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아시아를 주목하다

이영철

세계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한 세기 전에 세계 인구의 10%만 도시 지역에 살고 있던 것을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삶의 변화이다. UN 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에 인구의 75%가 도시에 집중하게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8%가 유럽인 반면 아시아는 60%에 달한다.

인구 3천만이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메트로폴리탄 도시 도쿄는 아시아인가? 홍콩, 상하이, 서울, 아니면 싱가포르가 그러한가? 모두가 분명히 아시아의 도시들이다. 대영 제국식 지배가 성급하게 꾸며놓은 자리의 흔적을 보유한 고층 빌딩, 식민지 대로를 채운 밀집된 빌딩들, 국적 없는 사회 분위기를 발산하는 아시아 금융센터, 왕조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심에 유럽의 세기말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이종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장소들, 모든 것이 혼성된 채 시간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섬 타이완, 뉴욕을 독창성이 없는 미니어처로 모방한 도시 국가들 가운데 단 하나의 도시라도 서구로부터 침탈당하지 않은 곳이 없다. 또 그 가운데 단 하나라도 일본 식민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도시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중 어느 도시도 자신들의 의식을 잃거나 처참히 붕괴된 곳도 없다.

20세기의 모든 것, 근본주의 시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민족주의, 냉전, 내란과 혁명이 퍼레이드처럼 아시아 도시들에 새겨져 있다. 그 심리적 외상과 기억은 오늘날까지 물리적인 충격으로 깊은 자조와 탄식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아시아의 도시들은 서구 모더니티를 변형시키면서 생존과 정상을 향한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보다 많은 시간과 돈을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과 물품을 소비하고 싶은 욕구, 공통된 인식과 가치 체계를 만들고 싶어하는 요구와 현세긍정적 유토피아를 건설하고 싶은 불길 같은 소망을 반영한다.

아시아 식민화의 발진 기지였던 도쿄는 이제 노동력의 78%가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구 이동 시스템을 갖춘 예외적인 도시이다. 식민지의 그늘을 경험했던 한국, 홍콩, 싱가포르라는 3마리의 작은 용들은 일본의 성장 속도를 앞지르기 위해 달려 왔고, 중국 남부(주장강 삼각주와 양쯔강 삼각주)와 ASEAN을 구성하는 6개의 동남아시아 국가들(타이,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은 도시 개발 계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도시들의 개발에 퍼부어진 자본의 출처에는 일본, 미국, 유럽, 한국을 위시해 여러 나라들이 포함된다. 동남아시아에는 필리핀의 수빅 만 개발, 메콩 강 중부와 남부의 하위 유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발전의 삼각관계’, ASEAN의 동, 서 그리고 중부의 ‘삼각관계’들이 가장 뜨거운 개발 중심지가 되고 있다. 모두 국경을 넘어서는 경제 발전과 글로벌 자본의 투자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이런 경제적 다이내미즘 속에서 대부분의 아시아 도시들은 어떤 최종적 비전도 없이 파괴와 건설을 계속 반복하며 행복감에 도취해 있다. 중국의 황금 해안, 새로이 낙관주의에 젖어 있는 베트남, 토지 투기와 매매가 판치는 한국,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많은 도시들은 다국적 경제의 아시아 및 지형학적으로 자신이 속한 경제·문화권역 안에서 혹은 더 넓은 국제적 범위 안에서 중심을 선취하려는 공개 경쟁의 승리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러한 예는 무수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시저 펠리가 설계한 페트로나스타워는 1,800만ft2에 달하는 도시 개발지에 포함되어 있는 180ac 넓이 공원의 기념비적인 통로 역할을 한다. 시저 펠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이 450만ft2 넓이의 타워는 에펠탑이 파리와 동일시되는 것처럼 영원히 그 장소와 동일시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건축물의 힘은 한 장소와 그것의 문화를 정체성의 대상으로 각인하는 것인데, 비록 그것이 전적으로 지역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그렇다. 에펠탑의 형태 자체도 어떤 식이로든 파리인들과 프랑스 건축으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닐라 외곽에서는 HOK 인터내셔널/아시아의 종합기본계획에서 440ha에 달하는 보니파치오 글로벌 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뉴욕의 격자형 시가의 형식기하학과 파리의 대방사형 가로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새 도시는 이전의 군사기지에 과밀한 낡은 도시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현대적 하부구조를 지닌다는, 전적으로 기능적이고 경제적 목표와 결합된 원격 도시의 전자적 이미지들을 끌어들인다. 보니파치오에 살고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하여 삶의 질을 고양시킬 광범위하고 다양한 활동들과 각 영역별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 21세기를 위한 필리핀의 이정표이자 상징은 경제적 매개이자 기회로서 새 도시의 지표가 된다.

