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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성북동, 최북, 여배우

윤철규


윤철규 한국미술산책(16)

울렁거리는 그림이 있다면 곧이듣겠는가? ‘있다 없다’ 문제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설마하니 그림이 울렁거릴리가. 하지만 그 앞에 서서 눈을 살짝 돌려보면 영락없이 그림이 울렁울렁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연식으로 말하자면 족히 40년은 넘었을 진열장의 유리가 편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순례객들에게는 이것은 흠도 아니다. 비가 오거나 햇볕이 쨍쨍 내리쪼여도 차양 하나 없는 데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그 정도는 기다려야 소위 봄가을로 ‘간송 좀 한다’는 마니아 축에 낄 수 있다.

간송미술관이 있는 성북동 102번지 일대는 여느 때처럼 지난달에도 상당히 붐볐다. 항례의 봄 전시 때문인데 소문에는 아침 일찍부터 줄지어 선 순례객을 위해 10시 개관을 30분 앞당기는 친절도 베풀었다고 한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여타 미술관 관계자들이 보자면 그야말로 수연(垂涎)의 표적이 아닐 수 없다. 간송미술관은 정확히 봄에 2주간, 가을에 2주간만 개관하는, 말하자면 간헐개방(間歇開放) 미술관이다. 그런데 왜, 고행을 마다않고 성지(聖地)를 찾아가는 순례자들처럼 관람객이 몰리는가. 이유는 분명히 있다.
첫째는 물론 그곳이 한국미술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예를 들어 진경산수의 창안자인 겸재 정선,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 추사체의 주인 김정희 등 그들의 대표작은 이곳에 거지반 넘게 소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간송 열풍을 말해주는 열쇠의 전부가 아니다. 간송미술관 컬렉션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봄가을로 지금까지 무려 82번의 전시를 열었다. 한국 민족미술의 맥을 잡는다는 한결같은 명제 아래 다양한 각도로 테마 해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는 처량할 정도로 한산했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엄청난 끈기와 부동의 컨셉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이제 미술관은 성지가 되고 관람객은 순례자들처럼 경건하게 그 앞에 줄을 서고 있는 것이다.

‘텅텅’ 비어있는 최북 전시장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달 비슷한 시기에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 5.8-6.17) 전시를 열었다. 최북(1712-1786년 경)은 그가 남긴 일화를 보면 기이하고 호탕하기 그지없는 화가다. 그림을 재촉한다고 제 눈을 찌르고 또 천하 명산에서 죽겠다고 금강산 폭포에 뛰어드는 등. 그림도 그처럼 호방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18세기 미술사의 별 가운데 그의 이름이 꼭 들어간다. 그런데 그런 최북에 대해 이제까지 회고전 한 번 열린 적이 없었다. 이 전시는 세상의 최북이란 최북은 ‘몽땅 모아보자’는 기획 아래 열린 것이다. 세상에 100여 점 전한다는 작품을 무려 58점이나 모았다. 이 정도면 상반기 한국미술전시에서 단연 최대 화제가 되고 남을 전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시장은 ‘텅텅’ 비어 있다. 담당인 젊은 큐레이터가 ‘중요한 전시인데’라고 하는 혼잣말이 애처로울 정도다.

도쿄 우에노공원 안에는 오래된 미술관이 하나 있다. 도쿄도미술관인데 이곳이 곧 리뉴얼 오픈하면서 네덜란드 마우리츠하이스미술관의 컬렉션을 유치했다. 그곳 명품은 단연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다. 전시는 6월 30일부터인데 4월 중순부터 전시 마케팅이 시작됐다. 인기여배우 다케이 에미()를 그림속 소녀로 분장시켜 카메라 앞에 세우고 신문에 전면광고를 내는 등 법석이다.
전시가 쇼(Show)라면 여배우를 끌어들여서라도 쇼를 쇼답게 보일 때가 됐다. 입장료가 무료이든,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관람객 수이든, 관장 임기가 2-3년이든, 있어 본 적도 없다는 홍보 광고비든. 변명이 텅 빈 전시장을 대신하진 않는다. 이젠 ‘최북 좀 했다’는 마니아를 만들어내는 일도 전시기획의 몫인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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