잘 빚은 토르소를 연상시키듯 아름다웠다. 생모마저 버렸던 육신을 쓸모 있게 가꾸고 마침내 예술가의 꿈을 성취한 그의 인간승리 또한 감동을 자아냈다.

▶래퍼는 자신을 ‘밀로의 비너스’에 빗대 ‘현대의 비너스’라고 했는데 그럴 만도 하다. 우선 자신의 나신(裸身)을 모델로 삼아 조각 같은 이미지의 사진작품을 발표했다. 또 영국의 마크 퀸이 그를 모델로 조각한 ‘임신한 앨리슨 래퍼’상(像)이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전시되고 있다니 ‘현대의 토르소’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얼마 전에 양팔이 없는 스웨덴의 가스펠 가수 레니 마리아가 내한해 가슴 따듯한 공연을 펼쳤다. 오른발 하나로 요리는 물론 수영과 운전도 하는 그는 가스펠 가수로 세상에 사랑과 은혜를 전하고 있다. 이에 비해 래퍼는 결함투성이인 자신의 육체에도 보통사람과 다른 아름다움이 있음을 토르소처럼 확인시켰다. 최악의 상황에서 예술가로, 여성으로 주목할 만한 삶을 개척한 그는 세계 도처에서 희귀질병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망의 표상이 될 만하다. 예술품보다 더 진정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아닐까.

-조선일보 2005. 12. 2. 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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