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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와 이탈리아, 스위스 기행 (2)

김환수

베니스 그리고 비엔날레

베니스는 처음이다. 우리 호털이 메스트레 (Mestre) 라는 곳에 있어서 전시장까지는 약 20분쯤 배를 타고 가야했다. 영화나 사진, 그림들로 보았던 풍경들이 낮 설지 않다. 배에서 내려 약 20분 쯤 대운하를 따라 걸었다. 바다위에 뜬 이번 비엔날레 특별 프로젝트인 “마레 버티칼레”(Mare Verticale)가 제 51회 베니스 비엔날레 이탈리아관과 국가관이 열리는 잘디니에 당도했음을 알린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가겠다는 아내를 따라나선 터라 별로 준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것이 잘못이다. 광주 비엔날레 쯤 이면 그러려니 할 테지만 이 멀리 까지 오면서 좀 공부라도 하고 올 것을 하고 후회해 보지만 벌써 늦은 것을 어찌하랴?  국내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행사에 동원되어온 시골 아주머니 같은 관객이 된 기분으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돌아본다.

전시장 배치도를 들고 이곳저곳 흩어진 전시장들을 찾아다니는데 제한된 시간에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데 몇 개의 국가관을 지나 이탈리안 파빌리온의 어느 방에선가 레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의 커다란 흰 계단 앞에 섰다. 방향이 다른 두 계단의 묘한 결합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며 만들었을 가 생각해 본다. 독일 작가 토마스 쉬테(Thomas Schutte)의 뉘여진 누드 앞에서는 저 딱딱한 소재를 가지고 작가가 일궈낸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과 볼륨에 매혹되면서 미술작품은 저래야 하는게 아닐가 생각하며 발을 옮긴다. 버나드 프라이즈 (Bernard Frize) 그림의 따뜻하고 화려한 색깔들도 호감이 갔다. 그밖에도 이 탈리아관에는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필립 가스턴 (Philip Guston), 안토니 타피에스 (Antoni Tapies) 등 거장들의 작품들이 이름에 버금가는 무게를 과시 하고 있었다. 주제가 예술의 경험 (The Experience of Art)인 이 전시는 스페인 출신의 마리아 드 코랄 (Maria de Corral)이 기획 했다고 한다. 주제의 의미가 모호기도 하고 광범위 해서 어떻게든 설명은 가능 하겠지만 꼭 비빔밥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다. 맛은 없지 않은데 딱히 집어서 무슨 맛이었는지 생각하게 하는 그런 느낌이다.

국가관에서 인상이 남는 곳은 일본관이었다. 사진작가 이시우찌 미야고 (Ishiuchi Miyako)의 어머니의 2000-2005 - 미래의 흔적 (Mothers 2000-2005 - Traces of the Future) 이였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일상 신변에서 쓰던 잡다한 유품들 - 슈미즈, 거들, 쓰다 남은 루쥬, 빗, 신발 등과 죽기 전에 찢은 쭉으러져 주름진 유방이 늘어져 노출된 반라의 사진등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어머니의 죽엄에 대한 슬픔과 구 여성을 대표하는 듯한 여인의 영욕이 얼룩진 삶이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고 작품의 제목을 통해 구여성과 오늘의 일본여성상과의 비교도 암시하는 듯하였다. 특히 검은 슈미즈사진들의 실루엣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쟐디니의 구석진 곳에 있는 한국관을 마지막으로 찾았다. 문 뒤의 비경 (Secret Beyond the Door)이라는 제목의 열다섯 작가의 작업이었는데 비교적 젊은 작가들인지 생소한 이름이 여럿이었다. 그 중에서 최정화의 프라스틱 상자 설치는 후미진 곳에 위치한 한국관을 돗보이게 하였고 하얀 연꽃도 주목을 끌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15명 출품작가의 이름이 한테 적혀 있을 뿐 어느 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가늠하기 힘들었는데 큐레이터의 의도는 부분적인 작품이 누구의 것인가 보다는 15작가의 공동 작업으로 문 뒤의 비경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하여튼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전해지는 멧세지도 분명치 않았고 누구의 작품인지 방 한가운데 놓인 모니터에서 광주사건의 한 장면이 흐르고 있었는데 아무 배경도 모르는 이곳 관객들이 어떤 감흥을 느낄는지 의문이 일기도 했다.  하여튼 보고 남는 특별한 인상도 없어 유감 이었다.

