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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새로운 관심에 거는 기대

윤철규

ART ISSUE(3)

세월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조용히 봄 문턱을 넘어 다가오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 속에 따사로움이 담겨있고 그 따뜻한 위로 덕분인지 대지는 소생의 기운으로 날로 파릇파릇해진다. 이제는 가지 끝 꽃망울에서 더욱 화사한 꽃들이 필 시간이 아닌가. 그 많은 봄꽃들 가운데 금년의 벚꽃은 조금 유난할 듯하다. 천년만의 한번이라는 대지진. 그 지진이 휩쓸고 간 일본이지만 4월이 들면 벚꽃 바다가 장관인 하나미(花見) 시즌이 된다. 흩날리는 벚꽃잎은 예전 그대로겠지만 사람들은 아마도 함께 할 수 없는 이들을 새삼 기억하며 가슴 아파할 것이다.

일본과 벚꽃이 겹친 때문인지, 일본에서 한국미술을 알리는데 진력을 다한 한 분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병창 박사다. 이 박사는 2005년 4월 21일 늦둥이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몇몇 분만 지켜보는 가운데, 생전에 고인의 뜻대로 ‘밀장(密葬)’이 치러지고 한 가닥 연기로 이승과의 인연을 마치셨다.




미술은 실물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틀린 말이다. 미술이든 문화든 사람이 먼저이다. 다른 것은 그 다음이다. 일본에서 특히 한국의 도자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우수한가를 몸소 보여준 분이 바로 이병창 박사다. 그는 평생 수집한 도자기 351점을 1999년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했다.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잘 알다시피 한때 일본 유력재벌이었던 아타카(安宅) 그룹이 파산한 뒤, 남겨진 담보물로 지어진 미술관이다. 이른바 아타카 컬렉션은 중국도자기의 정수와 한국도자기의 정수만 모은 곳으로 유명하다. 비중은 개관 당시까지만 해도 반반 정도였다. 그러나 이병창 컬렉션이 기증되면서 한국 도자기쪽으로 크게 기울게 됐다. 이후 실제로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은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도자기를 소개하는 강력한 중심지가 됐다. 밖으로만 그런게 아니다.

오사카의 사연 많은 재일교포들 사이에 한국 문화에 대해 가슴을 펴고 뻐길만한 자랑거리가 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기증에 대해 주변 일본사람도 경탄한 바 있다. 한국도자기 위상이 높아지기 위해선 외국인 연구자의 존재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 이를 위해 그는 도쿄 고급주택지 아자부에 있던 10억 엔 넘는 땅과 건물을 연구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기증실 오픈 때에는 일본 천왕의 숙부인 미카사노 미야(三笠宮)가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기증 이전에도 박사는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는 작업을 조용하게 착실히 펼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이 한국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가운데 박사는 7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 유명 미술관과 개인 컬렉터를 찾아다니며 한국도자기에 관한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이 자료에 해설을 잘 붙여 1978년에 3권 1질의 『한국도자수선(韓國陶磁蒐選)』을 펴냈다. 한국도자기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책에도 온갖 정성을 다 쏟았는데 그는 인도까지 직접 날아가 1살짜리 어린 양가죽을 사와 표지로 사용할 정도였다.

이 책이 나오자 그는 전 세계 500大 대학 도서관에 이 책을 기증했다. 일본은 전문대학이상 290여 곳에 이를 보내 전 세계 학생들이 한국 문화의 정수를 살펴봐줄 것을 바랐다. 아울러 일본 내에서 자기 문화를 사랑하고 지키는 한국인의 이미지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일본 컬렉터에게서 좋은 작품을 양도받게 될 경우, 그는 택시를 3대 한꺼번에 대절해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는 그 중 한 대에 자신이 도자기 보따리를 끌어안고 타고 나머지 두 대는 간격을 맞춰 앞뒤로 호위하게 했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물건에 대한 예우이며 불의의 교통사고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본 일본인 컬렉터는 백이면 백 다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봄 시즌 미술시장에서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새로 일고 있는 듯하다. 한국미술이 점차 바깥으로 밀려나는 듯한 조바심 속에 듣는 기분 좋은 소식이다. 큰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크다. 하지만 새 봄이 희망이듯 세월은 또 새 인물을 세상에 보내줄 것이다. 새 관심 속에 우람하고 넉넉한 한국미술 애호의 거인(巨人) 출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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