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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김홍식 / 도시의 관찰자에서 해석가로 서다

조은정

이 작가를 추천한다(16)

원하는 이미지를 포획한 작가는 필름에 담는다. 감광과 산에 의한 부식과정을 거쳐 사진의 형태를 이루는 층위가 다른 미세한 입자 하나에 또 층위를 다르게 하여 잉크를 입힌다. 사진, 판화, 조각이 어우러진 이 번쩍이는 금속판의 이미지는 작가가 발견한 것일 수도, 조합한 것일 수도 있다. 여러 판의 조합을 통해 그리고 반복되는 부식을 통해 자신만의 스트로크를 심는다는 점에서 판화로 부각되는 이 결과물은 지극히 회화의 영역에 속한다. 그는 판화를 통해 현대미술의 제작과 내용에 다가선다. 우선 ‘복제’라는 기법에 주시함으로써 촬영, 복사, 실크스크린, 레터링 등 사진을 찍고 나타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몰개성화와 상투화되어가는 삶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서 복제는 표현 방식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초기에 포획할 당시 명료했던 이미지는 실크스크린, 포토에칭, 영상, 렌티큘러 등 사진을 통한 생산물을 현실화하는 과정에 동원된 기법이자 결과물의 표면 위에서 불분명하고 모호한 형태를 유지한다. 일상의 공간이지만 경계가 제거되기도 하고 어느 부분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나는 화면은 감광과정에 작가가 개입한 결과일 뿐 어떠한 트릭도, 복선도 없다. 작가는 관찰자로서 객관적 거리를 두고 도시를 보여줌으로써 근대기, 사람들이 없는 도시풍경을 보여준 아제의 사진을 연상시킨다. 특정인이 제거된 파리를 도시 자체로서 보여줌으로써 기록성을 회복하고 전시주체로서 존재하는 아제의 사진처럼 그는 판화를 전시 대상으로 전이시킨다. 도시의 관찰자 혹은 플라뇌르로서 근대기 화가의 시선은 현대라는 도시 공간에서 다른 매체로 현실화되어 나타나는 것을 보곤 하는데, 특히 김홍식의 화면 앞에선 더욱 그러하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인파를 바라보던 그녀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만났다. 그러한 감정의 기록에서 출발한 도시의 관찰자 혹은 산책자 시선은 회귀한 자신의 도시 서울에서도 재연되었다. 단절과 결핍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순간 번뜩이는 칼날같은 인식과 오랜 시간 사유를 통해 인지되는 존재감의 영역에서 드러나는 치명적인 상처인 때문이다.



여성이자 주부이자 작가라는 인식은 결국 소속한 공간에서 위치표식임을 전제로 하여 그 공간의 다른 상징들을 읽어가는 작품을 생산하게 하였다. 등 관찰자와 관찰대상자로서 자의식을 보여주던 작품에서 관찰자적 시점을 옮아간 <불안한 진실들> <도시 읽기> 등은 바로 그러한 위치 표식에 대한 이해들을 보여준다. 잇달아 911테러와 숭례문화재 사건에 대면한 인간 행위의 유비를 다룬 <그날 이후>, 변화하는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바벨탑> 등 도시와 인간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일련의 작품을 보여준 것은 인식의 확장이란 점에서 예고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의 작가들이 그러듯 최근의 <통의동에서 길을 잃다>는 관찰자의 예견을 뛰어넘어 변화하는 도시의 관찰자인 자신이 변화의 동인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예상을 뒤엎는 몇몇 작가를 일러 우리는 작가적 의식이 있는 작가 혹은 좋은 작가라 칭한다.

외연으로서 존재하는 도시의 형식을 고수하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시각을 드러냄으로서 김홍식의 도시풍경은 사진으로서 실재하는 시각적 대상물이자 심적 상징물로 존재한다. 자연계로서 인간 군락인 도시는 다수의 삶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인간계 전체를 성격 짓게 하는 움직임과 조건을 관장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파리의 재개발 이후 겪은 도시 생활의 변화는 강제조명에 의한 비현실적 밝음, 도시문제, 소외 속의 알콜중독 등을 포함한 것이었다. 눈앞의 여염집 아가씨가 저녁의 그녀는 아닐까 의심하던 파리의 부르주아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작가는 거리를 소요하고 관찰하고 이 불명료한 도시생활을 기록한다. 그리고 변화하는 도시의 변화에 쉬이 동참하기 어려운 그녀 스스로 그 ‘변화의 물꼬를’ 튼 사람임을 확인한다. 조심스럽고 깍듯한 그녀이기에 잔 다르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거리두기라는 비겁한 플리뇌르의 시선을 거두어간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역은 작가임을 이 도시의 가장무도회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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