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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깊은 전시, 교토의 POINT展

성혜영

-화음프로젝트 op.89 in Koyto

“교토, 일본에 네가 있어서 참 좋구나!”

교토의 지하철에 붙은 관광포스터의 문구다. 여차여차해서 교토에 정착한 지 5개월여가 되었지만 그 문구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내가 아는 한, 교토는 한 도시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문화가 가장 잘 간직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통 문화가 과거의 깃발을 휘두르며 현재를 압도하는 유령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손닿는 곳에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필요할 때마다 그늘이 되어 주고 지혜를 빌려 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시간의 결정체다.

과 화음프로젝트의 콘서트가 열리기로 되어 있는 곳이 교토예술센터(Kyoto Art Center)라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섰던 것은 그래서였다. 교토 시내에서도, 한 때 염색과 직조로 영화를 누렸던 무로마치 거리, 그 직물공예의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는 그 곳의 옛 초등학교를 개축해 둥지를 튼 곳이 교토예술센터다. 사실 은 2008년, 서울의 ‘대안공간 루프’에서 먼저 소개된 바 있지만, 교토 전시의 첫인상은 사뭇 다르다. 출품작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아마도 이 오랜 도시처럼, 교토예술센터가 품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고도(古都) 교토라는 시간과 공간을 만났을 때, 포인트 프로젝트가 기치로 내건 ‘통섭’(通涉)의 의미도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제목이 시사하듯 : 한일 젊은 작가 비평가 교류 전시회는 그 통섭의 ‘접점’이고 ‘만남’이다. 왜, 무엇이,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창작에서의 장르간의 해체와 융합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향하는 소통의 방법에 이르기까지, 기능과 지역과 담론의 경계를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채로운 발언들이 만나고 어긋나고 또 어우러지는 현장이다. 발언과 표현이 다양한 만큼 전시장은 어지럽고 부산하지만 그만큼 역동적이다.

평면의 캔버스를 벗어나 회화의 본질에 보다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하는가 하면(안두진), 현실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비시키기도 했다(안강현).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필 묘사한 문성식의 드로잉은 탈장르적인 기법이 대부분인 작품들 속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접근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공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다룬 후지이 히카루(藤井 光)의 일종의 사회고발성 작품이나, 마츠바라 메구미(松原 慈)가 소개한 다른 듯 같은 세계의 도시 이야기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했다. ‘돌던지기’와 ‘비닐봉지 쓰기’ 등으로 관람객의 능동적인 개입을 유도한 하시모토 사토시(橋本 聰)의 작품은 특히 수동적인 관람문화에 익숙한 관람객들에게 참여를 통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해 주는 듯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대체로 개인의 기억과 내면의 풍경을 주제로 삼았다면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사회적 발언이나 관계에 집중하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사회의 숨은 논리를 파헤치고 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이고 사소한 일상적 풍경이 지니는 표현력의 가능성, 나아가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되는 문성식의 작품이 특히 주목되었다. 사실적이고도 절제된 세필화 속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비논리적 표현은 보는 이를 동요하게 하고 불편하게 한다. 그 동요를 위한 의도적인 장치, 그것이 예술의 또 다른 힘이 아닐까. 기억과 시간과 세월의 고요한 수면을 툭툭 건드려 줄 작은 돌팔매질. 아마도 우리는 그것이 만들어 줄 물결무늬를 희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토 전시를 위해 작품을 선정할 때 그런 것까지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은 깊은 우물 같은 교토의 정서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 올리면 올릴수록 새록새록 솟아나올 것 같은 차갑고 시원한 물.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누구나의 기억의 깊은 샘 속 맑은 물 한 잔을 길어 올리기 위한 두레박도 필요하다.

그 두레박을 내려 주기 위해 미술과 음악이 만났다. 일찍부터 음악과 미술의 통섭을 추구해왔던 ‘화음프로젝트’ Op. 89, 임지선의 Memory for Solo Bass는 문성식의 작품에서 출발한다. <창문이 있는 집>을 통해 오랫동안 닫혀있던 기억의 문을 두드린다. 마침내 둔중한 철문이 열리자 그 속에는 유년의 ‘평화’(Peace)가 반짝반짝 빛난다. 베이스의 음폭이 참으로 넓다는 것, 이토록 높고 고운 소리가 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별과 올빼미와 할머니>... 기억의 편린들 속에 밤인 듯 낮인 듯 ‘즐거운 나날’(Fun)이 흘러간다. 그러나 잔치는 영원하지 않고,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비오는 날> 우산을 받쳐야 한다는 뜻이라던가.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은 법,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삶은 계속된다. 껴안아야 할 삶과 맞서 싸워야 할 적 사이의 불꽃 튀는 시간 Distortion을 분야 미치노리는 열정적으로 연주한다.

김상진의 비올라와 분야 미치노리의 베이스, 믿음직한 두 남자의 연주 속에 청명한 교토의 겨울은 깊어갔다. 그것은 작지만 즐거운 잔치였다. 모두가 예술과 문화를 구호처럼 외치지만 개개인의 감동보다는 보여지는 화려한 스펙타클이 문화로 오인되는 시대가 아닌가. 통섭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르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사람과 사람이, 꿈과 일상이 만나는 접점에서 삶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흔히 부르짓듯이 ‘예술 같은 삶’이란 어쩌면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 같은 예술’. 그것이 진짜가 아닐까. 마당 깊은 도시의 교토아트센터, 과 화음프로젝트의 작은 만남이 예술의 정체에 대해 다시 일깨워주었다.






Ⅱ 참여 크리틱
한국 작가 크리틱 Critic for Korean Artists
▶ 하라 히사코 HARA Hisako
▶ 스미토모 후미히코 SUMITOMO Fumihiko
▶ 하타나카 미노루 HATANAKA Minoru


일본 작가 크리틱 Critic for Japan Artists
▶ 김미진 KIM Mijin
▶ 이선영 LEE Sunyoung
▶ 유진상 YOO Jinsang

포인트 프로젝트

포인트 프로젝트는 창작에서 장르 간에 해체와 융합 현상과 함께 생산 유통 소비가 압축되고 있는 21세기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전시이다. 특히 비평을 통한 담론 생산에 있어서도 한 지역적 문화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 문화 적 배경의 한계에서 벗어나 비평가들의 교차 비평을 통한 미적 관점의 융합을 시도함으로서 새로운 비평 교류의 장을 시도한다.기능의 통섭 - 이번 포인트 프로젝트는 현대 예술에 있어서 창작과 매개, 향유의 기능을 하 는 기관들과 단체의 교섭과 확장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이다. 창동 창작 스튜디오, 매개의 공간인 대안 공간 루프, 전시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 복합적인 기능과 함께 예술의 담론형성에 지속적인 역할들을 해왔던 AIT그룹(일본)과 교토아트센터는 공동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이러한 대안적 시도를 할 것이다.지역의 통섭 - 이번 포인트 프로젝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순회전 형식으로 이루지며 한 국과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이방인과 원주민의 다문화적 전시는 다지역의 통섭, 다민족, 다 장르의 통섭이 동시에 이루어지며 새로운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할 것이다. 담론의 통섭 - 이번 포인트 프로젝트는 참여 작가 선별과정에서부터 다양한 시각을 가진 평 론가들이 참여하는 민주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시도한다. 또한 한국의 평론가들은 일본작가들을 일본의 평론가들은 한국작가들과 일대일 방식의 워크 숍을 통해 서로 간 교차 비평을 시도 한다. 이러한 교차 비평은 보다 확장되고 다양한 담론들을 만들어내며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글로 벌 화된 새로운 비평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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