낡은 도시 바로 옆에 새로 건설된 도시들이 갖는 아시아 도시들의 이중성은 상하이 푸둥의 루이지아주이 금융 및 무역지구 개발에서 천문학적 크기로 드러났다. 국제금융과 무역을 위한 아시아의 센터로 건설되고 있기에 국제적 경합이 치열했던 곳이다. 그들의 다양한 제안들은 나중에 다소 무원칙적으로 절충적인 혼성체로 결합되었는데, 일련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이 설계되며 건축되고 있다. 가장 높은 건물은 상하이 라디오·TV 송신탑으로 468m에 달한다.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는 460m에 달하는데, 그 상부에 있는 커다란 구멍은 전망대로 멀리 보이는 송신탑과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이 점령했던 아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펄럭였던 일장기를 상기시킨다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 최근에 내부를 가로지르는 교대가 추가된 그 구멍은 상하이를 넘어 세계를 향해 확장되는 전망에 대한 강박이며 이 도시의 야심이다.

21세기 초의 도시들은 하늘 높이 솟은 탑, 고속도로, 쇼핑센터, 공항 그리고 비즈니스 공원 등을 가져야 한다는 이상에 따라 건설될 것이다. 새로 건설되는 도시들은 뉴욕, 런던, 파리 등과 같이 기념비들과 전통, 그리고 문화 제도 및 공공 기구들의 구축을 통한 계몽주의의 관념에 토대해 있는 정태적인 도시들과 전혀 다르게 진행되어 간다. 심지어 사이보그가 등장하는 소설과 영화에서 종종 21세기의 전형적인 도시로 그려지는 도쿄,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마이애미 같이 외견상 무정형적이고 끝없이 확장되는 도시 모델들도 더 높이 솟아 있고 커다란 도시를 건설하는 것으로 경제적 성공을 증명하려 한다. 이른바 새로이 등장한 중국 신드롬이다. 이에 대한 비전은 아시아 열망 내의 단호한 낙관주의에 비하면 창백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는 노골적인 경제적 기업이 되었고 문화, 역사 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이 모든 논점은 다국적 자본주의와 신세계 질서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모든 건축 및 도시계획의 공통 실마리가 임의의 깊이를 갖고 있고 역사적인 이해가 결여된 것임을 알게 된다. 혹, 그런 이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개발 목적에 맞추어 낭만화하고 새롭게 재단된다.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새롭게 질문해 보려는 의도에서 올해 제10회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는 그 동안 현대 도시들이 건축가들의 철학과 아이디어의 경연장처럼 실험되어 온 것에 거리를 두고 있다. 영국의 도시계획가 리차드 버딧은 자신의 전문 분야 경험을 살려 현대 도시들의 문제들을 일반적으로 개관해 보려는 의도로 ‘도시계획’에 초점을 맞추어 전시를 기획했다. ‘도시, 건축 그리고 사회’라는 다소 뻣뻣하고 상상력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비엔날레는 현대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즉각적인 관심들, 즉 도시, 건축 그리고 도시 거주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모델을 탐색했다. 비엔날레는 도시의 행정적 관리, 운송, 그리고 도시 지역들 내의 상이한 리듬들과 흐름들을 조절하는 복잡한 기구와 시스템들을 분석하면서 『21세기 도시들을 위한 아젠다』라는 간행물을 준비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도표, 사진, 영상 이미지들과 통계자료들은 세계 각 도시의 정치가, 행정관리, 도시계획자, 건축가들을 위해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겠지만 도시적 삶의 가치에 대한 물음들, 도시의 깊은 역사와 전통, 현대화 과정의 모순들 그리고 소외 계층에 대한 연구와 이해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전시는 4개 대륙, 16개의 도시를 초청하였는데, 아시아에 속해 있는 도시는 상하이, 뭄바이, 도쿄이다. 