주제관인 이탈리안 파빌리온과 국가관들이 있는 잘디니의 전시를 보고 알세날레 (Arsenale)에서 열리는 같은 스페인 여성인 로자 마르티네즈 (Rosa Martinez)가 기획한 언제나 조금 더 멀리 (Always A Little Further) 라는 주제의 전시를 보러갔다. 이번 비엔날레는 페미니즘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평에 걸맞게 전시장 초입부터 긴장감을 준다. 들어가자마자 뉴욕 게릴라 걸즈의 페미니즘 구호가 도발적인 대형 사진들이 좌우에서 압도 하는가하면 요아나 바스콘세로스 (Joana Vasconcelos)의 대형 샹들리에가 눈을 끄는데 알고 보니 탐폰 1,4000개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일반적으로 비디오 아트에 별로 흥미를 못 느끼는데 비디오 계열의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작품들을 지나면서 우리나라 작가 김수자의 바느질하는 여인이라는 작품이 있어 반가웠다. 문예진흥원 후원으로 네팔, 큐바, 브라질, 챠드, 예멘 과 이스라엘등 6개국에서 만들고 영상화된 여섯채널 비디오 설치작업인데 세계 여러 도시의 복잡한 거리 혼잡스러운 인파속에서 전에 선 보였던 다른 작품들처럼 긴 머리의 작가가 긴 머리와 등을 보이며 사람들의 움직임을 응시 하는 그런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주제 전에 초청 되었다고 한다. 쿠바의 디아고 에르난데스 (Diago Hernandez)의 소리, 전주와 전선등으로 된 작품은 복잡하게 얼켜 있는 쿠바와 미국관계를 비유하는 설치 작업으로 재미있는 것은 영상으로 쿠바, 동구를 위시한 사회주의 제국의 국가 수반들과 기타 권력핵심부의 명단이 그 재임년도와 함계 영화의 자막처럼 반복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김두건, 최용겅, 김일성 등 역대 주석과 총리 등의 귀에 익은 이름이 그 재임기관과 함게 나와 있어 북한도 이렇게나마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실소를 하기도 한다. 두어 방 지나서 거대한 초현대적인 우주선 같기도 하고 고래 같기도 한 조각앞에 당도 했다. 일본작가 모리 마리코 (Mori Mariko)의 뇌파 UFO (Wave UFO)다. 이 조각은 작가의 예술과 첨단 과학기술의 접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조각내부에 설치된 뇌파 조절장치로 인간의 뇌의 네가지 중요한 뇌파를 조절하여 최적의 의식과 심리상태를 이룸으로서 다만 수초만이라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상호 이해를 증진 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염원을 실은 기발한 발상의 작품이다. 호기심이 나서 약 30분이나 기다려서 10분간 조각 속 구조물에 타고 누어 이마에 우주인이나 된 것처럼 주렁주렁 센서를 달고 전원에 연결 하고 비행하듯 돌아보았지만 둔한 탓인지 특별히 의식이나 심리적인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어쨋던 한참 잘나가고 또 집안이 부유한 작가니까 할수 있는 작업 같았다. 이곳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해서 나머지는 대충 보고 나오다가 알세날레 밖 마당에 있는 작은 초소 같은 공간에 설치된 전시가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어두컴컴한 작은 공간에는 시각적인 아무 장치나 전시도 없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찰랑이는 물결소리만 들릴 뿐이다. 색다르다 생각 되어 나와서 표제를 보니 루이스 부르조아 (Louise Bourgois)의 찰랑이는 물의 속삭임 (Whisper of Whistling Water) 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의 두개의 힘찬 소용돌이 같은 금속 조각은 아르세날레 안에서도 보았었다.





