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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예술장르의 긴밀한 교감

탁계석

범람하는 문화홍수 속에서

바야흐로 문화에 홍수가 난 것일까. 전국의 지자체들이 저마다 제일의 문화 도시임을 내세운다. 각종 전시성 이벤트에 막대한 예산을 퍼 붓는다. 어느새 문화가 투자 유망 업종이라도 된 것일까. 아무리 출발이 좋아도 획일적 모방으로 인한 과잉을 막는 통제 장치를 발달하지 않으면 투자 효과는 감소한다. 이를테면 공룡이 되어 공연장, 광고, 관객을 모두 삼키는 백억이 넘는 예산의 뮤지컬 태풍이다. 비단 공연 예술뿐만 아니라 그림 등 자매 예술이 순수하게 경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제 동네 아파트 어귀마다 소리와 몸짓이 넘쳐 난다. 조용한 절간도 성스러운 교회도 사라져 간다. 예술의 내면 가치가 사라지고 거칠고 변죽만 울리는 외양만 화려하다.
엊그제 금곡의 宮집에서 원로 권옥연 화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깊이를 잃은 세태를 걱정했다. 화가는 많은데 예술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 옛날에도 그림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며 이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만 결국 살아남았다고 했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천경자 등과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것도, 삶 전체가 드라마틱한 역사 현장처럼 된 것도, 모두 화가로서는 더할 수 없는 행운이라 했다. 고통과 격동의 大河의 흐름이 모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림이란 학교에서 뭘 가르쳐서 되는 일인가라는 반문도 있었고, 화가는 그림 그리는 순간이 휴식이라며 요즈음도 하루에 15시간 씩 붓을 놓지 않는다 했다.
프랑스 유학 시절 까뮈가 한 귀퉁이에서 연애 하던 카페에서의 모습 (자동차 사고로 죽지만 부인은 화가나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다고 함).
샤르트르는 온 유럽이 실존주의 바람에 휩쓸릴 때 마치 어께처럼 이를 추종하는 졸개들을 끌고 다녔다 한다. 그리고 죠르즈 루오의 장례식에 피카소, 샤르트르, 까뮈, 마티스 ,앙드레 말로, 장 꼭트, 브라크 등 그대로 역사이자 미술사인 거장들을 바로 눈 앞서 만났을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낀 것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 했다.
엊그제 필자가 선화랑에서 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전에 나온 세기의 예술가들과 오버랩 되면서 역사인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랑잎 같은 존재일까를 생각해 본다.
50년대까지 파리가 진짜 파리라고 하듯 우리도 전후 명동시절, 이 예술둥지에서 그래도 많은 걸작과 예술가들의 교분이 있었고 서로를 발전시킨 에너지가 되었다.
학교가 만들어지면서 하나 둘씩 깨어지고 흐트러졌다. 언제나 하나가 서면 반대 것이 죽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지난달 남산 문학의 집에서는 이경희 시인이 자신이 모았던 소중한 미술잡지와 팜플릿을 기증하는 자리가 있었고 장일남 작곡의 기다리는 마음의 작사가로 31살에 요절한 천재 시인 김민부의 짧디 짧은 생애와 함께 했던 동료 작가들의 추억과 작품 평가가 있었다.
<조촐한 모임이지만 우리가 추구하야 할 모델이요 문학과 예술의 향기가 몸에 젖은 그윽한 밤이었다. 여기저기 지어만 놓고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놀리는 문화의 집이 모두 이런 기능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무슨 일을 하던 생각이 바른 사람이 일을 하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르 간 교감이 21세기 경쟁력

이제 장르 간의 벽을 허물고 서로 긴밀한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저마다 고립되어 있기보다 더 늦기 전에 타 장르에 애정과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1세기는 탈 장르화 해 통합하는 경향을 이미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영화 말아톤 음악을 만든 김준성 작곡가를 만났다. 60년대 김동진 선생의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이 영화 주제곡이었던 것에서 오늘의 상황은 얼마나 달라진 것일까. 영화음악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바뀌었지만 현장에서 클래식 작곡가의 참여는 극히 미미하다. 영화산업의 외형에 비추어 음악이 그 흐름의 속도를 쫒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용은 어떤가. 무용 공연의 확장에도 불구하고 무용음악 전문 작곡가가 별로 없다.




이처럼 예술의 여러 장르가 유기적인 긴밀성을 갖지 못하고 서로 강건너 불보듯 한다면 진정한 예술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김병익 위원장 체제의 문화예술진흥위원회가 새롭게 출발했다. 축하와 함께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만큼 심기일전 새로운 진흥정책이 펼쳐지기 바란다.
예술에 돈이 필요하지만 돈이 예술을 망치는 경우도 얼마든 있다, 예술가 우대의 사회 분위기 조성과 심도있는 분석, 평가를 통해 지원 사유를 실명화하는 지원 프로젝트 실명화 제도도 잡음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지 않고 만의 하나, 선임된 위원을 중심으로 사적인 편짜기나, 학맥, 인맥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기구의 정체성을 잃게 될지 모른다.
불법 도청, X 파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루고 있는 때에 이런 엄청난 희생이 어느 분야에서든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듭 예술장르의 긴밀하고 활발한 교류를 위해 작은 예술인 쉼터라도 하나 만들어 창작과 예술활동의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알리는 것은 어떨까.
모든게 만남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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