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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_춤의 작동과 긍정의 정신- 4회 광주비엔날레

이영철

멈_춤의 작동과 긍정의 정신
- 프로젝트1에 대한 시각


멈_춤의 작동과 긍정YES의 정신
멈_춤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4회 광주비엔날레는 많은 의욕적인 계획들과 전시의 구조를 변화시켰고주), 전시에 내용면에서 도시화, 지역성, 공동체, 정치성 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이슈들을 감행했다. 현실적인 문제제기들을 매우 의욕적이었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준비과정에 참가했다. 그러나 막상 국내외 미술전문가들이 보는 이틀간의 프레 오픈 전시는 작업의 설치가 절반에 불과했고 그나마 비디오, 컴퓨터들은 켜져 있지도 않았다. 준비과정에서 시시각각 벌어지는 국면들의 변화를 한눈에 체크할 수 있는 전체상황판이 없이 대규모 국제비엔날레가 치러진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미술인들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 멈_춤이라는 주제의 뉘앙스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얼핏 전시의 첫 인상은 쉴새없이 건설하고, 재개발하며 왕성하게 돌아가는 아시아 도시들의 가차없는 역동성 자체였다.

멈_춤과 역동성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빠름과 느림, 그리고 안과 밖의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오늘의 세계에 어떤 미학적 정치적 판단을 제공하려고 한 것일까? 작지만 단단하고 인간적 스케일의 비엔날레라는 애초의 슬로건에서 벗어나 결과는 스펙터클한 전시가 되었다.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물리적 규모 보다 중요한 것은 비물질적인 힘, 강도, 속도에 대한 현대적 지각 방식이다. 서울행 새벽 버스에서 도록의 글들을 읽다가 멈_춤에 대해 참신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감동적인 한 대목을 발견했다. 그것은 속도 경쟁에 대립하는 느림이라는 상투적인 차원에서의 일시 정지 같은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동양철학의 두루뭉실한 수사적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이번 비엔날레의 공동큐레이터인 찰스 에셔의 친구로 여겨지는 스코틀란드의 필자인 셉 스타이너Shep Steiner가 사려깊은 자신의 글 맨끝에 인용한 자크 데리다의 문장이었다.


누가 나타나든, 무엇이 나타나든, 어떤 결정이나 기대, 식별도 하지 전에, 그것이 외국인이든, 이민자든, 초대받은 손님이든 혹은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든 아니든, 새로 도착한 사람이든 다른 나라의 시민이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성스런 피조물이든 살아있거나 죽은 존재이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에게나 'YES'라고 말하자.(도록 p.42)

