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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영화 언론 정권―문화부 기자 37년의 기록

정중헌

[태평로] 영화 언론 정권―문화부 기자 37년의 기록


춘사영화제 심사를 맡아 올해 수확한 한국 영화 14편을 몰아서 보았다. ‘왕의 남자’ ‘괴물’ 등 관객 1000만명 이상을 모은 영화가 2편이나 나왔으니 올 영화 농사는 풍년이다. 더욱 반가운 현상은 ‘각설탕’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라디오 스타’ 같은 저예산 작가영화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모두 주제가 독특하고 젊은 감독들의 연출력이 뛰어나다. 이처럼 제작비를 적게 들이고 개성이 있으면서 잘 만든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한국 영화가 계속 발전하고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이 정권이 올해 스크린 쿼터 일수를 반으로 줄였는데도 이만한 수확을 거둔 것은 정책이 아니라 영화인들의 실력이고 시장의 힘이다. 우리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보다 관객점유율이 높아진 것은 2000년 이후다. 그 이전 30년간 한국 영화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원인은 70년대 영화정책의 실패에 있다. 한국 영화를 진흥한다며 영화 제작을 14개사로 한정해 외화수입권까지 주었다. 그 결과 한국 영화는 외화 수입의 도구로 전락했다. 과도한 검열과 윤리적 간섭까지 겹쳐 정책이 한국 영화를 망쳤다.


언론정책도 다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권은 언론을 옥죄었다. 10월유신 때, 서슬 퍼런 신군부가 등장했을 때 기자들은 밤마다 대장(臺狀)을 들고 검열을 받으러 다녀야 했다. 언론사를 통폐합시키고 프레스카드를 목에 걸고 다니던 시기도 있었다. 치부를 파헤친 기자를 권력기관에 연행하고,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세무조사를 시켰다.


영화인들이 열악한 조건에서 영화를 만들었듯이 기자들도 숨막히는 환경에서 독자들의 알 권리를 지켰다. 영화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았듯이 언론은 본연의 사명인 비판을 제약받았다. 영화가 팔다리 잘리며 명맥을 이었듯 신문도 정권의 통제가 강화되고 간섭이 심할수록 진실을 행간에 숨겨서라도 독자를 위해 버텨 왔다.


90년대 이후에야 영화의 규제가 풀렸다. 제작이 자유화되고 시나리오 사전 심의가 위헌판결을 받았다. 가위질 대신 등급이 부여됐다. 자유 경쟁이 이뤄지고 소재가 다양해지자 실력 있는 인재들이 모여들어 우리 관객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내놓기 시작했다. 창업자본이 투자되고 영화시장 개방으로 스크린이 늘어난 데 힘입어 한국 영화는 1000만 관객시대를 열었다.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정책이 없어지면서 한국 영화가 오늘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상황이 다르다.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통제가 강화됐다. 기자들의 취재부터 봉쇄하더니 말도 안 되는 신문법을 만들어 일부 위헌 판결을 받았다. 공정위까지 동원해 비판 언론을 옥죄더니 급기야 세무조사라는 칼을 또다시 꺼내 들었다. 이 정권의 최대 난센스는 비판과 감시의 대상인 정부가 비판이 거슬린다고 부처마다 언론에 대항하는 유격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웃기지도 않는 난센스는 정권이 언론이기를 자처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청와대브리핑’이라는 인터넷 매체가 그렇고, 국정홍보처와 부처별 정책홍보팀이 언론을 감시하고 비난하며 언론의 고유영역까지 침해하고 있다.


이처럼 정권이 언론의 비판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적대시하다보니 나라가 제대로 운영될 리가 없다. 21세기 초고속시대에 정권이 통제한다고 언론이 잡히지도 않겠지만 정권이 걸림돌이 돼 언론이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영화처럼 간섭이 줄어들면 기업이 살고 교육이 산다. 언론 역시 국가의 번영과 민생에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37년간 몸담았던 언론 일선을 떠나면서 군사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이 정권의 해괴한 언론관과 대응방법에 이 나라 앞날이 걱정돼 허공에 대고 해본 소리다.

- 조선일보 2006.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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