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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과 비가시성

이영철


현대미술과 비가시성(Invisibility)

I. 문제제기
II. 철학적 가설; ‘Abocular’
III. 시지각의 문제와 미술
IV. 밤에의 초대, “Where Are You?”
V. 결어


낭만주의가 눈에 대한 부정이라면, 리얼리즘은 눈에 대한 긍정, 모더니즘이 눈에 대한 회의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눈에 대한 절망이다. (임철규, [눈의 역사, 눈의 미학])

보는 것은 언제든 보는 방식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는 것은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다. (존 버거, [보는 방식])


I. 문제제기

이 글은 마로니에 미술관(현재 아르코 미술관)에서 본인이 기획했던 전시 (2003년 9월, 국립서울맹학교, 실로암 시각장애인 복지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후원)에 대해 일본 시각 장애인 협회에서 발표한 원고를 보완하여 다시 에세이 형식의 글로 작성한 것이다. 미술관 1, 2 층 전시실을 모두 사용하여 실내를 거의 완전한 어두움으로 만든 이 전시는 선천성 시각장애인 임원호(침술원 원장)와 후천성 시각장애인 임장순(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자문을 받았고, 시각장애인 3명을 포함하여 미술가 39인, 외국인 음향작곡가 1인이 이 어둠의 전시에 참가했다. 1층 전시실은 관객이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양한 유형의 작업들을 체험하게 하였고, 2층 전시실은 도슨트로 봉사한 시각장애인의 안내와 설명을 직접 들어가며 관객 4명이 한 개의 조가 되어 작품을 경험하게 하였다. 전시는 ‘눈멂’의 상태를 신체적 장애와, 그에 따른 정서적 심리적 한계에 제한하기 보다는 시각의 ‘상실’ – 의도적인 폐기, 박탈의 경험- 을 통해 시각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해 보자는 의도를 갖고 기획되었다. 전시를 만들게 된 계기는 국립맹학교에서 미술을 지도하는 한 조각가(김연)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여기서 시각의 일시적이고 단호한 의도적인 ‘박탈’은 맹학교의 어린 학생들에 대한 봉사와 학습 과정에서의 새로운 발견, 개인적 체험에 기초한 공감의 확장이라는 문제 지평을 훨씬 넓혀 근대주의적 ‘조망 체제’ (Scopic Regime) 하에 길들여진 미술에 대한 고정된 사고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것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그로 인해 이 전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기여하는 실용적 목적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II. 철학적 사유; 눈에서 벗어난(Abocular)