다른 대륙에서도 비교적 수도에 해당하는 대도시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도시행정가의 관점에서만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본전시에 초대된 아시아의 3개 도시보다는 다른 두 개의 전시 프로젝트가 내용면에서 흥미로운데, 그 하나가 덴마크 파빌리온 전시이다. 재능있는 젊은 건축가 헨릭 발러(Henrik Valeur, 1966년생)가 상하이에 UiD(unidentified)라는 팀의 사무소를 정하고 큐레이팅을 맡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상호-진화(Co-Evolution)’라는 주제 아래 덴마크의 4개 건축사무소가 중국 4개 대학의 교수들, 박사 및 박사후 과정 학생들과 더불어 매우 야심차고 독특한 협동 프로세스를 보여주었다. 향후 20년 내에 중국 인구 중에서 약 4억명이 글로벌 도시화 경쟁에 통합될 것이고, 중국 정부는 13억 인구를 위한, 보다 개선된 생활 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대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이 공동 프로젝트는 “중국이 개선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과도하게 소모하지 않고 그 인구를 위한 생활 조건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었다. 프로젝트 팀들은 베이징, 톈진, 상하이, 시안 등 중국의 4대 개발 도시들의 도시 발전을 위해 4개의 주제((Magic Mountains/ Performative Urbanism/ Shanghai Sub City/ Citywall) 아래 상상의 생태도시 환경 제안을 냈다. 한국 파빌리온에서도 국제적 협동 속에서 좀 더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가 이뤄지는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른 하나의 프로젝트는 이탈리아관에서 소개된 것으로, 북한의 평양에 있는 한 호텔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도무스」(2006. 6)가 ‘픽션 평양’이라는 주제로 지상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했던 동시대적이면서 역사적인 이미지와 자료로 구성된 프로젝트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전체주의 양식 건물 하나를 리모델링하는 이 아이디어 공모전은 건축주 없이 건축을 도시의 사회적·이념적·문화적 컨텍스트 안에서 고찰해 보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는 건축가, 역사학자, 도시계획가, 평론가, 시각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했다. 과거에는 순례자들이 성소들을 방문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생산된 향수 어린 물신들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평양 호텔은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기념비의 장점들을 취합해서 단순화시킨 건물이다. 제안의 대부분은 거대한 구조의 ‘기념비성’을 죽이는 것들로, 그 가운데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모호한 스크린 속으로 그것을 변형시키거나 그 골격을 허접한 티슈의 뼈대로 만들거나 포스트모던 드라마로 용해시켜 희화화하는 구상들이 적지 않았다. 중국의 한 젊은 건축가는 자신의 제안서를 통해 “이 건물이 자본주의 유토피아의 시체들을 거는 사회주의 해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동시대의 한 건축물을 통해 정치 체제와 도시계획 그리고 이념, 가치, 경제, 문화, 생활 양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려와 전망을 해석하고 새로운 것을 새겨넣는 상상력을 고취해 필요가 있다.

