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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현대미술의 상황과 전망 ①

이영철

연구 개요

미국이나 유럽 대학들에서의 ‘아시아 연구’ 학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유럽’과 구별되는 ‘아시아’의 문화적 유산을 대상화하여 아시아의 오늘(서구의 지배 이후) 보다는 그 이전 과거를 연구 대상으로 설정한다. 동아시아 또는 아시아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전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전통을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려고 하는, 또한 자본주의 자체를 문제삼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 경제의 성공에 따르는 파괴적 결과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전통을 이용하려 하는 국가와 자본도 이러한 아시아의 정체성을 찾는 일을 앞세운다.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선호는 사실상 인구의 다수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과 일치한다. 즉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지구적인 소비 문화가 지역 문화로 침투하고 있는 세계 앞에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더욱 절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구적인 소비 문화는 전지구적인 시장 정책의 한 부분으로 지방의 문화와 전통을 선전한다.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지칠 줄 모르고 흘러가는 시장 문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모든 사회를 끌어 넣으면서 인종적 ․ 민족적 문화를 양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성향을 가지고 세계주의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민족 문화라는 것이 유럽과 미주 역사가 낳은 근대성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민족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자체가 국내적 억압과 국외적 침략의 기회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할지라도, 민족적․지역적 또는 세계사적 수준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나갈 때 생기는 피해를 피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문화 만들기가 가진 양면성과 모호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 양면성이라는 것은 새로운 제국의 부상에 맞서 저항하는 필요성이(저항의 주체로서 민족 공동체의 결집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오늘날에도 전혀 감소되지 않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공동체의 동질화가 종종 문화적․언어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엄청나게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양날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비판적 의식을 유지할 때 비로소 지식과 예술은 현실에서 벗어나 공허한 관념 세계에 머물지 않게 된다. 여기서 진보적 변화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믿고 있는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에 있어 가장 매력적인 대안적 선택은 밑으로부터의 대화이다. 즉, 아시아 내의 다양한 지역에서 온 지식인들이 그들끼리 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민족적․지역적․대륙적 문화를 사물화하는 것에는 계속해서 반대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선택은 “밑으로부터의 세계화”라고 불리는 현상을 아시아 지역에 이전시킴을 의미한다. ‘동양’과 ‘서양’을 분리시키는 데 반대하고, 또 아시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유럽, 북미에 이르는 타지역 사람들을 통일하는 공통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선택은 배타적이 아니다. 대만에서 발간되는 동아시아 관련 문화연구 무크지 [궤적 Trajectories]의 편집자 쾅싱첸과 주요 필진들은 시간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함을 인식하면서도 이전의 급진주의의 유산을 받아들이는 위치에 의식적으로 선다. 이러한 시도가 갖는 중요한 점은 근대성의 역사 속에서 서로 뗄 수 없이 되어버린 두 개의 병리현상 - 유럽 중심적인 세계 지배와 아시아 사회 내부 자체에서 나오는 병리현상 - 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젠 더 이상 관련되지 않는, 대립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러한 병리 현상을 극복하는가이다. 세계화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영향과 근대성이 안겨준 식민지적 유산을 모두 극복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삶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일의 삶 속에는 여러 종류의 전통과 서구의 문화들이 얽혀서 다양한 지방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면들은 대륙․지역․민족을 가로질러가는 문화 인식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본 연구는 모더니티 과정 속에서의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미술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바로 지금의 변화상을 주목하며, 또한 아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태평양이라는 지역 개념의 문제, 근대를 탈구시키는 방식으로서의 태평양 문화의 해석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 연구 범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렸고, 연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 많고 자료도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는 아시아 본국에서 활동하거나 밖에서 작업해온 미술가들, 그리고 태평양 지역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주요 작가들의 작업과 문제 의식들을 살펴볼 것이다. 논문을 위해 참고가 된 자료들은 국내에서 최근까지 발간된 (동)아시아 관련 서적들, 동아시아 관계 국내외 심포지엄 논문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개최되었던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관련 도록들, 그리고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등이다.


