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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김승영 / 감각과 사유를 넘나드는 소요유(逍遙遊)

김영순

이 작가를 추천하다(14)

예술의 아우라는 과연 복제기술 때문에 사라졌을까? 발터 벤야민의 진단이 예술계의 지식정보로 수용된 즈음, 예술은 신(新)지식담론의 미디어로 시장자본주의 메커니즘에 편입되었다. 과거의 영적인 치유능력이나 신탁의 아우라를 상실한 자리에 황금의 물신이 자리잡았다. 예술가들은, 어떻게 만연된 담론의 범주에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할 미소한 사건을 쉽고 빠르게 만들어 황금의 알을 낳는 거위대열에 끼어볼까 전력투구 하고 있다. 비평도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제도도 모두 협력체가 되어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러한 병적 징후에 죽음의 선고와 부활의 촉구가 거듭되고, 창의적인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갱신을 도모해왔지만, 태어난 순간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예술의 숙명에 복종하기로 한 것일까? 이제는 순수를 가장하는 일조차 그만두고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욕망한다. 정신적 존재로서의 가치가 통용되던 시대에 억압받았던 욕망의 한풀이가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이러한 대세에도 불구하고, 일상과 상상계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자연생명의 이법과 최신 인공기술을 가로질러 감각과 사유사이에 예술의 거처를 새로운 체험방식으로 제시하는 탁월한 직관력을 지닌 무애의 작가가 드물게 존재한다. 그 거처에서의 사건들은 관객의 기성의 지식과 타성화 된 습관을 전복시켜, 과거화 된 감각기관을 거듭나게 한다. 그것은 감성과 정신의 원활한 대사를 작동시켜 잃어버린 예술의 아우라와 망각되었던 신통한 능력까지 회복시켜준다.








김승영은 바로 이 드문 작가의 일원이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뉴욕의 P.S.1과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스튜디오를 비롯한 국내외 입주작가 프로그램을 유랑하며 글로벌아티스트로 작품세계를 펼쳐왔다. 그는 작품자체를 자신과 세계를 투사하는 거울로 간주하면서 매 작업마다 지극히 사적인 체험과 사유에서 비롯된 정체성을 탐문해왔다. 그것은 역사나 지역사이의 갈등과 대결이나 오해를 해소하며 우리 모두의 내면에 내재된 유년의 기억을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개인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어둠으로 살아나곤 하던 상처를 공동의 트라우마로 불러내, 사람과 사물과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치유 받을 수 있는 의례로 베풀어지기도 한다.

빈곤과 폭력의 장소로 유명한 할렘공원에서 낯모르는 공원의 방문객들과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린 평화와 행복이벤트가 그것이다. 참여자들과 단번에 연대감을 갖고 유쾌하게 비행기날리기를 했던 체험은 할렘이라는 장소의 어두운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신선한 의례가 시작된 장소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종이비행기에 점자로 ‘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가’라는 문구를 넣어 시각예술의 타자로 소외되었던 시각장애인에게까지 소통의 기회를 열어놓았다. 또 다른 작업은 일제식민지기에서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기간 한국근현대사의 트라우마의 장소가 된 기무사공간에서 펼쳐졌다. 지역주민들의 열망과 미술계와 미술관측의 일사분란한 욕구가 마침내 공공의 전시공간으로 거듭나게 된 이곳은 지난 한해 한국 미술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세대주가 된 국립현대미술관이 첫 집들이 <신호탄>전의 공간프로젝트부분에 김승영을 초대했다. 그는 거칠게 쌓아올린 벽돌 사이에 4대의 앰프에서 발성하는 35개의 스피커를 벽 전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예리한 연장으로 도려내듯 벽을 깨 균열을 만들고 부서져내린 벽돌의 잔해가 널브러어진 살풍경을 연출했다.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폐허에서 빗소리가 들리고 전력을 다해 탈출하려는 듯 벽에 부딫쳐가며 날아올라가는 새의 날개짓 소리가 들린다. 소리는 벽을 애무하듯 스피커들을 옮겨가며 파동친다. 관객은 그 존재도 이미지도 없는 새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관음(觀音)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벽으로부터 울려오는 소리가 관객의 온몸의 촉각을 일깨우고, 개인적으로 이 장소와 무관했던 사람들에게 이 장소에 각인된 트라우마의 기억을 몸으로부터 사유하게 한 것이었다.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소리를 이미지로 바꾸고 이미지가 다시 감각을 불러내, 인간과 사물이 더불어 소통하는 김승영의 유무궁(遊無窮)의 세계가 붕(鵬)이 되어 날아오를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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