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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으로 예술인 복지재단 추진해야 한다

정중헌


1977년 9월 9일자 조선일보에 필자는 ‘한국연극사에 신화 탄생’이라는 기사를 썼다. 지금은 작고한 배우 추송웅이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한 1인극 ‘빠알간 피이터의 고백’이 예매표만 1만장 이상 팔리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화제를 다룬 것이다.

‘신화 탄생’이라는 제목은 지금 다시 볼 때 좀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기사가 나갔을 때도 연극계 어른들이 눈살을 찌푸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젊은 기자의 눈에는 ‘추송웅 선풍’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적어도 배우의 출연료 수입이나 1인극 매출액에서 이전의 기록을 깼으니 대단한 일이 아닌가.

필자가 이같은 과장 표현을 슨 이유는 연극인들의 현실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연극 현장을 다녀보면 대부분의 극단이 보따리 살림에 배우들은 출연료도 제대로 못받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었다.

필자와 친분이 두터웠던 추송웅이 어느 날 노트 한 권을 들고 왔다. 63년 데뷔한 후 73년까지 10년까지 자신이 출연한 연극 제목과 역할, 출연료 명세를 기록해 놓은 연극일지였다. 그 노트를 보고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73년부터 3년간 출연료 수입은 48만원. 10년간 토탈이 100만8천6백원이었다. 한해 10만원도 안 되는 수입으로 10년을 무대에서 버텨온 것이다.

그런 그가 연기인생 15년을 자축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무대에 올린 모노드라마로 1천만원(당시로서는 거액이었다)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니 얼마나 대견하고 비약적인 발전인가. “연극해서 생활할 수 있는 제1호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라던 추송웅은 그때의 수입으로 명동에 카페 테아트르 같은 살롱극장을 만들어 활기차게 무대에 서더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1985년 월간 ‘한국연극’이 조사한 극단 실태에서도 출연료를 제대로 주는 극단이 절반을 넘지 못했다. 당시 필자는 “우리의 연극현실을 돌아볼 때 외부 지원 없이 자립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결론짓고 “어떤 방법으로든 지원은 실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추송웅 신화’이후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연극현실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제작비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형 뮤지컬이 성공을 거두면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대표적인 연극동네인 대학로 군소극단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그 중에는 생계조차 위협 받는 연극인들이 적지 않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연극인들이 뜻을 모아 지난해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을 설립하고 복지기금 마련을 위해 애쓰고 있다. 6월 중순에는 연극인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함께 ‘당나귀 그림자 재판’을 무대에 올려 기금마련 캠페인을 벌였다.

필자는 이 공연을 보면서 기분이 착잡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연극이 가난을 못 벗는 현실이 답답했고, 연극인 복지를 위해 기금 마련에 나섰지만 어느 세월에 기금이 모아질지 막연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에게 ‘복지’라는 개념이 뒤늦게나마 도입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인 복지방안이 모금사업만으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예술인 스스로의 자구책도 필요하지만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요원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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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복지혜택을 위한 정책
‘당나귀 그림자 재판’공연에 연극인 출신인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연극인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그는 연극인복지를 기초예술에 종사하는 예술인 모두의 복지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 자신 어려운 연극계 현실에 시달리며 살아왔으니 무게가 실린 약속이라 믿고 싶지만 과연 사회복지 차원에서 연극인들의 생계나 창작환경이 개선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예술인들이 복지 혜택을 받으려면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필요하고, 노동의 산출근거를 마련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예술인들이 연금, 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처럼 예술가조합을 결성을 기금을 조성하고 운영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우리 예술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창작의 열정을 불태워왔다. 그들이 창작에 전념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만 지원이나 복지라는 명목으로 예술인들의 위상까지 초라하게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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