반나절씩 이틀 동안 콩 볶듯이 돌아본 베니스 비엔날레는 비디오 아트와 영상물, 개념미술, 장소특정적인 설치미술 작품들이 주종을 이루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페미니즘적인 영향이 강한 것 같았다. 관객들을 위해 작품의 제목이나 작가명 들이 좀 더 분명하고 보기쉽게 되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비엔날레를 보고난 감상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오늘의 미술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이었다. 미술 작품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시대는 가고 이제 머리로 보고 철학을 해야 이해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가보다. 전시 기획자나 평론가들을 너무 많이 양산해서 그런 것일가?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오면서 사회가 고도로 분화되고 전문화되기는 했지만 그림마저도 전문가들 끼리 자기네 언어로 소통하고 평론가나 전문가의 해석을 들어야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은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삭막한 일이 아닐 가 생각해 본다. 하기야 지금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감상하는 미술이나 음악, 기타 예술작품들도 그 시대 일반대중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베니스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일정으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Peggy Gugenheim Collection)에 들렀다. 대운하에 면한 단아한 단층짜리 집이다. 좁은 골목 안으로 나있는 문으로 들어가면 쟈코메티, 헨리 무어 등의 조각들이 있는 그리 넓지 않은 그러나 아주 아늑한 작은 정원 (The Nasher Sculptural Garden)으로 나온다 그 안쪽 담믿 한구석에 작고 조촐한 검은 돌 (대리석?) 무덤이 타일 처럼 잔디위에 덮혀 있고 담 벽면에 “여기 페기 구겐하임이 잠들다” (Here rests Peggy Guggenheim) 라고 쓰여 있다. 그 비석 바로 옆 벽면에는 “여기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잠들다” (Here lies my beloved babies) 라는 비문이 적혀 있다. Peacock, Sir Herbert, Gypsy, Hong Kong등 20여개의 이름들이 연대와 함께 적혀 있다. 그가 생전에 사랑하며 키웠던 개들의 무덤이라는데 바로 그 옆에 묻히기를 원했던 모양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그의 비싼 취미를 실현할 재력과 탁월한 안목을 겸비한 미술애호가요 후원자로 20세기미술사를 온몸으로 살고 쓴 사람이다. 그의 콜렉숀은 입체파, 추상주의, 그리고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20세기 초에서 중반의 구라파와 미국의 중요한 작가들의 주요작품들을 망라한 주옥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은 독일태생의 프랑스 작가인 막스 언스트 (Marx Earnst)와의 짧은 뉴욕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1947년에 이곳으로 와서 타계할 때 까지 30여년을 살았던 그의 집이다. 마침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또 그가 열성적으로 후원했던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과 유사성 (Affinities) 이라는 제목의 초현실주의 회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몇 개의 폴록 초기 작품들을 대할 수 있어서 기뻤다. 이 매력적인 미술관을 나오면서 작품들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결코 소홀이 할 수 없는 20세기 미술에 대한 그의 공헌을 돋보이게 하는 소박한 그의 무덤이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으로 남았다.

비엔날레의 틈틈이 본 베니스의 인상은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였다. 점심을 먹기 위해 산 마르코광장 뒤 식당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침 만조 때인 듯 산 마르코 광장은 온통 물바다다. 광장 한 가운데는 무릅에 찰 정도고 갓 쪽으로 돌아서 가는데도 군데군데 발목까지 차는 물을 건너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신발을 벗고 건넜다. 평소에는 광장 가에 즐비하게 놓여있는 카페들의 흰 간이의자들도 많이 치워지고 물속에서도 먹이를 찾기에 바쁜 비둘기들을 관광객들이 신기한 듯 처다 보고 있었다. 베니스가 서서히 갈아 안고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런 정도인지는 몰랐다. 보통 겨울에 이런 일이 많다고 들었는데 공교로웠다. 점심을 마치고 나오니 물은 거의 빠져 있었다. 120여개 섬으로 되어 있는 베니스는 유리공예로 유명한데 그중에서 무라노 (Murano) 섬이 유리공예의 중심지다. 무라노 유리공예품 대리점에 둘러서 시범제작도 보고 진열된 다양한 제품들도 보고는 산 마르코 관장 주변의 거미줄처럼 나있는 좁은 골목들과 운하들을 발이 닳도록 누비며 재미있는 기념품 가게들을 돌아보면서 베니스를 익혔다.

2박 3일의 짧은 베니스 여행을 마치고 내일은 밀라노로 떠난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단체여행이라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과 호텔이 섬 밖에 있어서 시간 나는 대로 자유로이 다니며 마음대로 구경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명이 된 마레 버티칼레, 그리고 베니스의 밤거리, 아기자기한 골목과 운하들을 마음대로 쏴 다니며 곤돌라도 타고 캰티 잔을 기우리며 감미로운 칸초네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실망감을 가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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