서 론
일본의 잘 알려진 국제 전시 기획자 후미오 난조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 부분으로서 [초문화](TransCulture) 라는 제목의 전시를 만들었다. 그 전시는 이질적인 문화들 간의 연결과 대화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이 주제와 연관된 작업을 해온 미술가들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초청했다. 서로 다른 문화들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서로 대화를 통해 ‘제3의 길’(호미 바바의 표현)을 발견해 간다는 차원에서 난조는 단순히 작가들을 초청하기 보다는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 미술의 현재의 발전 상황을 최대한 넓게 조사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을 초청했다. 초청된 미술가들은 최소한 두개의 문화 간의 가교 역할을 하려는 의도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중국 작가인 카이 구오 창(Cai Guo Qiang)은 중국 대륙에서 낡은 물건들을 잔뜩 배에 싣고 와서는 <마르코 폴로가 잊었던 물건을 베니스에 가져오다(Bringing to Venice what Marco Polo forgot)>라는 제목의 특이한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는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유럽으로 돌아온 지 500년이 되었고, 이 작품은 그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카이는 말하기를, 마르코 폴로가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가져왔지만 한가지 잊은 것은 ‘동양적 사고’라고 했다. 그는 전시 개막식 날에 그 물건들을 베니스의 대운하(Grand Canal)로 싣고 와서 산 마르코 광장에 펼쳐 놓았다. 중국과 유럽을 잇는 먼 바닷길 여행과 스펙터클한 규모의 이 작업은 아시아의 ‘위치’에 대해 서구의 관중들이 생각을 새롭게 하고, 이국적인(exotic) 문화를 즐기고,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에 매스컴과 관중들의 큰 주목을 끌었다. 카이 쿠어 창이 강조했던 ‘동양적 사고’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단 작가에게 있어 (동)아시아가 문화적 영역으로 설정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카이 쿠어 창 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 작가들, 아시아인들이 기정 사실 처럼 받아들여온 점이기도 한데, 공통성을 지닌 단위로서의 특정한 아시아를 설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뒤따르게 된다. 동아시아는 사용, 유교의 신봉 등 공통된 고전에 해당하는 기반의 전통 뿐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역사적 교역에 의하면, 상업과 지적 교환을 통해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과 연결을 맺어왔던, 동-동남아시아 모두를 포괄하는 하나의 지역을 설정할 수 있다. 결국, 중국․베트남․한국․일본의 엘리트들은 공통의 신성한 고전들과 그것들이 내포하는 사회 체제에 의존하였다. 비록 이러한 고전들이 각기 지역적 상황에 맞추어 구체화되면서 서로 다른 역사적 궤도를 만들어 나갔지만 말이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고전들은 마치 그리스․로마의 고전들이나 성경이 유럽인들에게 인식되었던 것과 아주 비슷하게 한 민족 국가의 산물이 아니라 범우주적인 관련성이 있는 신성한 고전으로 받아 들여졌다는 것이다. 또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화 영역으로서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세계 체제로서의 아시아를 형성하는데 공헌했던 경제적 교역 관계, 특히 인구의 이동이다.

이러한 관계들 안에서 전략상 중요한 역할을 해온 부류는 현재 우리가 중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될 때까지 이들은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했지 보편적인 정치적 세계에 속한 어느 한 지방에서 온 후손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중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스스로 지역적 환경에 적응해나갔으나 그 과정에서 이들은 또한 전체 속에 자신들의 사상뿐만이 아니라 사회․경제 행위를 전파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교역과 인구 이동이 확장되는 유럽 세계 체제의 배경 속에서 점증적으로 일어나 아시아 내의 지역 경계를 가로 질러 동아시아를 멀리 아프리카, 오스트리아, 태평양과 연결시키고 있었다는 점이다. 도로(道路)라는 것은 어원상 단선적인 하나의 길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두 개의 길(道)이 연결, 교차하면서 생겨나는 로(路)를 포함하는 말이다. 인간 활동이 의미를 발생시키는 지점은 길 위에 있으면서 동시에 교차점으로서의 로를 포함할 때이다.