그는 타자에의 절대적 개방으로 멈_춤에 대한 실천을 강조했다. 참으로 어려운 제안이다. 냉전의 심리적 상처, 자신의 내부와 외부에 걸쳐있는 적대적 대립 감정, 갈등이 내면화,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람이든 아니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네라고 말하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태도의 혁명적 변화가 시급한 이유는 대체 무언가? 이 전시에서 얼마나 긍정(YES)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도록에서 큐레이터들은 '우리는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확인하여 초대했다 We have identified people who understand the context and invited them'고 말했다.(도록 p.29) 이것은 반대되는 생각이 아닌가? 맥락과 멈_춤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멈_춤을 멈춤에 열려있음 혹은 멈_춤가능성pausability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의미를 전하고자 했던 쉡스 타이너의 제안을 통해 우리가 어떤 전시를 한번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을까? 데리다의 말은 다른 개념들을 덧칠할 필요 없이 누구라도 각자 자신의 그림과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차원에서 멈_춤에 대한 가장 훌륭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참여작가들은 큐레이터가 말하는 맥락과 정의하기 어려운 멈_춤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을 해야 하는가, 혹은 양자를 화해시킬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또한 큐레이터들이 맥락을 식별할 줄 아는 작가들을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작가들의 달라지는 계획plan, 더욱 급진적인 긍정(YES)의 정신에 의해 맥락과 아무 상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분명 멈춤에 열려있음은 그 어느 것보다 어려운 대안을 요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멈춤에 대한 탐색은 까다롭고 정교한 기능, 섬세한 감각을 수반하며 그 한계 실험을 밀고갈 경우 충분히 위험스럽기 때문이다. 그것은 코드화된 모든 것(단지 제도만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이름의 존재 방식과 가치 문제를 포함하는), 문맥을 거부하고 궤도에서 벗어나는 탈주자 혹은 저항자들이 일시 당도해 있는 문지방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애초부터 어려운 설정, 그러나 도전해 볼만한 혹은 도전해야 할 문제 설정을 했다. 이는 바로 지금의 그러나 과거 속에 얼마든지 존재했던 창조적 사유자,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이었고 그것은 실패를 거듭하는 실천학pragmatics의 문제였다. 따라서 멈_춤에 대한 생각, 실천은 현대미술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사람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매뉴얼이다. 이런 매뉴얼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매뉴얼의 제1 명제는 오늘날 책임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며, 그것은 우회적인 방법을 통해서 길을 찾는다이다. 인본주의의 이름 하에서(in the name of humanism) 더이상 나갈 길이 막혔을 때, 우회로는 환상에 불과한 인본주의적 사고를 버리고 생태eco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인본주의 사고의 대상을 말하기 보다는 그 사고의 패턴 자체를 살피자면, (1)생각이 명석 판명할 것 (2)문제틀을 분석가능한 계기들로 분류할 것 (3)생각을 질서에 따라 배열할 것 (4)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이행시킨 후 마지막에 요약할 것 (5)과정의 상세화를 통해 망각에 대비할 것 등이다. 이는 서구의 근대적 정신과 방법을 지배해온 요체이다. 전시(혹은 작품)를 만드는 우리는 이런 생각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 명제가 중요한 이유는 단적으로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비사회적 것(이분법, 구조적 사고와 위계적 프레임)의 개입을 두뇌에서 제거해 버리는 것이 일차적 요구인 셈이다. 그 방법은 첫째가 도주flight이고 둘째는 태만defection이다. 즉 우리의 두뇌에서 단단한 나무를 빼내고 두뇌가 영리한 잡초 처럼 작동하게 두는 것이다. 멈_춤은 사고의 혁명, 그에 따른 태도 변화를 촉구하는 아주 작은 폭탄이다. 멈_춤의 전시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작은 폭탄이어야 한다. 이 폭탄은 자본(화폐)에 대한 생각부터 낡은 관념에서 해방시킨다. 즉 자본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를 증오, 폭력, 그리고 보복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로부터 해방시킨다. 그것은 사고 파는 사람들의 관계를 개성을 지닌 개인으로 취급하지 않는 점에서 카오스-관리의 가장 성공적인 미디어다. 그러므로 멈_춤은 경제적 지구화의 현상을 단순히 동질화의 국면으로 규정한 후 그에 맞서 문화적 다양성, 이질성을 대립시키는 단순 도식을 허용치 않는다. 즉 지구화/지역화를 유목성/정체성으로 단순도식화하는 사고 자체를 머릿 속에 깊히 박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세계에 편재해 있는 대한 온갖 셀 수 없는 불안의 이미지, 그 논증의 리스트를 피드백하고 개념들의 도덕적 사본을 덧코드화하는 도덕주의자, 경고자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데리다가 요청하는 절대적 YES의 정신으로 아주 신중하게 한발씩 전진하면서... 프로젝트1 전시는 큐레이터들이 현실적 감각으로 이 법칙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2002 광주비엔날레는 1997년 지구화-지역화의 문제를 가로지르는 5개의 주도적인 힘을 상정한 후 시각예술로서 개념적 상상력(Conceptual Imagination)을 실험했던 2회 광주비엔날레에 좀더 현실적인 역동성, 시간성과 긴급성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멈_춤은 궁극적으로 삶의 생태eco에 대한 보고서의 형식을 띨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젝트1은 일종의 오늘의 도시적 삶의 생태에 대한 비평적 보고서이다. 그것은 위기인 동시에 처방predicament의 성격을 띤 위기적/임계적 텍스트이다. 이 전시는 정신생태(개별작가), 환경생태(파빌리온), 사회생태(대안공간)라는 3개의 단위를 통해 지구화와 지역화의 역학 관계를 동질화/이질화의 대비가 아닌 흐름/장애물이라는 상이한 네트웍의 관계로 풀어갔다고 볼 수 있다. 즉 지역화는 기존 제도 안에서 온갖 장애들의 맥락을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네트웍을 도모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지구화는 아예 문맥에서 벗어나 흐름의 이동성에 충실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공동큐레이터들이 맥락을 이해하는 작가를 선택했다는 말은 정체성(이 단어 자체가 동질성을 전제한다)과 무관하며, 지역의 기존 질서 안에서 맥락을 재검토하거나 그 가능성이 많은 작가들에 비중을 두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지구화에 대한 저항과 지역성의 방어라는 낡은 좌파적 전략, 혹은 또다른 의미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동일한 주장을 펴는 보수파들의 전략과는 다른 것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편재하는 제국의 새로운 세계질서 안으로 들어가 동질화하기도 하고 이질화하기도 하는 특이한 체제적 흐름들에 복합적으로 맞서는 지구적 차원에서의 위치의 결정, 새로운 열려진 네트웍의 구성이 중요한 것이다. 비엔날레는 이런 가정이 미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 현대적 지각 방식, 관객과의 소통 문제와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차원에서만 우리는 공동큐레이터들이 '일반적인 비엔날레의 구상이 아주 문제가 많은 것이기 때문에 이번 비엔날레를 유별나게 만들려'고 했다는 말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역대비엔날레를 하나로 동질화시켜 보거나 외국비엔날레들을 일반화하여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공허하고 진부한 대중홍보용 수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미 주어진 것들을 열어젖혀서 요소들을 풀어내고 자신이 의도하는 것들의 부분들과 재접속, 계주relay, 활성화시키는 방법, 측정, 실험, 그리고 신중함이 없이는 그냥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달리는 큐레이터가 될 뿐이다.


