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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태평로]‘시민의 극장’이 보고 싶다

정중헌


국공립 예술단체 기량키워 국민 속으로 파고 들어야

뚱보들의 발레 보셨나요. 지난주 고양 ‘어울림’ 극장에서 공연된 프랑스 리옹 국립오페라발레단의 ‘그로스 란트’는 뚱보들도 일상에서 춤을 즐길 수 있음을 코믹하게 풍자했다. 안무가 마기 마랭은 스무 명의 무용수들을 뚱보로 변장시킨 이색 군무(群舞)로 객석에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요즘 유럽에선 젊은 예술가와 국립단체가 주축이 되어 공연예술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도 국공립 예술기관 산하에 수많은 예술단체가 있지만 주목을 모은 공연이나 연출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에만 국립극장에 극단 등 4개, 세종문화회관에 뮤지컬단 등 8개, 예술의 전당 안에 국립발레단 등 4개, 서울예술단이 활동 중이다. 단체마다 수십 명의 단원들과 예술감독, 행정과 기술 스태프가 있다.

이 많은 예술단체가 연중 풀 가동 된다면 공연장이 활기에 넘치고 볼 만한 창작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인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의 연 초부터 3월 말까지 공연일정을 보면 자체 공연은 거의 없고 수입 뮤지컬로 채워지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의 재정지원으로 설립되어 운영 또한 국민 세금에 의존하는 국공립 극장들이 민간단체 대관 공연장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국공립 예술기관의 사명은 첫째가 예술성 높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고, 둘째는 국민들의 문화 향수권(享受權)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문화소외 계층에게도 예술을 서비스할 공공의 의무가 있다. 그런데 최근 국공립 예술기관장이 바뀌면서 이런 공익성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전문경영인 출신 김주성씨가 세종문화회관 사장을 맡은 데 이어 무대미술가 신선희씨가 국립극장장에, 기자출신의 정재왈씨가 서울예술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책임운영과 경영합리화를 앞세워 수익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공립 예술기관도 자생력을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 경영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익을 내기 위해 극장을 장기 대관하거나 전속단체 공연을 줄이겠다는 것은 제 살을 깎는 처사다. 심지어 어느 경영자는 민간단체의 공연수익 일부를 떼겠다는 희한한 발상까지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예산 규모나 시스템으로는 수익성을 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대형뮤지컬의 경우, 제작비 규모가 100억원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 서울뮤지컬단이나 서울예술단의 연간 제작비는 그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국공립 예술단체는 민간에서 하기 어려운 창작이나 실험 작품을 만들어 내거나 또는 그 나라 최고 수준의 완성도 높은 예술작품을 공연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이런 목표도 없이 구조조정이나 인적 쇄신을 밀어붙이다 보니 전속단체들과 갈등을 빚는 것이다.

국공립 예술단체들은 창의력이 기발하거나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생산해 ‘시민의 극장’을 통해 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공의 결손은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하고 애호가들의 기부나 후원으로 채우면 되는 것이다.

구미 여러 나라 국공립 예술단체의 권위나 단원들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전통 있는 국립극장이나 예술센터들은 연간 공연스케줄이 꽉 차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단체는 많아도 공연은 많지 않다. 구민회관과 지역 문예회관은 올릴 작품이 없어 쩔쩔매는 형편이다.

모델은 있다. 서울시 교향악단을 벤치마킹하면 된다.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을 예술감독으로 영입해 단원들의 기량을 극대화하고, 단체장은 경영을 뒷받침하면서 시민 속으로 파고드는 전략이다. 국립극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 내정자는 국공립 예술기관과 단체들을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혁신해야 한다.

- 조선일보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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