시각은 인간의 감각들 가운데 70퍼센트의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인식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봄(seeing)을 위한 기관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행동 전체에 큰 제약을 받게 된다. 르네상스의 위대함은 인간 인식에 있어 눈의 역할을 사회적, 문화적으로 분명히 했던 반면에, 모더니즘 이후는 눈과 뇌의 상호 작용이 억압해온 신체성의 회복이라는 이슈가 고개를 들었고, 포스트모더니즘 사고에서는 눈과 뇌의 상호작용이 낳은 인식의 폭력성과 문화 현상에 대한 강한 거부를 특징으로 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대상을 인식하고 인식한 것을 개념화하고, 개념화한 것을 믿게 되는 인간의 인식 과정이 필연적으로 그 자체가 매우 불완전하고 안정적이지도 못하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눈이 파악하는 것은 전체 중에 부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눈은 언제나 전체 가운데 부분을 떼어내 틀을 만들고 변형하여 그것이 마치 전체인 것 처럼 왜곡한다. 따라서 인식의 역사는 감옥의 역사이고 인간 사유의 역사는 틀짓기의 역사이다. 바라본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동사 ‘skepteon’에서 유래한 단어가 ‘회의주의’라는 의미의 scepticism’인 것 처럼 눈은 회의하는 것과 관계가 깊다. 의심이 하나의 시스템이 되기 이전에 회의는 눈과 관련이 있다. 고대 이집트들은 태양=신=눈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고 그리스인들은 그것에 인간의 보편 이성(로고스)을 덧붙혔다. 반면에 [성서]에서 바울은 “보는 것은 순간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말함으로써 시각을 부정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비육화된 절대적인 눈(신성한 빛=lux에 의존)이라는 종교적 이념 아래, 눈(감각적인 빛=lumen에 의존)이 모든 욕망의 근원(ocular desire)이라고 하여 시각 속에 잠재된 성애적인 것 – 예컨데 화가와 관객의 육체들 - 을 억압했다. 맥루한과 옹의 잘 알려진 주장에 따를 때, 중세의 몰락과 함께 인쇄술의 발명은 시각에 강력한 특권을 부여했고, 근대는 시각과 문자 중심주의 시대를 구가해 왔다. 근대 이후의 미술은 지식화 과정을 통해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를 근대적 조망 체제와 충분한 고려없이 동일시하고 20세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게슈탈트 심리학, R. 아른하임의 지각심리학 등 시각성 논리에 대한 많은 이론이 만들어졌고, 그 응용이 일반화되었다. 여기서 사람이 감각을 통해 얻는 정보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생각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데카르트의 ‘성찰’은 ‘명석하고도 판명한(clear and distinct)’ 관념을 마음 속에 품었을 때, 그 말은 성질상 시각적인 단어들이다. 마음이 순수한 기하학을 감지한다고 했을 때, 이 순수기하학은 우리가 생생한 경험적 시각을 기초짓고 있는 기하학과 연관된 것일 따름이다. 원근법에서와 같은 하나의 눈이 아니라 두 눈과 육체에 의해 실제 경험적 관찰을 강조한 20세기 현상학의 확장은 는 재클린 로즈가 시사했듯이, “우리의 과거 역사는 단일한 시공간이라고 하는 단단한 벽돌 같은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지만, 시각적인 하위문화들 조차 무차별하게 미술의 중심적인 시각 메카니즘 의 논리 속으로 편입되고, 배치되고, 재사용되어 왔다. 따라서 브레난의 말 처럼 근대 이후 인간은 ‘시각적 에고의 시대’를 살아 왔고 오늘의 세계는 그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테크놀로지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과잉 시각’의 문명 시대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최근 작고한 데리다는 파리에 있을 때 잠깐 시력을 잃었는데, 시력을 회복하고 나서 루브르에서 한 지인을 만났는데 그때 전시 제목이 <보지 못하는 곳에 열려있는 것>(The Open Where Not To See)이었다. 자신의 경험과 그 일을 바탕으로 [Memoires d’aveugle(맹인의 기억)]을 썼다. 이 책의 부제는 데리다가 ‘아보쿨라 가설’이라고 부른 수수께끼 같은 명제인“The Self-Portrait and Other Ruins”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아보쿨라(abocular)’ = 라틴어 ab (-로부터, - 넘어) + oculis (눈) 을 뜻하며 이것은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눈 안에서 발산하는(emanating from within the eye)
둘째, 눈에서 떨어져 있거나 분리된, 눈에서 먼( away or separate, distant or discrete from the eye)
그는 우리가 눈을 깜박이는 행위를 시각이 숨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절없이 운동, 맥박, 인식이 존재할 수 없다. 우리의 지각은 시각(sight)과 비시각(insight) 사이, 기억과 현재 사이의 교차점이다. 라틴어 아보쿨라(abocular)는 불어인 아보글(aveugle/눈멂)의 어원이다. 호머, 니체, 조이스, 밀튼, 보르헤스는 모두가 시각 장애 문학의 위대한 전통에 깊이 연관된 인물들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실제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가설수록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하이젠버그가 증명했듯이) 관찰 행위는 필연적으로 방해를 포함한다. 우리는 비록 관찰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스스로 관찰하는 능력을 가졌어도(맥루한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방해자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연에서 외톨이”이다. 우리는 순수한 인식(cognition)이라는 천국에서 영원히 추방된 존재이다. 데리다는 말년에 시각을 상실한 보르헤스(Borges)가 자신을 또 다른 시각장애 작가인 밀튼(Milton)에 빗대어 설명한 것을 인용했다. “밀튼은 자유를 위해 스스로 시각을 버렸다.” 세상을 볼 수 없는 상처는 선택 받았다는 표시다. 이것은 밤에서, 혹은 밤 자체라는 선택 받은 운명이 반드시 알아야 할 표지이다. 시각장애 작가들의 위대한 전통에 부응해 보르헤스는 “우주는 거대한 도서관이었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틀림없이 도서관 모양일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그는 유전병으로 시력을 잃어갔는데, 우주라는 거대한 도서관 안에서 책에 둘러싸인 시각장애자로서의 보르헤스 자신의 모습이야말로 보르헤스의 전형적인 초상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거울을 들었고, 기억과 자기-초상화를 찬양했다


