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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1세 김보현 화백의 뉴욕 작업실,‘ 미술관’됐다

이규현

이규현의 현장포커스(10)

비영리 전시실로 개관… 한국 현대미술 선보이게 돼

아흔 한살 현역화가의 보석같은 화실이 뉴욕중심의 작은 미술관으로 새롭게 단장을 했다. 한국의 미술작가들을 뉴욕에 소개하는 전시공간으로도 쓰이게 됐다. 소호, 첼시와 함께 뉴욕 미술애호가들의 단골 거리인 노호(Noho). 이 지역에서도 교통의 중심인 라파예트 스트리트 417번지(417 Lafayette Street) 4층에‘왈드 앤 킴 갤러리(Wald and Kim Gallery)’라는 비영리 전시공간이 지난 4월 22일 문을 열었다.



김보현(Po Kim, 91세) 화백의 회화와 그의 부인 실비아 왈드(Sylvia Wald, 93세)의 조각·평면작품으로 개관전시(4.22-5.15)를 하고 있다. 김보현 화백은 1957년부터 뉴욕에서 자리를 잡아, 20세기 후반 뉴욕화단의 격변시기를 직접 눈앞에서 겪었다. 그의 작업실은 이런 뉴욕미술의 역사와 김 화백 개인사가 담긴 건물이다. 김 화백은 이 건물을 1978년 구입해 자택 및 작업실로 써왔다. 당시엔 위험하고 허름한 동네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뉴욕미술의 중심지가 됐다. 뉴욕 주정부가 이 건물 일부를 비영리 목적의 전시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허가를내자, 김화백은 건물4층 을미술관으로 꾸미고 본인과 아내의 이름을 따서‘왈드 앤 킴 갤러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전체 8층인 이 건물의 7-8층은 이 부부작가가 작업실 및 거주공간으로 쓰고 있다. 예약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업실도 공개한다. 김 화백의 작업실을 세 번 찾아 갔는데, 갈 때마다 그는 바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쓰러져서 못 그리게 되는 날까지 당연히 계속 그린다”며 붓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다. 뉴욕에 정착한 1957년 이후 30여년 동안 한국사회와 접촉을 끊은 채‘사라진 화가’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조선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1940년대에 영문도 모르는채 공산주의자로 몰려 옥살이와 고문을 당하다가, 1955년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초청을 받은 것을계기로 도망치듯 미국에 왔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비행기가 뜨는 순간, 이제 비로소 마음 놓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입주작가 전시 등 열려
김 화백은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2년을 보내고 1957년 뉴욕으로 무작정왔다. 넥타이공장에서 넥타이에 색칠하는 일도 하고, 건물페인트도 칠하고, 이삿짐도 날랐다. 점차 그림만 그릴 수 있게 되었고, 60년대부터 NYU, 프랫 등 뉴욕의 미술대학에서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국에서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겁이 나 한국 사회에는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국과 접촉을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 였다. 뉴욕을 오가는 미술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몇 번의 갤러리전시를 하게
됐고, 1995년 예술의전당 개인전,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 회고전으로 한국화단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진세월을 겪은 화가가 상처를 보듬어그린 그림은 오히려 낙원같은 편안함을 준다. 국립현대미술관 기혜경 학예사는 그 작품에 대해“자신의 주변과 사회에 보내는 소리없는 함성이자, 삶이 자신에게 지워놓은 고통과 그 것을 내려놓고 쉴 곳을 발견한 자가 노래하는 환희의 가락”이라고 했다.

반세기가 지나면서 조국에서 받았던 상처가 잊혀진 듯, 김 화백은 이 전시 공간을 사용하고 싶다는 한국 정부측 제안에 흔쾌히 문을 열어줬다. 올해 말에는 뉴욕 한국문화원이 개원30주년기념으로 뉴욕에 기반을 둔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전시가 이 갤러리와 뉴욕 한국문화원 두 곳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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