유행-리사이클링과 큐레이터쉽

문화 변동의 가속화, 혼성화, 이질화와 동질화의 빠른 반복적 교체 현상은 아방가르드 운동의 계획된 유토피아를 카오스의 위기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이제 지나간 시간들, 사물들을 경험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오늘날 유행적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은 금방 조로화되며 그로 인해 유행-리사이클링은 현재를 계속 졸라댄다. 여피, 286컴퓨터, 조지 부시 등은 더 오래된 과거 보다 더 낡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미술에서 백색 큐브의 전시 공간이나 칸막이, 페인팅, 조각, 자기지시적인 유형의 작업 등은 낡은 언어로 지탄된다. 그로 인해 바로 직전의 과거의 것보다 더 낡은 것은 없다는 느낌을 유발시킨다. 유행은 바로 직전의 과거를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부정한다.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오늘날 비엔날레들은 전적으로 새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레퍼터리들을 독자적 시각에서 리사이클링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시들의 계보학적 상호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찰스 에셔와 후한후 전시는 예외없이 기존의 전시들을 모델로 하고 있다. 하나는 1994년 벨기에의 겐트 미술관에서 열렸던 <이것이 전시다>전이다. 이 전시는 9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예술감독이던 얀 후트를 도와서 일했던 바르트 배레(Bart de Baere)가 벨기에의 겐트 미술관에서 큐레이팅한 것이다. 참여 작가들은 전시 기간 중에 작품을 계속 바꿔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서의 전시를 실험했고 당시 유럽권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미술관의 조건들을 위시해 그룹전의 전시 형식(format)에 대해 토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 전시는 1990년대에 개별화, 혼성화, 자전적 작업을 해오던 작가들에게 공동, 협업 작업을 고무시키는 방향에 불을 당겼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그걸 해라 Do It>와 니콜라 부리오의 <교통 Traffic>전도 바르트 배레의 <이것이 전시다>와 호흡을 같이 하는 유연한 전술이었다. 또 98년 후한루 자신이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공동 기획했던 <움직이는 도시>전은 몇개의 도시를 순회하며 참여 작가 수를 계속 늘려갔고, 작업들도 변해 갔다. 당시 아시아의 많은 젊은 작가들과 대안 공간들에 대한 리서치가 있었고 이후의 그의 활동에 연관되어 오늘의 4회 광주비엔날레의 성격을 만들어냈다. 그 역시 바르트 배레가 실험했던 과정 중의 전시를 아시아의 도시화 과정, 혼성 문화의 형태들, 대안적 시도들에 응용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4회의 프로젝트1 전시는 독자적인 것이라기 보다 유행과 리사이클링의 결합, 개념적 패키지를 꾸려내는 현대적 큐레이터쉽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 것이라 하겠다.