III. 시지각과 미술

우리는 일반적으로 미술에서 혹은 디자인에서 어떤 형태를 가장 먼저 생각하거나 그림이나 이미지를 미술가의 시지각이 기록된 것으로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노먼 브라이슨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말한다. (노먼 브라이슨 ‘기호학과 시각의 해석’ / 이영철 편, [21세기 문화 미리보기] p. 99) 더욱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인간의 시지각 능력을 무한 확장시킴으로써 ‘문자의 위기’ 혹은 문학의 위기(사유의 위기)를 낳게 되는 스펙터클 이미지의 시대가 되었다는 기 뒤보르류의 탄식어린 진단, 나아가 도처에 편재하는 감시카메라의 존재로 인한 통제사회의 국면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제기된다. (미셀 푸코, 질 들뢰즈) 근대 사회의 인식과 정서와 생활 양식 모두를 결정짓는 지각 방식으로서의 시각성과 모더니티의 관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꾸준히 연구를 진척시켜 오고 있다. (마틴 제이, 조나단 크레이, 디디에 위베르망, 로잘린 크라우스 등) 미술에 있어 지각의 문제에 대해 레이놀즈는 [담론]에서 말하기를, 미술가는 단순한 지각을 넘어 추상 과정을 통하여 지각으로부터 그 중심적인 형태들을 추출하여 그려야 한다고 했다. 장르들 간의 위계 속에서 그림은 지각의 개별성을 버리고 평균화, 추상화된 형태들의 이상성을 선호하므로 자랑스런 지위를 확보하게 된다. 다시말해 지각의 폐기나 지각의 ‘껍질벗기기’가 고차원적인 미술의 전제 조건이 된 것이다. 이와 달리 존 러스킨은 [현대 화가들]에서 그림을 일관되게 지각으로부터 접근하고 있다. 터너의 그림들은 세계에 대한 터너의 지각 방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터너가 자신의 풍경 속에서 그린 다양한 다리 그림들은 터너가 이전에 본 경험이 있는 다리들을 환기시키는 점에서 지각의 심리적인 연쇄 과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일대 미술사 교수인 마이클 포드로는 [비판적 미술사가들]이란 저서에서, 미술의 형식을 지각 기관과 과학적으로 연관시켜 미술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 기초를 형성한 힐데브란트의 [조형예술에서의 형식의 문제]를 비중있게 다루었다. 이는 근대미술에 대한 인식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개념쌍인, 시각적, 촉각적 그리고 그 배후에 잠복해 있다고 여겨지는 컨텍스트(의미)의 문제 등, 시지각의 프레임과 심리학을 연결시켜 오늘의 미술사에 대한 일반적 견해, 공통된 인식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술가는 지각하며, 관객은 되지각한다. 여기서 그들을 통합시키는 형식은 바로 미술가의 시각으로부터 관객의 응시로 이어지는 소통의 노선이다. 이미지는 지각으로 가득차 있는 이미지 생산자의 위치로부터 지각에 대해 욕망하는 다른 위치(즉 관객)으로 통하는 전달 경로 혹은 흐름으로 생각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곰브리히는 인간의 시지각과 심리학의 관계를 ‘making’과 ‘matching’에 기초한 시지각 개념의 도식(scheme) 형성 과정으로 설명했다. 지각주의는 근대주의 미술사 연구 모델의 절정을 이루게 되며, 이는 20세기 인지심리학에 의해 강화된다. 미술을 이미지 제작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곰브리히의 사고는 이미지의 창안과 전개에 도식(가설), 관찰, 시험(testing) 같은 개념들을 반복적으로 적용한다. 