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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미학의 정갈한 속살 드러낸 김연정의 꿈과 음악

탁계석

그는 음악 안에 있었다. 마치 세상의 혼돈과 바람이 차단된 예술의 성처럼 보였다. 이처럼 편안하고 안정된 정서위에서 펼치는 그의 음악은 그래서 조용한 속삭임인 듯 했다. 독주회란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평소의 자기 습관처럼 이내 몰입했다. 객석은 사라지고 안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청중은 호젓하고 상쾌한 숲을 따라 거닐듯 그가 그려내는 맑고 영롱한 미감에 취했다. 그의 피아노 미학은 정갈한 속살을 드러낸 여인처럼 맑은 향기로 비쳐졌다.

지난 6월 22일 연세대학교 윤주용 홀에서 열린 김연정 독주회는 비록 학교 연주 홀이었지만 음악의 진정성이 확인된 음악회였다. 사실 개인 독주회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제 격이다. 대부분의 독주회가 그러하듯 연고성에 의한 청중임을 한눈에 파악 알 수 있었지만 피아니스트는 오로지 자기 음악의 아름다운 가치를 표출시키는데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기교와 감성이 잘 조화된 그의 피아노 음악은 맑은 톤 칼라와 유연한 질감, 그러면서도 단단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긴밀한 호흡에서 그만의 피아니즘을 잘 형성해 가고 있었다.




슈만의 클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작품 16의 8곡과 베토벤의 6개의 바리에이션(variattion) 작품 34와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sonata) 제 2번 작품 36을 연주했다.

단지 팜플렛에 아무런 해설도 없고 곡의 제목조차 장식적 흘림체의 활자여서 전문가도 무슨 곡인지 읽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이솝의 두루미의 식사 초대처럼 아쉬움으로 남았다. 앞으로 피아니스들이 자기 세계에 빠져 음악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피아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의 고민도 좀 했으면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 집 건너 피아니스트가 존재하는 듯 한 한국에서 피아노는 만인의 애인이 아닌 자기 혼자만의 애인이 되기 싶다.

청중 기반이 잘 형성된 유럽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할 일은 피아노 청중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우리의 피아노가 어릴 때 한 순간의 피아노 학습과정에 지나지 않고 생활 속에 살아있는 피아노 음악이 되기 위해서는, 진정 피아노를 들을 줄 아는 청중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피아노 음악을 위한 경영 마인드가 필요하다. 때문에 피아니스트를 지나치게 화려한 형용사로 쓸 것이 아니라 피아노 음악의 즐거움을 전하는 전도사인 동사적 어휘로 탈바꿈 시킨다거나 독창성과 창작성으로 청중의 관심을 환기시킬만한 아이디어를 내거나 아니면 그냥 피아노 치는 사람 쯤으로 편하게 생각한다면 피아노의 표현법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생각이 바뀌면 형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혼자서 두 시간 가까이 끌어가는 독주회란 방식은 우리 청중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인내력을 몇 번씩 자진해서 참여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시는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면 이내 답이 나온다. 한국형 피아노 음악회의 새로운 틀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수 백 년을 이어오는 서구 미학의 답습만으로는 더 이상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본다. 결국 청중의 입장선 피아니스트란 무엇일까. 아니 한국에서 피아니스트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 하는 정체성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평자는 앞으로 김연정이란 피아니스트를 통해 이런 피아노의 사회적 관점을 풀어보고 싶어진다.(물론 본인이 원한다는 전제하에) 그것은 또 모든 피아니스트의 꿈일 것이다. 늘 연주만 하고 싶은 자기 욕망의 실현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다. 참으로 탁월한 기량의 피아니스트가 급증하는 현실에서 이는 반드시 풀어야 할 화급한 문제다. 한국 음악의 성장 동력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독주회, 협연, 실내악, 반주 형식이 피아노 표현의 모든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 의 현실에서 새로운 연주 공간과 장소, 사람들의 집회, 타 예술 장르와의 교감을 통해서 더 많은 공간에서 피아노 음악이 들려져야 한다. 이를 피아니스트 스스로가 하기엔 역부족이다. 기획사들이 난립하지만 앞으로 예술철학이 바탕이 된 보다 참신한 기획이 더 늘어나야 할 것이다.

대중 소통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와 해설과 이야기가 있는... 등등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더 근원적인 접근과 입장에서 한국의 피아니스트가 존재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고 싶다.

김연정의 피아노 음악을 들으며 죽을 때 까지 피아노만 치고 싶은 이 땅의 모든 피아니스트의 꿈을 위해 우리는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피아노 밖에 모르는 피아니스트들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문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문화정책과 비평은 또 무엇을 해야 할까. 멋진 연주를 보고나니 이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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