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이 시대의 명인>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감상법

탁계석

옹골찬 노래의 기백은 어디서 나오나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까. 혼을 빼는 절창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미 남의 히트곡이라 할지라도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완전한 '장사익 버전'을 바뀌는 것은 왜 일까. 이런 궁금증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쯤 되면 단순히 '노래를 기막히게 잘 부른다'라고 두루 뭉실하게 표현하고 말 성질은 아닌 것 같다.

장사익 음악의 본질, 그 가창력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필자가 그의 음반을 처음 들은 것은 대략 3년 전쯤 된다. 그때 까지는 '장사익' 이란 이름은 수없이 들었지만 내 귀와 그의 음악은 인연이 되지 못했다. 나의 시골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분위기가 좋으니 노래나 하나 듣자며 건네 준 것이 그의 제 1집 CD다.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별 밤에 들었던 그의 노래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세계적인 성악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음악회를 본 입장에서 그의 독특한 소리 맛과 창법이 연구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의 소리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한참 때의 그 옹골찬 소리 기백은 마치 폭포수 같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발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 한껏 다져진 웅변의 내공이었다. 일반적으로도 국창의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오장육부를 훓어 내는 듯한 강한 힘이 있는데 소리의 공간성은 그다지 넓지는 않다. 그러나 장사익의 소리공간의 확장성은 장쾌하리만큼 넓다.

다음은 호소력이다. 대개 성악가들은 노래를 할 때 발성에 사로잡혀 가사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데 비해 그는 정반대다. 오히려 詩의 운율 자체에서 호흡과 리듬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누구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장사익 특유의 리듬'이 만들지는 것인데 이것이 그의 매력이다. 이를테면 '동백아가씨' 같은 노래도 템포를 세 배쯤 늘려 잡아 부르면 완전히 딴 노래가 된다. 원전과 주객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 리듬의 자유스러운 변용은 모두 시와 노래가 하나가 된 시 언어의 체질화에 있다.

그는 노래의 가사를 뜯어 놓고 보면 정말 하찮은 내용으로 된 가요는 다루지 않는다. 시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 그자체로 강한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는 '詩'를 선택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원단이 좋은 감으로 옷을 만들거나 싱싱한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미당 서정주의 '황혼 길' 이 그 좋은 예다.

'새우마냥 허리 오그리고,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 길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이제 잠이나 들까….'

구부정하게 허리 굽은 늙은 엄마가 세상 떠나는 노래인데 죽으로 가는 것을 시집 간 딸네 집 가는 것이라 비유한 것이나 '황혼의 산 그림자를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나도 이제 잠이나 들까'. 詩만으로도 절창이 아닌가. 이처럼 장사익은 좋은 시를 고르고 시와 몸이 일체가 되어서 그 몰입에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주문을 외듯 시를 읇조리면 그 안에서 운율이 일어나고 리듬이 살아나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구라도 더 노래를 잘 하려면 우선 노래의 가사를 수없이 되뇌어 '미음' 만들듯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노래에 맛이 녹아드는 것이다.



몸으로 노래하는 시 정신의 극대화
그는 노래를 할 때 발끝에 까지 전기가 오르듯 찌릿 찌릿한 느낌을 느낀다고 했는데 이는 전설적인 러시아의 베이스 가수 샬리아핀이 자신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노래한다' 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장사익은 자작시를 지을 만큼 시에 안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적 노래의 표현을 위해 매우 담백한 생활을 한다.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자연에서 찾는다. 그의 강하면서도 섬세한 호소력은 바로 이 같은 시적 에너지의 발산이라고 본다.

다음은 무대 연출력이다. 그는 늘 흰 두마기를 입는다. 그리고 그는 무대의 솔직성을 잘 간파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신의 것을 드러내는 겸허함이 몸에 배어있다. 그대로인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것에서 오는 편안함, 관객은 그가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우리가 힘겹게 살아온 시절의 고향집 이야기를 들려주듯 노래 속에 빠져들게 한다.
겉으론 화려 하지만 외로운 도시의 고단함과 경쟁에 지쳐 울먹이는 우리들을 따뜻하게 노래로 감싸준다.

그렇다고 그 혼자서 모든 음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여러 악기가 절적하게 동원된다.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처음부터 전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노래에 따라 악기를 적절하게 배분해 다양성 있게 노래에 결합시킨다. 해금, 트럼펫, 콘트라베이스, 기타, 아카펠라 합창, 모듬북, 장구, 북같은 타악기가 동원되고 음악을 만들 때는 팀원들과 충분한 의견 조율을 나눈다.

그럼에도 남는 궁금증은 그의 소리 맛이다. 그는 민요나 창을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살아오면서 여느 사람들이 불렀을 유행가, 이태리 깐쪼네, 영화 음악 등이 비빔밥처럼 잘 비벼져 있는데 그가 노래(1994년)를 하기 전에 25번이나 직장을 바꾸면서 느꼈을 고초가 양념이 된 것 같다. 꿈이 너무 많아 삭막한 현실 적응이 어려운 것이었을까.

온전히 체험의 밑바탕으로부터 쌓아 올려진 그의 노래는 선생으로부터 수없이 쇄내 당하듯 반복 학습에 길들여져 만들어진, 개성 없는 음악과는 다른 것이다. 수백 명이 설수 있는 넓은 세종문화회관 같은 무대에 딸랑 마이크 하나 세워 놓고 3,000명이 넘는 관객을 울렸다, 웃겼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무대를 만들어 가는 자유가 어찌 그냥 되었겠는가.

현실의 체험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노래의 공력
우리를 더욱 무색케 하는 것은 그가 정식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오늘의 유행 같은 유학은 구경도 하지 못한 체 이 같은 경지에 올랐다는 점이다. 유학만 다녀오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 믿는 '인천국제공항의 대탈출'을 뒤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의 노래는 삶이고 철학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방송의 감각적인 쇼가 아니다. 심금을 울리는 것은 진실성이고 그 진실성의 바탕에 검정 고무신을 즐겨 신는 사람, 장사익이 있다. 그는 우리가 달려오면서 버린 것들, 정말 소중한 것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노래 속에 담아 넌저시 물음을 던진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어렸을 때 보았던 서해 바닷가의 타는 노을을 지금도 있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구나. 별을 보기에 우리의 도시는 너무 밝고, 매연이 가득하고, 여유 또한 없다. 이를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장사익이다 .그런 그가 오는 12월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사람이 그리워서'란 주제로 콘서트를 갖는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비디오 세상으로 바뀌면서 가창력을 잃어 가는 세태에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노래는 비디오가 아니라 오디오'라 믿음을 전하는 그는 분명, 우리시대에 가장 탁월한 격정의 서정시인 임에 틀림이 없다.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