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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요즘 판단이 잘 안 서네요

탁계석

신호등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얼마 전 도로의 교통 정지선 소동을 벌인 일을 기억할 것이다. 차동차가 금에 물리면 벌금을 물리는 일로 교통 체증이 벌어지고 시비가 일어났다. 번연히 빨간 불이 켜질 것을 예상하고도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가 교통 혼선의 주범이고 차선을 마음대로 바꾸는 습관성 운전의 피해를 막아보자는 뜻이다. 그런데 정지선 지키기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처럼 원칙이 서질 않고 술 취한 사람처럼 갈 지(之)자 걸음을 걷는 듯한 혼란에 경제난 까지 겹쳐 국민들 대부분이 희망 없이 산다는 보도는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일부에서는 지루한 영화나 공연을 보듯 이런 혼란이 빨리 끝나기만 바란다고도 했다. 툭하면 벌 때처럼 달려드는 세태라 입을 다 문 체 모른 척 하는 게 최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엄정한 비평은 사라지고 껍데기 축제 같은 이벤트 문화만 늘고 있는 느낌이다. 인간 세상도 물이 혼탁해질수록 독성에 강한 잡종 어패류만 살아남듯 생태계 오염과 우리 현실이 무엇이 다르랴. 개혁, 진보를 외치는 주장 속에 이런 ‘독성’은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두 얼굴을 가진 민간위탁 신중해야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민간위탁 문제가 논란이다. 어처구니없는 문제여서인지 어쩐지 평론가들도 입을 닫고 있다.
나는 98년 세종문화회관 민간위탁을 주도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이랬다. 세종문화회관 개관 20년에 관장이 21명이나 바뀌어 평균재임 기간이 11개월이었다. 구청장들의 임시 정류장인 셈이다. 예술단체들은 잘 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 평가도 없고 성과도 없다. 예술인에 대한 처우도 답보상태였다.
한 나라의 공연 중심 센터의 首長이 임명장에 도장도 마르기 전에 자리를 옮겨서는 예술이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극장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예술단체와 이를 존중하는 행정의 지원이 바로 설 때 가능하다는 게 소신 이었다. 그래서 당시 발뺌을 하는 서울시에 도전장을 내고 민간위탁 선봉에 섰다. 그러나 법인화 후의 세종문화회관은 산 넘어 산의 혼돈과 고통을 지금도 겪고 있다. 민간위탁 정신이 제대로 빛을 보려면 민간위탁 그 자체 못지않게 이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 중요한데 변수는 곳곳에 늘려 있었다.
민간위탁이 효율성 추구 이면에 희생되는 보이지 않는 가치는 파묻히고 실적주의가 목표가 될 때의 문제도 가볍지 않다. 그 함정을 피해가며 바른 길을 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동시에 국립극장의 책임운영기관화도 맞물려 시험대에 올랐다.
지방 곳곳에서도 민간위탁이 늘어나 자율 경영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런 한편에선 ‘변종’이 생겨났다. 일부 지자체가 문화공간을 시설관리공단에 넘긴 것이다. 시설 관리자가 문화공간의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전혀 예측 하지 못한 민간위탁의 변수가 연출된 것이다. 언젠가 내가 아는 어느 市의 문화회관에 ‘관장’을 찾으니 어느 동의 ‘동장’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 동장이 된 관장은 모르는 문화 기관에 있는 것 보다 오히려 동장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때 비로써 나의 생각과 판단이 너무 순진했다고 생각했다. 민간위탁이 가야할 방향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이것도 지역의 형편과 사정, 기관의 특수성을 신중히 고려해야지 무조건 민간위탁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능력자도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민간위탁의 명분을 내세워 흔드는 현상도 있다고 했다.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그 역기능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이다.
물론 몇 몇 공연장들은 법인화를 통해 전문성, 자율성을 확보하고 탄력적인 회계, 예산 운용을 통해 굳은 관 체질을 벗어나 경영합리화를 하는 쪽도 없지 않다.

<사라지는 국립의 역할

그러나 이제 ‘민간위탁’의 보다 적절한 용어 정립도 필요하고 법인화에 걸 맞는 실질적인 이사회 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형식적, 요식화한 이사회 제도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아울러 예술단체의 경우 법인화된 후에도 시시콜콜 간섭 하는 주무부서나, 그대로 권한을 가지고 쥐락펴락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민간위탁은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민간위탁을 하는 것은 공연장을 민간위탁 하는 것과는 경우가 달라 보인다. 공연장 보다 훨씬 더 어렵고 위험한 요소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미술품 구입 등이 실적주의에 밀려날 위험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마냥 절간처럼 접근성이 좋지 않은 미술관을 활성화하기 위해 내부의 노력의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보면 이래저래 고충이 깊을 것 같다.
다시 민간위탁 이후 국립 예술단체의 변화를 보자. 이제 국립도 티켓 가격 경쟁에 돌입했다. 예전에 2-3만원 하던 티켓 가격이 10만원을 넘어 20-3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정부에서 충분히 지원 않고 자립하라니 민간사업자와 국립의 차별성이 없어진다. 무늬만 ‘국립’이지만 사실상의 ‘국립’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미술관에 대입하면 민간위탁 여부에 앞서 국립현대미술관이 필요한가, 아닌가로 귀결될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이 당장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행정적으로 경직된 예술기관의 안이한 존재 방식도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너나없이 국립의 이름을 걸고 백화점식 마케팅 상술을 펼쳐야 능력을 평가 받을 수 있는 것도 문제다. 국립예술단체 어디에도 자료관 하나 없고 민간단체들 앞에 권위를 내세울 수 있는 노하우 축적도 되지 않았다. 우리 기준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제 기준에 대입 시켜 보아야 한다.


문화 둘러싼 편견과 무지, 자폐문화 극복이 우선

정지 신호를 무시하듯 정책 혼선이 난무하고 고급 승용차에 거름 실고 달리는 신도시 투기 지역의 里長보듯 한 세태에 국립현대 미술관마저 민간위탁 바람에 휩쓸리는 것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그 보다는 최선을 다해 큐레이터의 전문성 확보, 직원의 사기 진작과 예술적 소신을 펼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스템, 불필요한 옥상옥의 행정 조직 정비, 예산지원 확대, 불필요한 간섭 배제 등의 실질적인 자구책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이런 노력을 하고서도 안 된다면 모르지만 큰 나무는 잘못 옮기면 죽는 법.
사실 이 보다 급한 것은 우리 문화를 둘러싼 사회 곳곳의 편견과 무지, 자폐 문화의 극복이 아닐까 한다. 더 바란다면 떠들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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