(도로는 중국에서 발명한 바둑판의 생김새와 깊은 유사성이 있다. 바둑은 반드시 수평과 수직의 두 선이 교차하는 지점, 즉 갈라지는 틈 자리에 돌이 놓여져야 게임이 성립한다. 틈은 최소한 두 개의 다른 선이 만나는 경우에 성립하는 점에서 그것은 분열 지점, 급변 지점이며, 돌이 놓여지는 순간 전체 국면에 변화를 유발시키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바둑판에는 1년 360일과 그것들을 통합하는 하나의 점으로 구성된 361개의 틈(교차점)으로 이뤄져 있고, 각각의 틈은 다른 모든 틈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게임하는 사람은 틈에서 틈으로 이동하며 영토화/탈영토화의 전쟁을 수행한다. 바둑판은 토지의 분할, 도로의 설계, 그와 연관된 별자리의 움직임(농경 사회의 경작의 바로미터)을 관찰함에서 기원한다.)

카이 쿠어 창이 지칭하는 바는 닫혀진 특정 지역의 문화적 단위로서의 동양이 아니라 문화의 ‘교차로’로서의 동양적인 것을 의미했다. 문제는 그것을 억압해온 ‘근대’를 괄호치는 것, 다시 말해 마르코폴로가 근대 세계를 여는 지점(교차로)에 의해 닫혀지고 침묵되고 전복되었던 그것을 재정위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는 서구에 의해 ‘사물화된’ 동양정신의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괄호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현재 아시아의 본국에서 활동하거나 이주해간 많은 아시아 작가들의 현재적 관심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의 근원을 성찰해온 문학평론가 고진 가라타니는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1980) 후기에서 간략하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쉽게 야기될 수 있는 오해를 막기 위해서 몇 마디 하겠다.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책의 제목에서 ‘일본’ ‘근대’ ‘문학’ ‘기원’이라는 낱말들은 사실상 괄호로 묶여야만 한다.

고진 가라타니의 말 처럼, 지난 19세기 이래 아시아가 걸어온 길 위에 정해진 이름들, 그 개념들, 그것들에 속박되온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 숙고하는 일은, 근거있는 ‘의심의 위치’를 잡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17세기에 철학자 데카르트가 자신의 고국 프랑스를 떠나 당시 유럽의 교차로였던 암스테르담을 ‘의심’을 위한 장소로 정한 것은 일체의 견해들(doxa)을 괄호치기 위한 일이었다. 가라타니는 모더니티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들이 포함하는 견해들(doxa)을 뒤집는다. 책을 구성하는 6개 에세이의 제목들- 풍경의 발견, 내재성의 발견, 고백의 구성, 의미로서의 병, 어린 아이의 발견, 구조의 힘에 대해- 은 체계적으로 일본 근대문학의 발전에 대한 정전적 설명들에서 선험적인 것이라고 간주되는 범주들을 전도시키는 것들이다. 여기서 근대문학의 기원은 자명한 본질들이나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라 의미심장하게 일련의 ‘발견들’이며 사실상 ‘전도(顚倒)’를 말한다. 전도는 근본적인 단절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혹은 가라타니 자신이 때때로 ‘기호학적 성위(星位)의 전복’이라 규정한 것들이다. 한 단계의 시작과 끝을 시대순으로 열거하는 대신에 가라타니는 일본의 모더니티를 담론적 공간으로, 즉 특정하게 제한적이며 전체적으로 싸여져 있어서 그 너머가 ‘보이지 않는’ 그런 장소로서 묘사한다. 담론의 장소를 일단 확보하기 위해 우리는 늘 자명하게 불러온 그 ‘아시아’가 대체 무엇인가부터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고진 가라타니는 역사적 시기로서의 모던 이후 포스트 모던으로 이행하는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모더니티 내부의 차이들, 교차하고 소용돌이치는 지점들, 파국과 변이점들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부딪히는 사고들의 위치를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아시아는 19세기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과 오랜 지배로 인해 현대사에서 커다란 정치적 굴곡과 사회적 변화를 체험했고, 지금은 전지구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아시아’라는 술어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가? 아시아적 정체성은 허구가 아닌가? 아시아적 가치와 국가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아시아의 작가들은 ‘서구’와 ‘전통’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작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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