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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시대 소통에 대한 단상-왕두

이영철


- 중국 작가 왕두의 서울 방문을 계기로

이 글은 왕두 작업에 대한 비평이 아니다. 프랑스에 사는 한 아시아 작가의 서울 체류, 그와 관련된 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끼게된 것, 빈번한 국제 미술 교류와 며칠전 북경의 한 미술 대학을 참관하여 깨달은 몇가지 사실에 대한 다소 일관성 없는 인상기이다. 현재 우리 미술이 가장 진통을 겪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소통의 확장과 그것을 가로막는 관심의 부재에 대한 것이다. 천안문 사건에 연루되었다 프랑스로 건너간 중국 작가 왕두가 프랑스 문화원 초청으로 10일간 서울에 머물렀고 계원예술 대학 <특별 과정> 학생들과 5차례의 워크숍과 이화여대, 토탈미술관, 가나 미술아카데미에서 강연, 토론회 등이 있었다.

현대 미술을 이해하는 유능한 통역사를 구하기 어려움, 토론 문화 자체의 성숙하지 못함으로 인해 한국에서 패널 토론은 종종 발표자와 청중 사이에 유리벽이 있는 것 처럼 딱딱하고 단조롭고 소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왕두의 경우에는 다소 흥미로운 점들이 있었지만 통역의 어려움이 컸고, 부족한 질문 보다는 오히려 우리 안에 고착된 문제의식이 하나의 현실로 드러났다고 보인다. 미술 창작자가 되고자하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소극적 태도와 비판의식의 나약함, 그리고 한국 미술 안에서 국제라는 단어가 붙으면 그에 대응하여 반드시 따라붙는 우리 안의 고착된 일반적인 물음들, 따라서 왕두라는 한 작가의 특이성을 드러내기 보다는 작가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닫혀진 논의 구조 안에 우리 자신이 갇혀버리고 마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뜻하지 않은 헛발이 아니라 우리의 대학 미술 교육에 내재한 문제들 그리고 한국 미술계에서의 패널 토론 자체가 안고 있는 일반적 한계의 단면이라 여겨진다.

2001년 왕두가 한국의 로댕 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했을 당시, 그가 서울에 있으면서 육성으로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이태리에서 9월에 있던 심포지엄에서 그의 발표는 외국 여러나라에서 온 청중을 감동시켰다) 이번 방문을 통해 아시아의 작가로서 한국미술계의 학생, 작가, 청중들과 에너지를 교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보다는 좀더 나은 일이고,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건 유사한 행사들이 자주 일어날 필요가 있음을 확인시키는 하나의 모멘트이길 기대했다.