랜드마크형 건축물들을 통해 도시를 상징화, 상품화하는 일에 많은 건축가들이 기여해온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미 10년 전 제2회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큐레이터로 참여했던 건축이론가 박경은 펠릭스 카타리가 제창했던 세 가지 생태학(자연, 인간, 사회)의 비판적 관점과 동일하게 국제적 상황주의자의 정신 속에서 세계 주요 도시의 현재와 건축의 관계에 대해 사회적 의미를 강렬하게 고취시키는 전시 프로젝트를 보여주었다. 전통적으로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초청하는 비엔날레 형식과 다르게 그는 각 대륙에서 23개의 도시를 선정했는데, 그의 관점은 리차드 버딧보다 훨씬 진보적인 입장을 선취한 것이다.

아시아를 위시해 오늘날 전 세계 도시들은 왜 그토록 폭력적인가? 사실 우리들은 도시를 계속 건설하는 동시에 파괴하고 있다. 파괴와 건설의 무한정한 순환은 도시 환경의 발전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 과도함은 거주민들의 적응 한계를 넘는 것으로 보인다. 자연자원과 인간 노동의 착취라는 면에서 그야말로 가차없는 근대성은 결국 전진하는 자본주의 궤적을 따라 방기된 도시의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실제로 도시들은 단지 땅을 가로질러 그 경계를 이동시키거나 전환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주요 도시개발 결과물의 울타리는 더 이상 공동체를 보호하지 않고 파괴한다. 동시에 선진국에서는 다시 교외의 밀도가 도심의 밀도를 넘어섬에 따라 울타리는 이제 중심보다는 주변을 보호한다. 도시가 기반했던 원인인 울타리의 개념 자체가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도시는 울타리보다는 이동과 순환과 회로의 기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건물과 도로망으로 점유된 공간으로 도시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도시가 만드는 회로상의 특이점을 도시로 보는 관점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그것은 그물망이고 탈영토화의 문턱을 나타낸다. 도심에는 노동인구의 국내적·국제적 이동에 따른 임시거주자, 불법이민자, 거대 빈민가, 노숙자들이 생겨난다. 이들은 도시에 홈을 파는 힘으로 작용하는 개발에 밀리거나 그에 저항하는 힘으로서 매끈한 공간에 거주하는 도시유목민들이다. 그들은 도시 풍경을 변화시키고 이에 새롭게 등장하는 사회적 이슈들과 결합된 민감한 주체들이다. 여기서 국가는 포괄적인 회로를 갖고 있더라도 공명을 위한 내부 회로일 뿐 회로의 관계들은 국가에 의해 금지되고 억제되고 관리된다.

건축에 비해 사회적 개입과 적응성에서 훨씬 유연하고 다양한 예술 분야는 지난 10년 동안 시각적 장 안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생산보다는 경험과 지식의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laboratory-type environment’ 조성으로 관점 전환을 이루었다. 무엇이 예술을 만드는가,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떤 맥락에서 예술이 발생하는가 등의 ‘자기반영성(self-reflexity)’의 예술 개념보다는 ‘문제 해결의 구조적 과정(a structural process of problem solving)’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한 파벨라(달동네)에 들어가 살며 작업해온 브라질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엘리오 오이티시카(H럏lio Oiticica)나 도시의 공공적 상황에 개입하여 도시를 수술하는 의도로 공공적 성격의 예술을 일시적인 스케폴딩이라는 은유로 접근하는 아콘치스튜디오의 사회적·예술적 실험은 건축에 대해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도시는 오늘날 글로벌한 차원에서 인구 이동의 교차점이다. 유럽의 국가들, 미국의 동부와 서부 도시들에 남미에서 건너온 노동인구, 불법이민자들의 거주가 사회 풍경을 바꿔놓았다. 우리도 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로부터의 노동 이주 현상이 점점 당면 이슈가 되어 간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 노동, 인구의 변화와 이동 현상은 도시 풍경의 변화와 사회적 이슈들을 출현시켰고, 도시계획 및 개발에 있어 새로운 콘텐츠를 위한 연구자들의 플랫폼이 고려될 것을 요구한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부터 한국자본주의는 아시아의 외국인 노동자를 끌어들여야만 가동되는 단계로 접어들었고(한국 체류 외국인 100만명) 앞서 언급했듯이 아시아 도시들에게 거대한 도시개발 계획들의 성취는 기술적·정치적·사회적 맥락의 고려 속에서 국가간, 도시간 전문가들의 협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 속에서 건축은 도심 안에 오브제로서의 건축 - 표현 형식, 미디어의 사용,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건축적 의미와 입장들 - 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건축을 통해 특수하게 시사될 수 있는 토픽들 - 인간 신체, 정치 체제, 이동, 테크놀로지, 커뮤니케이션, 리얼리티와 가상성, 도시성 등 - 과 연계된다. 또한 글로벌 시대에 도시와 지역 내의 문제들에 접근하고 해결해 가는 목적 속에서 도시 및 사회 발전을 위한 연구 및 실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국제적으로 상호 협동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 ‘중화 체제’ 붕괴 이후 처음으로, 그리고 일제 식민지 지배 이후 가장 긴요하게 동아시아 연대의 필요성이 유력한 지역주의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인간적인 삶을 누릴 보편적인 권리에 기초하여, 국민 국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아시아 도시들 안에 소수자와 공동체, 연구, 과정에 ‘기반한’ 도시 - 건축 협동 프로젝트들이 적극적으로 입안되고 그것이 다시 해당 지역과 도시의 정치가들, 공무원들을 설득하고 거주민들의 관심과 참여 속에서 구체화되는 사례들을 기대한다.


- ‘space’잡지, 2006년 11월호 ‘urban research asian cities, asian architecture’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