대안공간과 파빌리온

프로젝트1의 새로운 카드는 유럽과 아시아 중심에서 27개의 젊은 작가 그룹의 대안 공간을 초청하여 아시아, 유럽 간에 작가들의 네트 워킹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도시성, 일상성, 공공성의 측면에서 대안 공간 그룹을 초청한 것은 97년 광주비엔날레의 <공간-불>전과 연결점이 있다. 당시 큐레이터 박경은 개별 미술가를 초청한 것이 아니라 세계 26개 도시를 초청했다. 건축가, 도시계획가, 사회학자, 미술가, 사진가, 디자이너 등의 공동작업을 참여시켰다. 전시 공간디자인에서도 비계scaffolding를 많이 사용하여 역동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지적 공간을 연출해냈다. 그것은 미술비엔날레 안에서 미술이 아닌 사이 영역들을 탐구한 사례로서 기존의 외국비엔날레 전시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 전시는 지구화/지역화의 복합적 맥락 안에서 도시화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 상당히 분석적으로 접근했다. 그 조망의 새로움과 밀도는 같은 해에 카트린 다비드가 기획했던 10회 카셀 도큐멘타에서 보여진 도시주의 전시 파트(당시에 렘 쿨하스가 기획) 보다 사실상 훨씬 깊이가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시도들이 국내에서 있더라도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매번 비엔날레는 하늘에서 떨어진 전시처럼 말해지는 경향이 있다. 누가 먼저 했느냐가 중요하기 보다 어떻게 결합해서 비엔날레의 차별화 전략을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으로 결부시키는 유행적 사고가 유행을 비판하는 유행을, 그리고 소위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이비peuso 아방가르드를 양산할 뿐이다.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가급적 최대한 이질적인 종자들 끼리의 접합을 통해 무엇이 발생하느냐 주목하는 일이고 당연히 과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그에 대해 논의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과정이 지나가는 통과점passage에 대해 말할 것이 없거나 귀를 막는 미술계는 지속적으로 재난을 피할 수 없다. 해결사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 유럽 도시들의 유력한 대안 공간 그룹들은 한국이나 동남아시아의 대안 공간 그룹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또한 유럽의 대안 공간은 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주류를 공격하던 기세를 갖고 있지 않다. 후한루는 복합문화주의와 탈식민주의의 관점으로 유럽에서 큐레이터 활동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국의 진보적 운동을 의식적으로 배제했다. 이 전시가 시간적으로 1990년대 이후 가장 최근 현상에 초점이 있고 가까운 미래의 미술에 대한 전망과 기여의 성격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기간은 냉전(이원론)의 붕괴로 좌/우의 대립적 감정 뿐 아니라 각자의 내면(자아) 속에 있는 대립적 요소들의 배치와 관계들을 해체시켜 버렸다. 흥미롭게 일원론=다원론이라는 서구적 정신으로는 매우 낯선 공식을 이해하는 것이 화두가 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90년대 유럽의 작가들, 대안 공간들은 기존의 미술제도, 소위 주류미술계에 맞설 이유도 없고 특별히 반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류/비주류의 도식 자체가 낡은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제도적으로 중심/주변, 주류/비주류가 존재한다고 해도 사고 속에서는 이미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방법과 다른 대안이 문제이고 이는 바로 긍정(YES)의 사고를 확산하는 일로 해결책을 찾는다. 유럽에서의 대안 공간은 젊은 작가들이 모인 곳이고 미술관에서 너무 많아진 젊은 작가들의 작업, 새로운 경향들을 즉각적으로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이들은 어디서든 전시를 하며 미술관에 대해 특별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비엔날레에서 대안적 그룹을 초청한 것이 기존 질서에 대해 대척점counterpoint을 마련한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며 오히려 큐레이터들이 자신들의 입지, 새로운 카드를 사용한 것의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수사적 표현이고 방점은 오히려 다른 쪽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주변이고 비주류에 속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제국적 통제 국면에서 벗어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미술가들이 사보타지적 성격의 저항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냉전의 당사국인 한국의 1980년대가 오히려 매우 특수한 사례였을 뿐이며 그 후유증은 지구화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더욱 벌려놓은 것이다. 반면 보다 분명하게 주류의 맥락에 있어온 서유럽 같은 지역은 제국적 통제에 맞서 도주flight 혹은 태만defection이라고 하는 새로운 유형의 저항 전략을 수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 미술의 전개 상황은 아프리카를 위시해 절대 빈곤을 겪고 있는 비주류에 속한 나라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도주의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는 4회 광주비에날레에 초청된 많은 젊은 작가들(그것이 대안 공간의 형식format으로 초대되었던 아니든)의 작업에서 우리는 본질(내용) 보다 표면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짐을 느낄 수 있다. 중국이나 한국의 작가들 가운데 직접적으로 현실 비판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 도주는 어떤 권력의 장소도 갖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권력의 장소를 철거해버리는 일이다. 큐레이터들은 대안 공간들 사이에 18개의 파빌리온을 설치했다. 중국과 한국의 정자 개념을 도입한 이 유니크한 발상은 관객들에게 상상력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점에서 소위 사용자User 중심 시대의 지배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이지만 너무 많은 휴식 공간의 배치는 도리여 휴식을 강제하는 느낌을 주었다.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강조하는 소비 사회의 구호와 장치들은 사람들을 쉬 피로하게 만든다. 정자가 아름다운 것은 도시성과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이며 피로 이후에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파빌리온은 휴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놀이터가 되었다.

