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7)미술계도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적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

정중헌

TV 드라마 ‘궁(宮)’이 젊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제목 그대로 ‘오늘날에 입헌군주제가 실현된다면’이라는 가상을 현실로 옮긴 드라마다. 동명의 만화 원작을 각색한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만화 같은 이 드라마의 설정 자체에 호감을 갖기 어려울지 모른다. 왕을 중심으로 왕실의 전통과 권위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그 전통과 권위를 깨는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상식 이하로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초반은 상황전개가 생뚱맞고, 억지로 코믹 요소를 곁들인 연출이 우스꽝스러운데다,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뻣뻣하기 짝이 없어 10대 오락용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그러나 회를 거듭하면서 10대, 20대에서 30대까지로 시청자층을 넓히면서 화제에 오르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유치하고 어설픈 대목이 많지만 볼거리가 풍성하고 상황 또한 그럴싸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종반부에 이르러 드라마가 제 궤도를 찾아 시청률이 오르고 연장까지 했을 정도다. ‘궁’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어 완전 사전 제작한 속편이 나올 전망이다. 그렇더라도 ‘궁’은 결코 완성도가 높거나 스토리가 탄탄한 드라마는 아니다. 만화가 원작이라지만 인물과 상황의 희화가 지나쳐 눈요기 하는 이상의 느낌을 주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신인들의 연기 또한 대중적 인기만큼 부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궁’에 관해 이렇게 장광설을 펴는 이유는 그 드라마에 기성세대에게 결핍된 ‘상상력’이 싱싱하게 묻어나기 때문이다. 왕조를 벗어난 지 한 세기가 흘렀고 지금은 인간이 달을 정복하고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인데 왕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설정은 자칫 황당하게 보일 수 있다. 한데 그런 비현실적이고 발칙하기까지 한 발상이 기계문명에 찌든 현대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는 이미지 코드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대는 21세기인데 지금은 박제된 궁궐 안에 왕조시대의 의관을 갖추고 왕실의 법도를 지키며 사는 왕족이 살고 있다면? 이 한 줄만 전제하면 작가나 제작자는 얼마든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 우선 왕실은 예나 지금이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화려함의 상징이다. 왕궁이 거처가 되면 그에 맞는 의관과 실내 장식과 소품들이 갖춰져야 한다. 상궁과 나인이 따르는 질식할 것 같은 왕실의 전통 속에서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자유분방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작가 연출자 스태프 모두에게 대단한 특권이자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 소재를 만화에서 따왔든 소설이나 연극에서 따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상상력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또한 새로운 자극을 주느냐 하는 ‘창의력’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드라마 ‘궁’은 대중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얘기다.
<




영화 ‘왕의 남자’가 1200만 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바탕 역시 실록의 몇 줄 기록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상상력으로 풀어 낸 희곡의 힘이다. 실제 역사에서 한낱 광대가 왕의 면전에서 그런 독설을 퍼붓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걸 영상 이미지로 살려낸 과감한 시도가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것이다.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상 콘텐츠들은 발상의 전환과 자유로운 상상을 앞세운 창의력과 이야기의 회복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의 남발로 이야기가 고갈되어 가는 시대에 한국의 영상콘텐츠는 이야기의 힘을 되살리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할리우드 영화까지 제치면서 한류의 파고를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친구’ ‘조폭마누라’등은 남북분단의 소재와 조직폭력의 강한 액션을 통해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드라마 ‘대장금’은 궁중음식이란 특이한 소재로, ‘허준’은 의술로, ‘내 이름은 김삼순’은 노처녀 심리묘사란 트랜디로 시청률을 높였다. 그런데 영상 콘텐츠를 좌우하는 이런 문화코드들을 미술장르에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작고한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라는 독창성으로 세계 화단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미술의 창작과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 개발이 급선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