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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삶의 희망

탁계석

곤궁한 시절에 예술이 어떻게 위안과 용기.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농요. 민요. 뱃노래. 노동요. 대중가요. 가곡 등 장르는 다르지만 늘 사람의 마음을 달래주어 왔다.

소위 국민주의 예술은 자기 나라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명작을 만들어 냈다.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나 드보르작의 신세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들. 그런가 하면 전쟁의 상처를 달래는 음악 가운데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저 유명한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을 들 수 있다. 당시 프로이센에게 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부모. 형제. 가족을 잃고 집이 파괴되는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안아야 했다. 아버지보다는 아들이 훨씬 유명하게 되었지만 그의 왈츠는 납덩이 같이 내려앉는 회색빛 도시를 일순간에 봄 햇살의 콧노래로 바꾸어 놓았다.





문학. 미술. 무용. 영화 등 예술로 인해 사람들은 현실의 각박함을 벗어나 창조의 세계와 호흡한다. 그 옛날 일부 귀족들이 향유하던 궁정 안의 음악이 클래식이지만 시민사회가 열리면서 문이 활짝 개방되었다. 예술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극장 문화가 없었다. 서민은 마당이나 들. 자연을 배경으로 예술행위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겨우 1900년대 초에 들어서 서울 정동의 원각사가 세워졌다. 이후 해방과 전쟁. 4·19. 5·16을 겪으면서 줄기찬 근대화를 일궈 왔다. 고도성장은 이루었지만 챙기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문화가 그 하나다.

놀라운 건 한국인의 예술적 능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점이다. 지역에도 많은 공연장과 미술관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술관은 있어도 문은 잠겨 있고 공연장은 예산 부족과 아이디어가 없어 공간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공연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부 지자체에서 전문가를 영입해 극장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어 머지않아 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이제 관객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더 나은 예술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양이 필요하다. 학습과 체험이 그것인데 그간 이 과정을 거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예술가들은 많이 길러졌지만 소비자가 부족해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을 이루고 말았다. 자동차로 길이 꽉 막힌 것처럼 예술적 기능이 소화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형상이다.

노래방 등 너무 쉬운 편의주의에만 길들여져 새로운 경험을 하려 하지 않는다면 애써 지어 놓은 공간이 제 기능을 못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 아파트의 고급화. 인테리어의 세련됨. 먹고 마시는 식생활 용품은 모두 국제 수준에 이르렀지만 우리의 정신문화는 성장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문화가 따라 주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멈추고 만다. 도시의 품격과 존중심이 발화되려면 문화 예술의 향기가 생활 속에 묻어나야 한다. 프랑스의 귀부인들은 집을 나설 때 화장을 하듯이 시 한편을 읽고 나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늘 고상한 마음을 평소에 가꾸는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택시 기사들도 저녁이 되면 정장을 하고 발레나 오페라를 감상한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중년층 관객이 가득 자리를 매우고 연중 사시사철 객석이 가득이다. 우리보다 GNP는 훨씬 낮지만 러시아의 관객들은 우리가 축구 선수 이름을 외우듯이 무대의 발레리나 이름을 안다고 한다.

얼마 전 J시에 들렀더니 중앙로 한복판 매장에 화투장을 그려놓고 휴대폰 가격이 ×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힌 적이 있다. 아무리 장사도 좋지만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제재하지 않는데서 한 도시의 이미지가 흐려졌다. 그러고도 ‘예향’이라 할 수 있을까.

문화는 범죄. 청소년 비행. 가정 문제 등 여러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다. 문화가 성숙하면 이들의 사회 비용을 절감시켜 주는 예방효과마저 있다. 직접적으로는 음악치료. 미술치료를 통해 자폐증이나 지체부자유 아이들의 성격을 고치고 있고 고아원 등에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등 특수 아동들의 재활에 힘쓰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더 품격 있고 살기 좋은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예술가와 행정이 함께 뛰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길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사람과 사람이 문화로 소통하는 길도 좀 시원스럽게 뚫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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