지적으로 성실하나 생각에 포용성이 부족해 보이는 한국의 포럼 A 그룹은 2002 광주비엔날레에서 중요한 위치로 개입해 들어갔다. 비엔날레 재단에서 적지 않은 지원금을 받아 1주일 간의 워크숍을 주도했고, 과정을 기록, 편집하여 전시로 보여주었다. 결과물은 다소 실망스러운 과제의 성격이 강했지만 문제 제기 자체는 의욕적인 것이었다. 이는 젊은 세대 한국 작가들이 지구화의 네트웍을 향해 유럽과 아시아의 젊은 작가 그룹들과 의견을 교환하는 중요한 첫 출발이다. 새로운 문제 의식과 다른 감각의 외국인 미술가 집단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언제든 중요하다. 그러나 애초 분명했던 것은 찰스 에셔의 겸손한 제안modest proposal의 내용이 기왕의 포럼 에이 그룹의 성격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찰스가 제안하는 내용은 개별적이든 동아리peer group든 개방성과 유연성을 갖고 작업해온 국내의 다른 젊은 작가들의 활동에 오히려 더 부합한다. 우리 미술계에 참여적 성격의 대중전위대가 하나쯤 있어도 좋겠지만 지구화 시대 미술판은 스스로 창조적 수행력을 왕성하게 키우는 게릴라들의 활동무대로 이미 진입해 들어왔다. 이제 작가 개인은 더이상 버림받고 소외된 각성체가 아니라 스스로 사회적 시스템이 되고 무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의 현대 미술의 조건은 한국에 비해 훨씬 열악하지만 냉전의 극단적 대립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 좀더 가볍고 빠르게 문화 전쟁터(세계시장)에 투입된다. 리크릿 티라바니쟈, 나빈 라완차이쿨, 술라시 쿠솔웡은 대표적이다. 이제 새 출발은 목표를 향한 배타적 운동이 아니라 안 보다 더 안(=바깥)을 탐색하는 동시에 대립 감정과 분노를 순진한 기쁨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예술감독의 역할