흔히 외국인과의 만남에서 어려운 것은 첫째가 언어 소통의 한계다. 동시대의 미술에서 중심과 변방, 오리지널과 카피의 위계 구조가 깨지고 국내(로컬) 미술과 국제(글로벌) 미술의 경계가 모호해져가는 국면에서 언어 소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두가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아직도 국제심포지엄에서 외국의 미술전문가들과 국제공용어로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전문가가 국내에 단 한명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일상 회화나 자신의 관심사 정도를 영어로 말하는 사람은 더러 있지만 현재 세계 미술의 흐름과 새로이 대두하는 토픽들에 대해 영어로 토론하며 자신의 시각이나 입장을 뚜렷이 전달할 수 있는 미술인이 한국에 없다. 본인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는 우리 자신이 순수 미술 분야에서 국제비엔날레를 세개나 벌여 놓았지만 정작 국제전이 어떤 과정을 통해 기획되고 홍보되고 토픽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외국에서의 전시 조직 과정과 얼마나 다른지를, 의사결정을 위임받은 주체들이 지식도 경험도 정보도 전혀 없이 그때 그때 다급하게 연습해가며 국제 행사를 치러내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외국 작가의 성장과 작업 과정, 파급력,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해 다양한 관심이 모아지고 연구를 자극하고 공개적으로 토의되는 자리 자체가 부재한 허장성세의 예술 행사가 판을 치고 있는 셈이다. 담론을 생산하는 조건과 태도를 만들어내는 일 그리고 정작 필요한 전문인을 키워내는 일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이제 국제 큐레이터 심포지엄에서 광주비엔날레는 그 규모와 문화 지정학에 있어 중요성이 널리 회자되면서도 정작 국제 토론 대상에서는 자주 논외가 되고 만다. 부산비엔날레와 미디어 시티 서울 전시는 외국의 공식적 토론 회의에서 아직 언급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 안에서 조차 수억에서 수십 억을 사용하고도 국제 패널 토론회를 열지 못하거나 행사를 통해 미술에 대한 어떤 지속적 토픽을 생산하지 못하고 피드백이 거의 부재한 지금의 미술계 현실은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한국에서의 모든 국제 행사는 이전 행사에 대한 거의 일방적 비난과 함께 상호 연결과 피드백을 부정하는 일에 바쳐짐으로써 계속해서 냉소와 무관심, 그리고 부정적 에너지를 유포하게 된다. 우리 안에서 조차 대화와 토론이 단절된 것은 복합적인 사회적 이유와 함께 일단 깊은 병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비엔날레가 한국과 지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울과 지역의 소수 미술인들의 정치적 게임, 조야한 관료 행정의 제물이 되는 현구조를 파기하는 철학과 방법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외국 큐레이터들과 훨씬 밀도있게 일을 하려면 그들을 내국인처럼 여기며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고 가능한 많은 한국미술인들이 그 정보와 경험과 내용을 공유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야 한다. 또한 단지 외국인의 입을 빌어 광주, 서울이 대신 거론되는 시대를 넘어서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둘째, 언어의 제약 외에 소통을 어렵게 하는 또다른 장벽은 선입견의 문제이다. 외국 미술 전시에 대해 흔히 '별 것 아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는 우월감이 강한 사람에게 더이상 궁금해 할 것은 없으며 무언가 대강 알아버렸다고 여기는 그 자신이 이미 단절의 벽이다. 토탈미술관에서 대만의 젊은 현대미술가 전시가 오픈했고 대만 작가들이 서울을 다녀갔으나 정작 오픈식에서 국내작가 보기란 어려웠다. 흔히 대만은 한국의 상대가 되지 않고 중국은 거칠고 단순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왕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그는 중국 작가이지만 중국미술계를 고민하지 않으며 고민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중국은 하나가 아니다. 왕두라는 작가는 파리에서 살지만 전세계적 문화교차로 한복판에서 자신의 예술적 생존을 해결해가는 살아있는 야만인(기존의 도로를 잡석으로 만들어 새 길을 여는 존재라는 발터 벤야민의 의미)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가 속한 시대에 책임을 느끼지만 국제 미술계에 자신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할 것이라 생각하며 작업하지는 않는다. 그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그 자신이 매일 경험하는 세계의 변화, 그것은 정치적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가능하면 모든 것에 민감한 시대의 온도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도계는 의미를 주장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의 변화 정도를 가르킨다. 그것을 측정하고 해석하는 것은 관객이다. 예술가로서 그의 관심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 드는 비판가도 아니며,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방관자도 아니고 주어진 환경과 맥락에 개입하여 회로를 전환하고 새로운 문화 내용을 전달하는 대행자 혹은 문화의 변환기(converter)가 되는 것에 있다.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이유는 중국적 특성, 미디어 비판 혹은 즐김 보다는 노동의 특성에 있다. 그의 작업이 나에게 감동을 수반하는 이유는 육체적 노동과 지적 노동 사이의 구분과 위계(현대미술의 역사와 구조가 조장해온)를 자신 안에서 허용치 않는 임계점(critical point)를 향해 부단히 달려나가는 특유의 살아있는 힘에 있다. 그것은 현대미술 안에서 그것을 관통해 내는 유일한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현실이 된다.

