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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다완과 석전제, 내셔널리즘

윤철규

ART ISSUE(9)


태어나기는 했으되 제대로 호적에 올리지 않아 그저 끝분이, 말녀 정도로 불리우던 아이가 있었다고 치자. 천덕꾸러기같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중 어느 날 낯선 사람 손에 이끌려 ‘남의집살이’를 떠나게 되었는데 위아래 형제 몇몇이 슬퍼하며 잠시 눈물방울을 보였지만 모두가 먹고 사는 일이 절박해 금시 그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서럽게 멀리 떠나갔던 그가 그 땅에서 여봐란 듯이 귀한 대접에, 더할 나위 없는 호강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 과연 그 느낌이 어떨 것인가. 사람과 물건의 차이일 뿐 기구하기로 치자면 이런 사정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도자기가 있다. 떠날 때는 언제 어디서 누구 손에 의해 바다를 건너갔는지 모르지만 신데렐라 이상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일본 속의 한국 도자기들이다. 그중에서도 고려다완이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다완이 그들이다.




이들 고려다완은 일본에서 보통 애지중지되는 것이 아니다. 이중, 삼중의 오동상자가 들어있는 것은 보통이고 상자 속에는 벨벳이라 부르는 우단(羽緞)에 겹겹이 감싸여 있다. 국내에는 그저 ‘이도’ 다완 정도로만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훨씬 다양하다. 외모 하나하나에, 풍기는 분위기 각각에 따라 이름이 제각기 달라 ‘이도’이외에 <교겐바카마(狂言袴)>, <미시마(三島)>, <하케메(刷毛目)>, <분인(粉引)>, <아마모리(雨漏)>, <가타데(堅手)>, <고모가이(熊川)>, <이라보(伊羅保)>, <도토야(斗斗屋)> 등등으로 불리운다. 또 이들에는 무슨 아호처럼 유래에 관련해 아취있는 이름인 명(銘)이 있어 격을 높이고 있다.

한 두 가지를 소개해보면, <아마모리>는 다기의 표면 군데군데에 마치 흙벽에 빗물이 샌 것처럼 얼룩이 진 모습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찻물이 스며들어 생긴 것인데 그만큼 오래 사용한 징표라고 해서 귀하게 여긴다. 또 <도토야>는 생김보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 魚屋(어옥)이라고 쓰기도 한다. 일본의 다성 센노리큐(千利休)가 자기 마을 사카이(堺)의 어느 생선 가게 앞을 지나다 발견해 다완으로 사용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회적 대접도 놀라울 정도이다. <기자에몬(喜左衛門)>이란 명이 붙어있는 이도 다완은 일본 국보로 지정돼있다. <에치고(越後)>와 <호소카와(細川)>라는 명이 있는 이도다완과 네즈미술관의 약간 푸른 기가 도는 <아오이도(靑井戶)>는 중요문화재다. 그리고 하다케야마기념관에 있는 고려다완과 후지타미술관의 것도 중요문화재이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고려다완 가운데 1점이 국보, 7점이 중요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이렇게 대접받고 있는 고려다완을 보면, ‘남의집살이’ 끝에 성공한 끝분이, 말녀들을 보는 것처럼 조금은 복잡한 심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착잡하다고 해서 출생만 강조할 수도 없는 일이다. 태생은 고려이고 조선이지만 엄연히 그 속에서 기품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윽한 분위기를 찾아내 가꾼 것은 일본 다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복잡한 심사에 대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볼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가깝게 매년 봄가을로 공자님의 탄신일과 기일에 맞추어 성균관에서 지내는 석전제(釋奠祭)가 있다. 이 제사의 기원은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다. 만일 중국에서 ‘쉐쉐, 그동안 고맙소이다. 하지만 우리도 나라 힘이 세지고 부강해졌으니 이제 제사를 가져가겠소’하고 나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문화에는 중심과 주변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곳에는 언제나 그곳의 환경이나 역사, 공동체의 취향 등에 맞춰 자기화, 토착화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세계 문화가 볼만하고 다양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겠는가. 요즘 문화재 환수를 계기로 여기저기서 ‘내셔널리즘’을 등에 업고 매스컴의 조명을 받는 인사들이 활약한단다. 하지만 ‘출생’처럼 문화의 어느 일면만 고집한다는 것은 고루한 시골 신사의 심사일 뿐 교양인의 처사는 아닐 것이다. 넓은 세상에 생각도 넓게 가져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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