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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이명호 / 대지를 캔버스로 작업하는 사진가

김승곤

이 작가를 추천한다(33)


커다란 흰 천을 배경으로 서있는 ‘나무’를 바라보는 관객은 난감하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처럼 보이는 나무는 특별히 볼만한 것이 없다. 두 대의 건설용 장비 끝에 물려서 바닥까지 늘어뜨려진 커다란 무명 천을 드리우는 작업은 만만치 않은 비용과 인원과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출현하는 것은 극도로 미니멀한 세계다. 환경으로부터 분리되어 단순한 형태로 제시된 그의 나무는 특정한 장소의 개별적인 이름이 아닌 나무의 보편적인 개념을 환기시킨다. 가림과 드러냄을 통한 의미의 분절화, 장소(Site)와 피사체와의 관계의 개입과 단절은 그의 초기 작업을 읽어내기 위한 키워드다.




그를 풍경사진가로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풍경사진에서 보기를 기대했던 어떤 것도 볼 수 없다. 사진 프레임 안에서 그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를 읽어내는 일은 그곳에 무엇이 찍혀있는가를 찾아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나무에 이은 두 번째 작업 공간은 사막이다. ‘바다’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는 갈색 모노톤의 사막은 아득한 지평선 끝에서 하늘과 맞닿아 있다. 이 일련의 작품들도 관객을 판단정지의 상태에 빠트린다. 태고의 어느 시점에서 푸른색을 띄고 있었을 이 메마른 갈색의 ‘바다’를 보기 위해서 관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시선이 아니라 모든 이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일 것이다.
이명호의 이단적인 태도는 전통과 매체의 순수성 같은 기존의 예술의 교리에 대한 거부나 비판으로 비쳐질지 모른다. 그러나 전통과 권위로부터의 그런 일탈은 오히려 그를 현대미술의 제도권 안으로 빠르게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성공은 처음부터 예측된 것이었다. 서울대를 중간에 그만두고 사진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와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몇 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기에 성취한 요시밀로갤러리에서의 전시나 게티미술관의 작품소장 같은 것이 그런 확신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인스톨레이션·행위예술·랜드 아트·미니멀리즘·컨셉추얼 아트·환경예술·옵 아트·일루저니즘 등의 방법과 이화(소격)·병치·차단·분리 같은 모더니즘의 전략들을 구사해서 다른 차원의 의미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은염 이미지로 정착시켜서 최종적인 프로세스를 완성시킨다. 사진과 함께 현장의 일부(천)를 같은 공간에 늘어놓아 전시장을 장소(Site)화 하는 것도 설치미술의 방법론의 하나다. 미술관 안으로 작품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사진의 효용성을 뛰어넘을 매체가 없다. 그를 굳이 사진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사물과 환경, 관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을 차단하거나 변형시키는 행위를 통해서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의 작업 무대는 대지다. 어느 면에서나 스케일이 클 수밖에 없다. 고비사막에서의 프로젝트에서는 1억 원이 넘는 제작비와 300명 가까운 작업 인원이 동원되었다. 러시아에서 펼쳐질 다음 프로젝트에는 5억 원이 든다고 한다. 조신한 말투나 행동과는 달리 그는 엄청난 폭발력을 갖고 있다. 지구를 상대로 그가 어디까지 갈지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이명호(1975-)
중앙대 사진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성곡미술관, 요시밀로갤러리(뉴욕) 등 다수 개인전. 게티미술관(LA), 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 단체전. 창동스튜디오 등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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