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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독도의 노래’를 만들며

탁계석

세상을 움직이는 노래의 힘
일전 작곡가 임준희 교수로부터 급한 전화 한통이 왔다. 바리톤 임성규씨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독도에 관한 노래를 찾았으나 성악가가 부를 마땅한 곡이 없어 작곡을 해야겠으니 급히 가사 하나를 써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지난달 초에 우리 시인들이 대거 독도를 방문하여 시낭송회와 이벤트를 펼친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작업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사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대중가요를 일반이 알고 있긴 하지만 요즈음 같이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에서 흥겨운 댄스풍의 노래를 불렀다간 낮 술 먹은 사람 취급당할지 모른다.
노래란 세상의 흐름 따라 변화는 것이어서 세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면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유행가가 아닌 순수 가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시인의 시 그 자체를 그대로 쓸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작곡가가 곡을 써가며 테크닉 상 이러 저리 바꾸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며 발음상 가사의 어느 부분에 수정을 해야 한다면 결국 시인의 시를 망가트려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요계에서는 작사, 작곡가가 콤비를 이루어 히트 곡을 만들어낸다. 서로의 절묘한 호흡이 맞아 절정에 이르면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일부 대중가수들은 그 감각을 익혀 자신이 작사, 작곡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를테면 정지용의 ‘향수’처럼 좋은 시가 그대로 명곡이 된 경우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시라도 노래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거꾸로 시의 입장에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좋은 노래로 불려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필자가 가사를 쓴 이유는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클래식에서 사회성 주제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회를 읽는 눈이 그만큼 부족하고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알게 모르게 예술적 권위주의가 숨어 있다.
<오페라의 경우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극작가, 소설가, 시인이 오페라 대본을 쓴다. 본질적으로 오페라의 구조를 얼마나 아는 가하고 묻는다면 그냥 극본을 쓸 뿐이라고 할 것이다. 베르디나 푸치니는 그렇지 않았다. ‘피아베’란 대본작가는 베르디의 파트너인데 이들 모두가 오페라극장의 귀신들이요 성악의 멜로디 라인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는 천재들이다. 대본은 씨다. 좋지 않은 씨를 키우면 키울수록 허망해진다. 씨를 고를 수 있는 능력이 곧 작곡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본이 안 좋으면 고쳐가며 써야 하는데 오페라의 경험이 많은 작곡가는 이를 알지만 초보 작곡가는 모른다. 작곡가도 여러 성향이란 것을 오페라단장들이 잘 모르고 명성에만 의존해 청탁하니 그만큼 성공작이 나오기 힘들다. 이래저래 지원지금만 축내고 창작오페라는 시행착오만 계속하고 있다.
다시 독도 문제로 돌아가 보자. 목숨을 걸고 청춘을 다 바쳐 지킨 독도 수비대 생존자들은 지금 70대 중반이 되어 휴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는 그 어떤 보상도, 인정도 해주지 않고 있다. 어찌 애국심이 생길 수 있을 것인가.




정신의 깊이를 잃으면 몽당 뺏긴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독도에 대해서도 앞서 본질을 모르고 엄벙덤벙 오페라 제작을 하듯 일본은 치밀하게 각본을 짜 교과서 까지 왜곡해가며 독도 문제의 부가적 효과까지 계산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푸라기 감정만 불태우니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고구려 문제도 십 수 년 전부터 고구려연구회의 서길수 교수가 민간 차원에서 사재를 털어가며 학술연구를 하고 문제제기를 했지만 정부는 우이독경이었다. 돌아보면, 조금만 더 깊이 보면, 우리 사회 어느 구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이는 대한민국을 주소지 없는 ‘가건물’이라고 까지 표현한다. 불거지면 호떡집 불난 듯 응급 대응 하다 지나면 또 까맣게 잊어버리는 뿌리 없는 기민성만으로 우리 삶의 환경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노래의 힘은 실로 엄청나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에 나오는 ‘몰다우’도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우리 한강엔 어떤 노래가 있는가. 한강수 타령?
전쟁에 폐해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삶의 활력을 준 요한 시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등 수많은 왈츠, 링컨 노예 해방의 원동력이 된 ‘올드 블랙 조’, ‘켄터키 옛집’, ‘스와니 강’의 민요풍의 포스터의 명곡들. 흑인을 적이 아닌 친구로 생각하는 가사와 가슴 원천에 호소하는 서정성의 탁월함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가. 6ㆍ25 직후, 전후의 우리는 이런 노래까지 원조 받고 살았다. 그래서 지금도 ‘금발의 제니’가 ‘순이’ 보다 더 그리운 것이다. 죽어도 미국 가서 죽자! 이민 행렬이다. 영어 몇 마디 배우려고 몽땅 다주는 세태다.
‘우리의 소원’, ‘고향의 봄’ 노래하나가 갖는 힘은 그 어떤 정책이나 이념적인 강연보다 국민을 하나로 묶는 위대함이 있다. 우리도 민중의 노래가 한때 있었지만 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은 가사나 노래의 예술성에서 그 만큼 공감이 덜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대한 작곡가들이여, 명망 높은 예술가들이여, 쉬우면서도 세계를 재패할 수 있는 명곡을, 작품을 좀 내어 놓으시라.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大樂 必易’이요 ‘大(505탁B.ai) 必簡’이라. 큰 음악은 반드시 쉽고 큰 예절은 필시 간단하다 하지 않던가. 예술성을 가지면서 사회를 밝고 건강 하게하는 예술의 사회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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