작가, 작품만 정하는 커미셔너는 엄밀히 말해 현대 전시의 큐레이터가 아니다. 큐레이터는 전시의 영화 감독이다. 그는 모든 것을 정하고 조절하고 이끌어가는 배의 선장이다. 따라서 그는 명목 뿐인 독재자가 되기도 하고 창의적인 예술가, 유능한 조정자(interocutor)가 되기도 한다. 전시는 게르마노 첼란트의 말처럼 '그 자체가 전시 설치이자 아주 유연한 시각 기계Visual Machine이다.' 오늘날 비엔날레를 위시해 각종 기획전들이 한 명의 큐레이터에서 여러 명의 공동큐레이터로 전환하는 이유는 상호 의존과 협력이 크게 필요한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큐레이터 제도는 모든 것을 함께 토론하고 이끌어 가는 과정을 전시 자체에 포함시키는 흥미로운 일이다. 협동 작업은 언제나 하나의 이상이다. 그것은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들의 합계가 아니라 그 이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오며, 과정에서 놀랍게도 새로운 길들이 발견된다. 이 경우 마찰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여 시너지 효과를 긍정(YES)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이다. 본인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볼 때, 적어도 한국에서 예술감독은 모든 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20시간 노동자이다. 그는 과정 중에 발생할 문제들에 대해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위기 대처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예술감독을 움직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 견해를 솔직히 말하자면 2002 광주비엔날레는 연구 능력이 탁월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예술감독을 선정했다. 그러나 실행의 국면에서 그는 자신이 움직이는 시스템이 되지 못했다. 언제든 광주비엔날레는 누군가 해결사가 있어주면 행운이고 그렇지 않으면 재난이 된다. 큐레이터로서의 예술감독은 전시 자체를 하나의 열려진 작품으로 만들고 가동시키기 위해 생산 라인을 활성화시키는 방법, 위기 대처 능력과 해결 방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오프 라인이든 온 라인이든 전시는 물리적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서 많은 중요한 것이 결정된다. 그래서 큐레이터는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식 공간 지각 방식을 스스로 연구하고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큐레이터는 자신의 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건축가의 재능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건축가가 참여 작가들의 상위에 있어서는 안된다. 그는 예술감독의 지시에 따를 수 있어야 하며, 예술감독은 참여 작가들의 작업 계획을 완전히 파악하여 전체 밑그림을 그려 내야 한다. 큐레이터들이 함께 작업하는 경우에 각자는 경험, 취향, 지각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예술 감독이 조정자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 작년에 시작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4명의 공동 예술감독이 함께 일하는 특이한 구조를 시도했다. 이 가운데 누가 조정자였는지 알 수 없으나, 협력 체제 안에서 조정자를 갖지 못하면 전시가 모자이크가 된다. 요코하마는 대단히 좋은 작가 파일과 작품 리스트를 갖고 있었지만 조정자를 설정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다데하다가 혼자 맡았던 붉은 벽돌집의 영상전 설치는 매우 훌륭했다. 광주비엔날레는 4차례를 치르면서 사실상 많은 것을 이미 경험했고, 적어도 현재의 국내 미술계의 수준과 역량, 한계들을 모두 드러냈다고 본다. 그러나 막다른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컨텐츠웨어, 아트웨어로 진행하는 두뇌 게임의 추이를 잘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러한 추이의 핵심은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뇌에서 관념의 나무를 제거하고 뇌의 작동을 풀의 상태로 되돌려 놓은 일이다. 흔히 오해되듯 영상 테크놀로지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것이 곧 컨텐츠웨어와 아트웨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향후 국제비엔날레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길, 그러나 이미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것들 사이를 탐사하는 일이며, 그것은 문명사적으로 근대를 넘어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의해, 그에 적절한 소명을 받은 자들에 의해 한발씩 앞으로 나갈 것이다.

주) 우선 몇가지 근본적 구조 변화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첫째, 총감독에서 예술감독으로 명칭을 바꾸고 대륙별 커미셔너제를 공동큐레이터제로 전환시킨 것은 구태를 벗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둘째, 특별전들을 없애고 프로젝트 개념으로 전체를 통합한 방식은 좋은 프레임이다. 셋째, 낡은 지역적 정체성 논의를 폐기하고 글로벌/로컬의 맥락에서 도시성, 현장성, 대안성, 이산의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은 개최국의 입장에서 특색을 부여한 설정이었다. 넷째, 아시아 미술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두되 3회의 과거 지향적 보수성을 넘어 미래 지향적 진취성을 고려한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다섯째, 상무대 지구 자유공원, 폐선부지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의의를 고려하여 비엔날레의 새 장소로 정한 것은 새 차원의 획득이었다. 일곱째, 세련된 디자인의 통합 방식을 보여주었다. 여덟째, 과정 중의 전시 Exhibition in Progress를 구상했던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 설정은 잘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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