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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송영옥의 <최승희 장고춤>(1981)

이석우

최승희의 무용혼, 신무용으로 살아난 민족의 가무정신




시간의 씻김에 사라진 인물을 만나는 일은 즐겁다. 최승희 (1911-1969)를 읽으면서 나는 운명을 헤쳐가는 인간, 역사의 무게, 분출하는 예술혼을 느낀다.

최승희는 1911년 경성에서 사남매 중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숙명여학교 졸업. 일본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본 것이 그의 춤 인생의 전기가 되었다. 다시 돌아간 동경생활(1933-1937)은 화려한 재기였으며, 3년 여(1947-1940)에 걸친 서구공연으로 그는 세계적인 무용가로 우뚝 섰다. 어쩌면 그녀 성공의 원동력은 그의 핏줄 속에 잠재워 흐르고 있던 우리의 가무정신을 생명으로 분출시키는데 있었는지 모른다. 미국과 전쟁, 중일전쟁이 진행되던 1941-1944년 사이에는 친일행위를 회피할 수 없었다. 해방 후에는 북한생활(1945-1957)에서 춤의 이념화를 요구 받더니 끝내 비운의 종말에 이르렀다.

이러한 최승희의 삶의 역정은 어찌 그리도 강렬한가. 그녀는 무용혼으로 온 몸을 불사르는 열정의 춤꾼이자 자유정신의 소유자였다. 또한 우리민족 전통춤의 동작과 기법의 우수성을 간파한 통찰력을 가진 선구자였다.

여기 우리가 보고 있는 작품 <최승희의 장고춤>이 재일화가에 의해 그려졌다는 그 사실부터가 암시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재일한국인, 조선인들이 겪었던 그리고 당하고 있는 차별과 가난, 정체성에 대한 갈등에 대해서 익히 들어 왔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재일화가들의 처지도 이와 다름이 아니었다. 그들의 보다 큰 괴로움은 남과 북, 일본 어느 쪽에서도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음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장고춤의 작가 송영옥(1917-1999)의 생애와 작품들은 이 고난의 유랑 디아스포라(Diaspora)적 삶을 그림속에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1917년 제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그의 그림 중에 <삼면경>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는 자신의 분열된 정체성 즉 남과 북, 재일교포라는 자신의 처지를 비유하여 그린 그림이다. 그의 생활공간은 3-4평에 불과한 침실이자, 화실이며, 부엌이자, 거실이었다. 기자는 한마디로 “그는 정말 가난했다”라고 썼다.

최승희의 그 많은 춤 영상 중에 왜 하필이면 장고춤을 택했을까. 사진자료 중 1939년에 찍은 한복을 입고 장고춤을 추는 흑백사진이 있다. 사진과 그림 사이의 유사성으로 보아 이 사진을 모본으로 하여 그렸을 것이라는 강한 추정을 하게한다. 우리의 전통 가무 중에 장고춤이야말로 춤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의 합일체다. 감히 장고춤이 우리민족의 기질에 가장 맞는 춤이 아닌가 한다. 최승희 장고춤을 그린 송영옥의 제작 모티브도 앞서의 민족정서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이 그림은 광주 시립미술관의 하정웅 컬렉션에 포함되어있다.

최승희 자신이 상당한 수준의 그림수집가였다. 1944년 동경의 제국극장에서 열린 장기 독무공연 때는 최승희 춤을 소재로 한 전시도 열렸다. 1955년 북한 생활 중 최승희 무용인생 30주년 기념공연 때에도 미술전이 함께 열렸다. 이들 문화유산들을 찾아내는 일이 또 하나의 과제로 남는 셈이다.

최승희를 생각하면 우리민족 스스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자생론과 그 반대편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떠올려진다. 최승희의 교육배경이나 활동, 신무용의 세계화 등이 일본의 국가적 역량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나칠 수 없는 까닭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식민지화됨은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근대화에 일정부분 기여했다는 주장이 아닌가.

이것과 무관할 수도 없는 성격의 것이 최승희에 대한 친일 논쟁이다. 예술가의 자기완성 추구와 민족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예술가의 면책범위는 어디까지이며 그것은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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