셋째, 가까운 이웃의 실상에 대해 구체적 관심과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중국 큐레이터에 대해 알고 있으나 중국이라는 큰 나라의 프레미엄 때문에 도리어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며칠전 북경에 가서 중앙미술학원(Central Academy of Fine Art; 국립대학)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중국에는 현대미술을 교육하고 전시할 공간 자체가 아주 부족한 실정이라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변화에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 연변 미술이나 아시아적 정체성 논의에 국한하여 분야의 영토성을 지켜내는 수단으로 우리의 정해진 의식의 틀 안에 중국 미술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는 이웃의 변화 과정과 우리가 처한 조건을 냉정하게 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4년제 어느 미술 대학도 외국 대학과의 전시, 학술, 문화 교류를 전담하는 독립 부서와 그 책임자를 두고 있는 대학이 한 곳도 없다. 반면에 북경에 있는 중앙미술학원을 보면 이 대학은 한국의 모든 4년제 미술 대학 처럼 종합 대학에 소속한 단과 대학이 아니며, 학생수가 1,600명으로 전세계에서 자신들이 선정한 20여개의 우수한 많은 미술대학들과 자주 워크숍, 전시 교류, 학생 및 교수 교환을 통해 깊숙이 실질 교류를 지속해 왔고 외국 미술 대학들에 대한 정확한 최신 정보들, 인적 컨넥션을 갖고 있으며, 북경 내의 외국 기업들로부터 재정적, 물질적, 비물질적 지원을 받아 오고 있다. 이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이 40명, 일본에서 20명 그리고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유학과 교환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다. 중국화를 제외한 분야는 대부분이 외국에서 공부한 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 미술계에 수십년에 걸쳐 권력 관계를 형성해온 서울대와 홍익대에 속한 미술 대학에 과연 외국 학생들이 몰려와 유학하게 될 그런 날이 과연 올 것인지 아직은 암담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안에서 자긍심이 강한 그 미술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이 비싼 자비를 들여 유럽과 미국에서 재교육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작가 활동을 하게 된다는 딱한 사실이다. 그 학교를 방문하던 중에 1년 계약으로 그 대학에 온 홍익대 안상수 교수가 제10공작실(스튜디오의 중국식 명칭)에서 중국 학생들과 수업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 대학은 최근에 사진과를 뉴 미디어와 통합하는 센터를 외국인 교수가 디자인하여 매우 세련된 인프라를 구축했고, 훌륭한 영상 제작실과 대형 벽화실, 그리고 교육 시스템에 있어서 모든 실기는 각 교수별 스튜디오(공작실)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교수와 학생들은 항상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대화하고 수시로 접촉하게 된다. 학부 3학년 이상은 대학원생들과 수업을 함께 하기도 하며, 교수들은 누구도 개인 연구실을 대학 내에 가질 수 없으며 학생들과 스튜디오를 공동으로 사용한다. 이론 수업은 1주일 중 하루 정해진 날에 전체 학생이 실기 수업 없이 이론만 집중으로 받게 되며 분야간 연결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스템화 되어 있다. 전통적인 창작과 서구 (포스트) 모더니즘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 실험이 공존하면서 이론 수업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컨텍스트를 강조하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또한 한국의 미술 대학들에서 낙후되어 있는 한국화 분야와 다르게 중앙미술학원에서 (중)국화 부분은 세분화되어 있고 진사 과정에서는 중국 여러 지역에서 온 선생, 교수, 일반인,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사회 교육 시스템이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서울과 지방 가릴 것 없이 국제경쟁력이 없는 한국 미술대학들이 구조적, 교육적 문제의 모델을 형식적으로 유럽에서 차용해 보태기만 할 것이 아니라 개방 정책을 편 중국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오고 있는가, 그들이 현재 처한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좀더 진지하고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분명하게 있어 보였다. 인구 13억 중국의 현대미술이 21세기에 결코 취약할 수 없는 이유는 전통 창작이 현대주의와 균형을 이루고, 사회주의 노동과 평등 개념이 관료주의 폐해를 극복하여 글로벌 자유 경쟁 체제에 진입하는 독특한 마찰과 조화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교육 조건의 개선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적지 않은 중국계 작가, 큐레이터, 연구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중국의 미술 대학들을 변화시키는 간접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 Friday, November 22, 2002 10:2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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