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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다시 생각한다

안휘준

최근에 이르러 미술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는 듯하여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옥션의 낙찰율이 70~80%에 이르고 있고 저가품들은 매진되는 사례까지 있음이 그 한가지 징후이다. 대체로 우리 국민은 고대로부터 가무를 즐겨온 관계로 조형예술인 미술보다는 공연예술에 훨씬 관심이 쏠려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제 혹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낙관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미술과 연관된 기본적인 사항들을 되새겨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미술은 조형예술로서 문자의 예술인 문학, 소리의 예술인 음악, 행위의 예술인 무용 등 다른 예술들에 비하여 가장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 복합적인 성격을 몇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예술로서의 미술이다. 미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회화, 서예, 조각, 도자공예ㆍ금속공예ㆍ목칠공예 등의 각종 공예, 건축과 조원(造園)등은 한결같이 조형성과 창의성 등 예술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각종 미술은 감상(鑑賞), 감정(鑑定), 감식(鑑識)의 대상이 된다. 아름다움의 표현체이므로 문학, 음악, 무용, 연극, 영화처럼 감상의 대상이 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진행되거나 지나가는 형식의 각종 공연예술이나 문자를 읽으면서 감상하는 문학과 달리 미술은 대개의 경우 완성된 작품을 눈앞에 고정시켜 놓고 뜯어보며 감상하는 점이 차이이다. 그러므로 훨씬 차분한 상태에서 한 눈에 요리조리 분석하며 다각도로 즐길 수가 있는 것이다.

제작된 지 오래된 작품들은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 이외에도 감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진작인지 안작(贋作)인지, 어느나라 어느시대의 것인지, 값은 얼마나 나가는지 등등을 가늠하는 것이 바로 이 감정의 범주에 든다고 하겠다. 이러한 감정의 단계를 벗어나 어떤 역사적 의의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지 까지 짚어내는 것이 감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사가들이 미술사를 기술하기 위하여 필요한 작품을 점검하고 선정하는 행위는 감식과 직접 연관이 된다고 하겠다.

둘째는 미의식, 기호(嗜好), 지혜의 구현체로서의 미술이다, 훌륭한 미술작품은 그것을 낳은 작가와 민족과 국가의 미의식과 기호, 그리고 지혜를 반영한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전통미술에는 이러한 것들이 잘 투영되어 있다. 한국성(韓國性)이라고 일컬을 수도 있는 이러한 특성은 시대를 달리하여 나타나기도 한다.

셋째는 사상과 철학의 구현체로서의 미술이다. 미술을 포함한 모든 빼어난 예술은 그것을 창출한 작가나 민족의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다. 작가가 좋은 작품을 낳기 위해서는 다독다사(多讀多思) 해야 하는,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하는 소이도 거기에 있다. 옛 선현들이 작가들은 만권서를 읽고 만리 길을 여행할(讀萬卷書, 行萬里路) 필요가 있음을 얘기한 것은 두고두고 되새길 필요가 있다.

넷째는 사료(史料)로서의 미술이다. 미술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문화적 복합체인 동시에 역사적 사료이기도 하다. 미술은 다소(多少)와 경중(輕重)을 막론하고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옛미술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문헌사료가 문자로 쓰여진 데 반하여 미술사료는 조형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이 조형언어를 읽어낼 수 있는 전문가는 고미술에서 여러가지 역사적 사실과 시대적 현상을 파악할 수가 있다. 잘 훈련된 유능한 미술사가들의 작업은 그러한 일면을 잘 보여 준다. 미술사가들은, 문헌사가들이 기록과 문헌을 검토하고 필요한 사료를 선정하듯이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창의성, 한국성, 대표성, 시대성 등을 잣대로 하여 미술사에 편입시킬 작품사료를 엄선한다.

미술의 사료성은 문헌사가들에게도 중요하다. 일례로 무덤의 주인공과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있는 4세기 고구려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安岳三號墳)의 경우에도 미술의 사료성을 인정한다면 주인공이 쓰고 있는 왕관으로서의 백라관(白羅冠), 왕을 상징하는 정절(旌節), 행열도(行列圖)에 보이는 ‘성상번(聖上幡)’ 이라 쓰여져 있는 깃발 등에 의거하여 이 고분의 주인공을 중국인 동수(冬壽)가 아닌 고구려의 왕으로 인정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이 한가지 예만 보아도, 미술이 지닌 중요한 사료성을 엿볼 수 있다.

다섯째는 과학문화재로서의 미술이다. 미술이 과학문화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과학사학자들 조차도 과학기기 이외에는 미술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대에도 복원이 어려운 청동기시대의 정교한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질펀한 습기에도 탈색이나 변색이 되지 않고 아름다운 색채를 선명하게 유지하고 있는 고구려 후기의 고분 벽화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크고 소리가 신비롭고 제조기술이 뛰어난 8세기 통일신라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천하제일’의 비색(秘色)을 지닌 고려시대의 청자 등만 보아도 미술이 과학문화재이기도 함을 쉽게 알 수 있다. 재인식이 특히 요구된다.




이 밖에도 미술은 인간 심리(心理)의 반영체이자, 금전적 가치의 보유물이기도 하다. 또한 미술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남기고 있어서 시대적 특징과 변화양상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분야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술은 다각적인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너무도 큼을 알 수 있다. 정당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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