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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무원의 문화사랑

탁계석

언젠가 전라도의 한 지역 공연장에 가서 매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오페라 같은 공연을 하기가 쉽지 않은 곳에서 10일 동안 연속적으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초대권 없는 전석 유료 공연을 추진하는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사연은 이랬다. 시의 문화 과장이 문화회관의 관장으로 오면서 자신의 고향을 위해 뭔가를 남겨 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더 좋은 자리를 마다하고 예산도 부족한 공연장을 맡아 혁신 프로젝트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뒤엎고 자신이 구상한대로 힘차게 몰아 붙였다. 맨 먼저 착수한 것이 초대권 없애기였다. 시장을 비롯한 관내 내노라하는 지도층 인사들에게 조차 단 한 장의 초대권을 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취재를 위한 기자와 평론가는 사전에 좌석을 지정 받도록 했다.

이변이 일어났다. 초대권을 주어도 좌석이 텅텅 비던 객석이 오페라 기간 내내 전석 티켓이 팔려나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여기에 힘입어 문화 교양 강좌를 개설해 예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 시켜 나갔다. 문화 도 소비라면 소비자 역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주민 자원 봉사를 통해 동아리 그룹들이 극장과 친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소프트웨어도 개발해 나갔다. 극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민의 공감대가 확산되자 예산도 증액되었다. 한 40대의 젊은 공무원이 자기 고장의 문화를 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헌신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인지 몇 해 만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접했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제주도에서 있었다. 한 여성 문화 계장이 오페라 ‘백록담’을 만들면서 그 추진력에 놀란 적이 있다. 한번도 지역에서 오페라를 만든 적이 없지만 고장을 대표하는 문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예술가에 앞서 자문을 구하고 예산확보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함부로 공무원들을 싸잡아 ‘문화의 적’이라고 하는 예술인들의 불만에 동의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사실 우리 행정이라는 게 이런 저런 까다로운 규정이 많고 그런 규칙을 지키다보면 어느새 문화 예술의 창의성이 유연하게 발휘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런 한계를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선 자신이 문화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알면 애정이 생겨 안 되는 일도 되는 ‘시각의 눈’이 열리는 것이다.




거꾸로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이런 저런 규정을 들이대면서 하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리 멋진 공간도 효율성 면에서는 물건을 쌓아두는 창고만도 못할 수 있다.
지난 11일과 12일 양일간 문신미술관에서 열린 ‘제 12회 합포만현대음악제’를 보았다.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조각이 있는 미술관은 대부분의 위용을 자랑하는 문화회관의 거대함에서 벗어나 살롱 분위기의 격조가 넘쳐흘렀다.

세계적인 연주가 초청된 만큼 연주력도 매우 뛰어났고 조촐하였지만 관객들의 진지성과 호응도 매우 뜨거웠다. 연주자들도 이런 관객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가며 찬사를 돌렸다. 사정을 잘 모르는 필자는 이곳에서 연주회가 얼마나 열리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정반대였다. 이 음악제도 힘겹게 통사정을 해 장소를 마련한 것일 뿐 이곳에서는 음악회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민이 원해도 일하는 것이 달갑지 않은 공무원들이 이런 저런 규정을 내세워 하지 않는 것이 마산의 문화 환경이라고 했다.

바야흐로 전국의 미술관 같은 공공 문화시설들이 시민의 친화적 활용을 위해 밤 11시 까지 개방해 나가는 추세다. 이렇게 훌륭한 시설이 공무원 편의주의의 포로가 되어 꿈쩍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문화가 없는 도시는 인근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불가피한 것을 보았다. 젊은 세대들이 자녀의 교육과 문화 환경을 위해 주거를 옮기기 때문이다. 출산장려책 못지않게 주민의 문화 향수권도 이제 제고장 지키기에 필수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이곳 공무원들도 좀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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