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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원초의 자연속으로 떠난 영원한 방랑자

김상채

고갱-타히티, 열대의 아틀리에 : 2003년 10월 3일 - 2004년 1월 19일 파리 그랑빨레

남태평양에 떠 있는 진주,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비너스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낙원의 땅, 공식명칭이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로 알려져 있는 타히티는 남태평양 동쪽 4백만 평방km에 흩어져 있는 총 118개 섬(총 면적 4천 평방km)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섬들은 각각 소시에테 군도, 오스트랄 군도, 마르키즈 군도, 투아모투 군도, 만가레바 군도 등 5개의 군도로 나뉘어지며 이중 소시에테 군도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이 크고 작은 섬들 중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섬이 바로 타히티이다. 17세기 이래 유럽인들의 탐험이 시작되었으며 18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배하에 있다가 1840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지금은 프랑스 자치령으로 천혜의 자연과 아름다운 경관덕택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세계적인 관광지이기도 하다.




열대의 남태평양에 떠 있는 이 낙원의 섬, 타히티는 고갱과 함께 파리로 입성했다. 바로 '고갱-타히티-열대지방의 아틀리에'라는 전시가 지난 10월 3일부터 1월 19일까지 파리의 그랑빨레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고갱 추모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예술을 따라서 타히티문화를, 타히티의 민속문화를 통해서 고갱의 예술적 업적을 보여주고자 하는 복합적 의도를 가지고 기획된 전시이다. 얼마전 뤽상부르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고갱과 퐁따벤의 모험이라는 전시가 퐁따벤 화파와 고갱의 브르따뉴 시기에 초점을 둔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고갱의 타히티 시기에 중점을 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전시회는 고갱의 예술을 폴리네시아의 민속과 병행해서 비교 고찰하도록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고갱을 따라서 1세기전의 타히티를 그의 예술과 함께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회화, 수채화, 목조각, 부조, 세라믹, 판화, 그리고 자신이 타히티 여행을 기록한 작업노트 등 200여점이 넘는 고갱의 작품과 그와 동행했던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앙리 르마송의 타히티 기록사진,그리고 폴리네시아의 마우리 족들의 조각품과 민속품 등의 작품들이 고갱의 타히티 여정을 따라서 전시되었다. 1891년부터 1893년 첫번째 타히티 체류이후 파리로 돌아와 타히티에서 제작했던 작품전시회를 가졌으나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했다. 두번째 타히티로 떠나기 전 파리에 거주하는 동안 인도네시아의 자바여인과 함께 살면서 접하게 되는 자바 불교는 후에 그가 제작했던 몇몇 목조각과 작품속에서 드러난다. 얼굴은 타히티의 원주민의 모습으로, 신체는 석가모니의 항마촉지인상(降魔觸指印像)을 표현한 <조개껍질이 있는 우상:1892>은 고갱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불교적 이미지 이다. 또한 이번 전시의 핵심 작품으로 1949년 고갱탄생 100주년 기념전에 한번 출품되고 50여년만에 처음으로 프랑스관객들에게 선보였던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 1897-98>라는 대작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불교적 화두를 붙들고 있다. 이 시기 그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목도 했으며, 심장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을 하고 급기야는 자살을 시도할 만큼 극도의 불안과 고통속에 빠졌던 시기이다. 자신에게 닥친 번민 맢에서 이 작가는 부처의 깨달음 같은 인생의 근원적인 해답을 찾고자 했던 것이였을까? 문명에 찌든 유럽사회와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야생의 건강함을 간직하고 있는 이 낙원의 섬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예술을 실천할 수 있는 그가 꿈꾸는 에덴 동산 같은 곳이었다. 타히티 시기 작품들은 타히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속과 신화, 그리고 원주민들의 순박함을 밝고 강렬한 색채와 반자연주의적인 자유로운 양식으로 펼쳐 보였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이후 마티스를 중심으로 태동하게 되는 야수파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회화 작품이외에도 목조각과 부조, 그리고 강렬하고 대조적인 힘과 원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목판화 역시 고갱의 뛰어난 예술적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인상파로부터 출발하여 19세기 말 상징주의 운동과 관련하여 모로와 르동, 그리고 사반느와 더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갱은 퐁따벤에서의 원시적 자연을 추구하며 종합주의를 이끌어 냈던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예술가로 20세기 현대미술의 전개에 단초를 제공하였던 선구자였다.

문명사회에 대한 거부감과 야생의 자연에 대한 동경,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토속신앙과 민속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이 아름다운 낙원으로 찾아왔던 고갱.

타히티에서 그는 신과 원시종교의 정령이 지배하는 지상의 낙원에 사는 아름다운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순수함과 마오리족의 민속문화에 대한 끝없는 애정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단란했던 가정과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그는 말년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고통과 가난의 긴 여정을 보내다가 마르키즈 군도에서 1903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는 히바오아 섬의 공동묘지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타히티의 아름다운 자연과 타히티 사람들 곁에 영원히 머물게 되었다. 지난 10월 3일부터 진행된 전시는 약 100여일간의 기간동안 45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여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고갱의 지명도나 전문인들을 위한 미술사적 평가로만 접근하지 않은, 다중적 관점에서 접근한 뛰어난 기획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관계자의 말처럼 '전시를 위한 관객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을 위한 전시가 되어야 한다'하는 말은 비록 상업적 전략이 숨어 있을지라도 관객이 즐기는 전시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전시는 2월 29일부터 6월 20일까지 미국 보스톤 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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