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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비엔날레, 관객과 작가가 만나는 플랫폼

서성록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청정국가답게 거리에는 휴지조각 하나 떨어진 것없이 깨끗하고 사람들도 무척이나 상냥했다. 고풍스런 옛 건물과 신축중인 고층건물을 보면서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고, 한편으로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 유럽계 등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그네가 보기에)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전시장은 비엔날레를 위해 따로 세운 건물이 아니라 한결같이 재활용 건물이었다. 비엔날레는 모두 세 곳(구시청, 사우스비치, 마리나베이)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모두 기존 시설을 이용하였다.
1929년에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였던 구시청은 제1회 비엔날레부터 전시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아르데코 스타일로 지어진 남루한 사우스비치 역시 군부대 훈련캠프로 사용하다가 내부를 약간 개조했으며, 5각형으로 된 마리나 베이의 야외전시장은 시게루 반(Shigeru Ban)의 콘테이너 박스로 특설 전시장을 만든 경우였다.
싱가포르 비엔날레가 내건 주제는‘경이(Wonder)’이다. 총감독을 맡은 모리미술관장 후미오 난조(Fumio Nanjo)에 따르면‘, 경이’란 아름다운 것과 예기치 못했던 것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놀람과 감탄의 감정을 일컫는다. 상하이 비엔날레의‘지역 너머로 추동(Traslocalmotion)’이나 부산 비엔날레의‘낭비’, 그리고 이스탄불 비엔날레의‘국제사회의 옵티미즘’과 같은 쉽게 동의하기 곤란한 테마에 비해 싱가포르는 작지만 결코 가볍게 취급할 수 없는 테마를 설정했다.
사실 비엔날레의 성패는 테마가 관건이 된다. 말하자면 탁월한 주제를 잡으면 행사의 반쯤은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다. 허황된 개념을 남발하며 혼란과 파괴를 부추기는 기획으로는 전시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이런 경우 비엔날레는‘예술을 그르치는 주범’이란 딱지를 떼어내기 어렵다.





예술이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게 초점을 맞춘 비엔날레
이런 상황을 의식한 탓일까. 싱가포르 비엔날레의 테마인‘경이’는 작가로 하여금 미적인 것을 선체험하도록 요구한다. 그런 후에 자신의 내용을 관람객에게 전달하도록 한다. 싱가포르 국가예술이사회에서 만난 로케홍(Low Kee Hong) 사무국장은“이번 행사는 예술이 관객에게 다가설수 있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미술에 쉽게 다가서게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는 그의 말이 호소력있게 와 닿았다.
세 군데의 전시장을 이틀간 돌아보면서 비엔날레의 주제가 출품작을 관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싱가포르의 E.첸(E.Chen)은 털실로 열대의 수림을 연출했고, 독일의 C.니젠손(C.Nijensohn)은 볼리비아 사막에 비춘 하늘의 장관을, 아일랜드의 C.랭건(C.Langan)은 흰 바다와 설경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야경을, 미국의 S.주데이캇(S.Zureikat)은 희망과 경이를 상징하는 지평선을 사진작업으로 옮겼고, 베트남의 팜녹동(Pham Ngoc Duong)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구데기조차 귀엽게 형용했으 며, 태국의 핌칸찬나퐁(Pimkanchanapong)은 구글지도에 관객이 포스트잇을 붙이게 하여 관객참여를 유도했다. 이기봉은 가라앉거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으면서 천천히 움직이는 어항속의 책을 통해‘꿈꾸는 것같은’장면을, 이용덕은 일상풍경의 일루전과 운동감을 강조한 부조작품을 출품했다.



몇 작품은 매우 흥미로웠다. 벨기에의 한스 벡(Hans op de Beeck)은 이글루를 연상시키는 설치작품을 선보였다.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홀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설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알다시피 싱가포르는 열대지방이어서 연중 단 한차례도 눈을 볼 수가 없다. 작가는 감상자를 하얀 눈발로 덮인 북극권으로 안내한다. 이스라엘의 자독 벤 데이빗(Zadok Ben-David)은 바닥에 철로 만든 나무와 잎사귀를 무수히 늘어놓았다. 멀리서 보면 마치 종이위에 핀을 꼽아 놓은 것처럼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각각의 형체는 잎이 무성하게 달려있다. 하나하나의 모양과 색깔도 다르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깔을 뽐내는 나무를 통해 생태의 귀중함을 보여준다.
필리핀의 알프렛 후안 아킬이젠(Alfred Juan Aquilizen)과 그의 부인은 2000개의 대나무로 숲을 만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대나무 위에는 샌들이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해변가에서 주어모은 샌들을 가지고 풍경을 만든 그의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그의 작품 사이를 지나면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와 있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러시아의 레온이드 티치코프(Leonid Tishkov)는 별과 달을 끌어안고 사는 자전적인 사진작품이다. 달과 함께 걷고, 잠자며, 이야기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담았다. 지상에 내려온 달, 어쩌면 우리의 잃어버린 꿈을 말하는 시각적인 시(visual poem)를 연상시킨다. ‘규모를 자랑하기보다는 내용이 오달진’전시회를 본 만족감에 여행 기간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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