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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작가와의 짧은 대화, 긴 상념 : 문화예술 정책의 한 단면

김상채

뽕피두 센타의 국립 현대미술관이 2000년 재개관 이래 4번째 상설 작품 교체작업을 지난 12월에 진행하였다. 1905년부터 1960년까지의 작품이 전시된 5층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1960년대 이후 작품을 전시하는 4층 전시실은 이전에 비해 확실히 분위기가 변했다. 건축에서부터 설치, 조각, 회화작품들을 총망라했던 전시실이였지만, 이전 전시작품들은 대체로 구상위주의 작품들이 주류였다면, 이번 새롭게 교체된 작품들은 설치를 포함한 비구상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어느 미술잡지 기자가 현대미술관 관장인 알프레드 빠크망과(Alfred Paquement)의 인터뷰 중, '이렇게 비구상작품으로 전체 전시실을 가득 채운 저의가 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미술관 프로그램에 의한 기획이라고 다소 두리뭉실하게 대답을 하였지만, 인터뷰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미술관 측의 저간의 고민을 엿볼 수가 있다. 세계미술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프랑스 현대미술의 부흥을 위한 조심스런 시도를 감행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방면에서 현대미술 지원정책과 더불어 활성화 방법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프랑스 미술계에서 작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는 것일까?. 더불어 그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이 발동해서 파리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을 만나서 그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파리 근교의 작은 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서 만난 작가, 이자벨 뒤뻬레(Isabel Duperray:1962-), 그녀는 프랑스 중남부 도시 생 테티엔느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다시 파리의 장식미술학교에 입학을 해서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 여인답지 않은 껑중한 키와 수줍음 많은 이 작가는 한때 그래픽디자이너로, 건축설계사로 일하면서 작업을 병행해 오다 몇 년전 오직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작가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거냐고 물으니 '뭐 잘되겠지요' 라고 대답은 하지만 그녀 역시 적잖이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자신의 작품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들떠 있다.
<여행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훌쩍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휴식이 아니고 작업의 연장선상이라고 한다. 일상과 도시를 떠남으로서 그녀의 작업은 시작된다.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들판 또는 벌판,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고 자연상태, 불굴의 생명력을 지닌 땅, 그 땅과 벌판을 걸으면서 그녀를 감동시키는 대자연의 숨결과 풍경들에 감화 받는다. 그러한 감동의 이미지를 다시 작업실로 돌아와서 자신의 상상력으로 캔버스에 되살려 놓는다고 한다. 그녀에게 작가란 상상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프랑스 미술시장에 대한 분위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네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역시 가장 큰 고민은 예술가로 살아 살면서 부딪치는 경제적 곤궁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다. 실제 프랑스 인들은 현대미술보다는 전통미술, 또는 고미술 쪽에 더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한다. 현대미술 작품을 사는 사람보다는 고미술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런 탓에 일부 유명작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실제 작품을 판매해서 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예술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그나마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자신 또한 실제로 무명에 가깝지만 2002년 문화부에 신청한 작업계획서가 채택되어서 2년동안 매달 2300유로(약 330만원)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벨라스케스 문화공간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실제 찾아보면 여러가지 작가 지원정책들이 있긴하지만 자신은 조금 소심한 탓에 그런 것들을 많이 활용하지 못한다고 한다.(그러면서 내게 여러가지 지원정책에 관한 자료를 알려준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국작가들이 얼마나 척박한 풍토속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지, 여전히 19세기의 사고로 21세기 문화를 이야기 하는 우리네 정부 문화예술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무리 프랑스가 현대미술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하더라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문화예술정책이 현존하는 한 그들의 예술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 파리에서 매주 전시장을 다니면서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간간히 뛰어난 작가들도 보이지만 대체로 한국작가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세계무대 어디에 나가도 경쟁력을 충분히 갖춘 뛰어난 한국작가들은 이미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수한 작가들을 지원해 줄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정책이 별반 없으니 과연 우리작가들은 자수성가해야 하는, 여전히 60년대식 조국근대화의 일꾼이 되어야 하는가?

그래도 여전히 희망은 뽕피두 센터 현대미술관에 30대의 나이에 당당하게 안젤름 키퍼나 앤디 워홀과 같은 세계적 작가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고 있는 한국작가 '구정아'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예술계의 미래를 보기도 한다. 다만 여전히 한국작가들은 끈기있고 꾸준하게 세계시장에 도전해 보지 않고 속전속결로 승부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는 듯하다.
잠시 작가와의 대화속에서 나는 그녀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이 나라의 문화예술 지원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진 탓에 더 이상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세계속에서 행복해 하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대신에 짊어져야 할 또다른 삶의 무게는 그녀에게 더 이상 짐이 아니라 인생의 에너지인 것이다. '언젠가 꼭 한국에 가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그려보고 싶다'는 이자벨 뒤뻬레, 아마도 그녀가 우리의 아름다운 산천을 본다면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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