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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이주형 / 회화에 복귀된 몸

이선영

이 작가를 추천한다(22)



종잡을 수 없는 현대미술에 대한 회의와 생존에 대한 압박으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던 이주형은 어느 날 다시 미술로 돌아와 2004년에 첫 개인전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박영 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올해에는 <네임>, <포자>, <배아> 시리즈를 집중적으로 선보였다.물론 이 시리즈들은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개체발생이 계통 발생을 되풀이 하듯, 한 해에 그간의 성과를 압축적으로 풀어 놓으면서 작가로서의 역량을 각인시켰다.

그는 점선면 같은 기초 조형요소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그림을 다시 시작하였고, 이에 대한 인상적인 성과물이 3회 개인전 ‘네임’(2008, 아트포럼뉴게이트)이다. 단파장의 강한 에너지를 가지는 보라색 계열의 선적 흐름은 매끄러운 표면을 자유롭게 유목하는 선들로, 변환과 생성을 향한다. 그것은 기본적인 조형 언어 중의 하나인 점, 마찬가지로 고정된 지시대상에 묶여 있는 재현적 사고 로부터 벗어나려한다. ‘ 네임’은 동일자로 완전히 전유할 수 없는 차이들의 흐름을 지칭하는 이주형 만의 언어인 셈이다. 창이나 카메라같이 시각이 주파하는 단일한 구멍으로 압축되는 자기 동일성의 방식은 눈과 몸을, 사고와 삶을, 언어와 사물을, 이성과 영혼을, 외부와 내부를 분리하는 세계관을 낳았다.



이주형은 이분법적 사고가 야기하는 자기폐쇄를 벗어나 유연한 그물망으로 이루어진 타자의 장을 열어 제친다. 그의 작품은 어떤 시점으로부터 출발하는 선적 좌표에 의지하는 대신, 오감이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복합적인 장(場)이 된다. 여기에서는 선형적 인과론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결정되는 배열이 중시된다. 또한 그것은 불확정성, 불연속성, 불완전성 같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전환적 패러다임과 조우한다. 고정된 시점에 의존하는 안정적인 시각 코드가 중심 집중적 권력구조를 낳는다고 볼 때,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정치적인 의미로도 확장될 수 있다. 올 3월 성곡미술관에서 열린‘내일의 작가’에서 집중적으로 전시된 포자 시리즈는 정점(定點)에 포박된 근대적 시선을 해체하고 몸을 복귀시켜, 주체와 세계가 하나가 되는 광경을 보여준다. 공포와 욕망이 머리카락처럼 한데 얽힌 포자 시리즈는 회화라는 고정된 형식에 살아있는 형태를 이식시킨다. 배경과 형태, 존재와 무, 밝음과 어둠의 대조 속에 드러나는 포자들은 공포와 욕망처럼, 또는 죽음과 삶처럼 언제든지 서로의 위치가 반전될 수 있는 역설적 관계를 가진다.

요즘 그가 열심히 그리고 있는 시리즈는 배아이다. 인간·생명·우주·조형의 씨앗으로 간주될 수 있는 배아는 미지의 내부를 감싸는 외피의 파열이 진행 중인데, 그것이 어떤사건으로 전개될 지 기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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