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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알몸으로 겨울나기

탁계석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
나는 평소에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내가 애써 불러 좀 보라고 해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란 인간극장의 다큐 프로그램을 보았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최고 엘리트 코스의 한 젊은 부부가 도시 생활을 접고 산골 마을에서 소꿉장난 하듯 인생을 관조하는 풍경이 참으로 신선하게 닥아 왔다. 詩的 정화 감마저 느껴지는 일상들이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 숨 막힐 듯 각박한 도시의 생활에서 보면 분명 그림 같은 인생살이가 아닐까 싶다.
진정한 ‘변화’가 결국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할 때 넘치는 지적 에너지와 세속의 욕망을 훌훌 벗어 던지고 개성적인 삶을 연출하는 이들의 용기를 모두들 부러워했을 것이다.
스스로도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과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철부지가 아닌 의욕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한 바탕이 무엇일까. 그것은 단조롭고 틀에 박힌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는 예술적 창의력이 아닐까 싶다. 자연을 섬세하게 바라고 보고 이를 통해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과 하루하루 쉬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작업환경이 곧 ‘창작’의 즐거움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한 농사일로만 생각한다면 산골은 답답해 이겨낼 수 없는 유배지일 뿐이다. 요즈음 이런 개성의 삶을 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희망적인 우리 사회의 숨통 트이기가 아닐까 한다.
사실 텃밭 가꾸는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하루라도 시간을 서둘러야 한다. 자연은 적응하는데 시간을 필요로 한다. 힘이 있을 때 친구로 사귀어야 오래 함께 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가볍게 낭만적인 피난처로 생각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적막감이나 ‘끝났다’는 우울감이 내부에 있다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그래서 ‘낙향’이 아니라 개척의 땅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창의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

출세, 목표 지향 주의에 새 방향 제시
굳이 미래 학자가 아니더라도 오늘의 눈앞에 전개되는 멀티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은 아날로그적 사고에 연신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모든 게 알레그로 비바체여서 따라가는 것 자체가 경쟁이요 불안의 요소다. 그래서 예전처럼 고정된 직장을 통해 성공이나 출세, 돈벌기 등의 가치관이 얼마나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또 그 결과 인생이 얼마나 더 행복할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미 30년 전 캐나다의 미디어 연구가 마셜 맥루언 (Marshall Mclhan)은 전자 유목민이 될 것이라 예언한 바 있다. 옮겨 가면서 놀라운 변신을 하는 사고의 발전이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갈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인류 역사상 일찍이 지금처럼 유동성이 요구되고 장려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서구 사회가 직업을 따라 유랑한다는 뜻의‘잡 노마드(job nomad) 사회’에 진입해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유동성’이란 정신적, 사회적, 감정적 이동은 물론 새로운 경험과 사고의 지평선을 열고자 하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우리처럼 극심한 혼돈의 상황에서 ‘성공’의 계단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 현실에서 유동적이고 창의적인 삶은 더욱 필요하다.
결제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체 물러난 교육부총리나 한 2년쯤 하면 장관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고갈이 날 것이라 판단하는 지도자의 인식 오류에서 장관 자리는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 이렇다 할 자원 없이 인적 자원에 모든 것을 의존해야 하는 나라에서
인적 자원을 경시하는 풍토는 앞뒤가 맞지 않는 실망감이다.
삶의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는 사회란 출세주의, 목표주의가 빚어내는 숱한 역기능을 조절하는 힘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것을 세상만 바꾸려하려는 데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아닐지.
기러기 아빠의 교육대란, 실업자 행렬의 예능 유학 등도 깊이 생각해 획일주의가 빚어내는 무서운 과열경쟁을 막고 저마다 개성 있게 살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더욱 개발되었으면 한다.

알몸으로 겨울 나는 마늘에서 배우는 교훈
텃밭을 가꾼 지 몇 년이 되어 간다. 밭을 만지며 배우는 교훈이 너무 많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마늘이 한겨울 언 땅에 발가벗겨져 겨울을 난다는 사실이다. 그 때의 감상을 적어 본 것이 ‘마늘’이란 졸시다. 너나없이 어려운 때여서 독하게 살아남는 것의 의미를 새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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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난 몰랐어 정말 몰랐어
네가 발가벗은 몸으로
매서운 칼바람 언 땅 속에서
입술 독하게 피멍 가슴 뜯으며
수만 번도 더 반항하다
순응한 것을

난 몰랐어 정말 몰랐어
삼결살에 상추 싸 먹을 때가지도
징역 보다 더 무서운 겨울 철창 속에서
백옥 몸매 지킨 순결이
눈물인지 몰랐어
핏물인지 몰랐어

그 높은 내공, 상처 없는 해탈
벗어던진 거죽 허물에
흰 눈이 내릴 때가지 난 몰랐어
까맣게 모르고 살았어
인생의 매운 맛 얼마나 더해야
맑은 얼굴 봄이 오는지 난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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