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프랑스의 농부 컬렉터

하계훈

문화에세이(1)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은 프랑스의 시골, 그것도 정말 깊숙한 시골에서 며칠을 보낼 기회를 가질 수있었다. 농가의 사방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집 이외에는 밀밭과 소떼들밖에 보이지 않으며 저녁이면 조명 불빛이 거의 없어서 하늘의 별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그런곳이었다. 이번 여행은 작년에 한국과 프랑스의 학생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프랑스 학생이 우리집에 머문 것이 인연이 되어 우리 가족이 그 학생 집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300킬로 정도 떨어진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농가에 사는 그 학생의 가족은 부부와 삼남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독립하여 생활하는 경향에 따라 지금은 막내 아들만 데리고 농부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리를 방문했던 막내 아들도 곧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학교로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노르망디는 15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벌였던 백년전쟁의 주무대였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상륙작전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지역에 있는 르아브르나 루앙 등과 같은 도시는 미술사에서 이름이 알려진 부댕이나 낭만주의 화가 제리코, 그리고 청년시절의 모네와 관련이 있는 도시들이다. 이뿐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거점도시로서 리지유(Lisieux)와 같은 도시는 가톨릭 신자들의 중요 순례지가 되고 있으며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몽셍미셀 성, 그리고 1066년 노르망디공 Guillaume(윌리엄)의 영국 정복 이야기를 담은 길이 70미터의 타피스트리를 보관하였던 성당이 있는 바이유(Bayeux) 등의 도시들이 이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가족은 프랑스의 농가를 방문하면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은근히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실제로 그 집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로 우리를 맞아준 것은 낯선 소똥 냄새와 개들의 짖는 소리, 거위들의경계심에 찬 꽥꽥거림 등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의 농업도 19세기 초 밀레 가바르비종에서 추수하는 농민을 그리던 시절부터 점점 하향길로 접어들어 왔다. 프랑스가 유럽의 중요한 농업국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농민들의 사정이 극도로 나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의 첨단산업이나 서비스 산업 종사자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방문한 농부 피에르 플리에제(Pierre Pflieger)씨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는 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 1200년 전에 지은 농가에서 살고 있는 50대 초반의 피에르는 16살 때 작은 아버지의 치과병원 리노베이션 때 얻은 무명화가의 풍경화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마을의 교회와 시장풍경들을 그린 그림과 정물화, 판화 등을 꾸준히 모아서 자기 집거실과 방들을 장식해 오고있다. 대강 눈짐작으로 보아도 3, 40점은 넘을 것같은 작품들은 크게 값나가는 것은 별로 없지만 피에르의 생활 반경 속에서 의미 있는 풍경과 주제를 담은 작품들이었다.

필자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피에르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가운데 피에르처럼 생활 속에서 미술품을 가깝게 대하면서 지내온 사람은 드물었다. 고급승용차와 골프채로 자신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집에 가보면 변변한 그림이나 조각작품 하나 없었다. 있다하더라도 고작해야 싸구려 산수화나 달마도등의 작품들이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궁금해서 피에르에게 작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피에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을 때는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그의집에 머무는 동안 피에르의 가족들은 우리를 데리고 몽생미셀, 바이유, 리지유 등의 성당과 문화시설들을 보여주며 우리 가족과 해박한 문화적 대화를 나누기도하였다. 필자는 피에르같은 농부 컬렉터를 친구로 둘수 있어서 행복했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