이는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고등 미술 교육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예술의 교육의 근간을 이뤄온 중심 사고였다. 대학 미술 교육의 뿌리는 판오프스키의 미술의 지각 형식과 결부된 의미론, 곰브리히의 형태 지각 심리학에 있다. 이들의 탐구는 미술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지성의 판단과 감각을 구성하는 교조적인 원리로 작동하게 된다. 지각주의자의 설명에서는 사회적 삶의 장 안에서의 권력은 언제든 이 시각 이미지의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이론화되고 방어된다. 대학, 미술관은 이미지 생산의 순수한 지각의 실험실로서 지각은 순수하고 권력은 순수하지 않은 것이라는 단순 도식을 강조하는 것이다. 반면에 사회적 정치적 힘으로서의 권력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자신의 목표에 따라 이 소통 경로 및 그 지각적 전달의 대상, 즉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경로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부, 기업, 개인, 집단 등이 미술가로 하여금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긍정적 차원에서 지원해 준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미술 생산을 특수한 이데올로기에 전유시킴으로써 부정적인 속성을 야기시킬 수 있다. 두가지 경우에 있어 권력의 위치는 미술을 생산하거나 향유하는 관객의 내적인 지각 활동의 ‘바깥’에 머물고 있다. 부르뒤에의 언급 처럼 예술 및 문화 활동은 그 상징적 특성으로 인해 정치 권력과 다른 속성을 갖지만 권력의 장(field)과 상관없이 작동될 수 없다는 점에서 문화 권력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보다 적절하다. 문화 권력은 다양한 미술가로부터 관객에게 통하는 지각의 경로를 장악하고 조정하고 배타적으로 이용하여 왜곡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형태 지각론의 입장은 권력을 항상 지각에 개입해 들어오는 외부로 설정함으로써 권력의 본질은 늘 외재성 속에서만 드러난다. 따라서 이미지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탐구 경향은 작업 내용에서 벗어나 미술 제도들로 옮겨 진다. 시각적이건 촉각적이건 지각은 사회적 구성체와 구분되어 있는 시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권력에 대해서는 그것이 불가항력적이고 한벌의 갑옷 투구 같은 어떤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전시에 소개된 작가들의 절반은 큐레이터의 의지와 상관없이 서울 조각 그룹의 멤버들로서 지각주의 전통에 충실한 조각가들이었다. 이들의 작품들은 대리석, 청동, 철재, 나무 등 전통적인 재료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추상, 구상의 형태 조각들이다. 지각주의가 도달하는 것은 사회적 관심사로부터 분리된 미술이다. 그 해결책은 미술 활동을 그 자체 기호 생산 활동, 즉 사회적 구성체 내부에서 담론 생산 활동으로 전환시킬 필요성이다. 기호 활동을 의미(기의)와 의미 운반체(기표)로 구분하는 소쉬르 류의 고전 모델에서는 전시 기획자가 중요하지 않다. 누가 전시를 만들건 그것이 어디선 보여지건 상관없이 작품의 의미는 그대로 불변이고, 비평가는 그것은 묘사하기만 하면 된다. 작품은 작가의 의도대로 동일하게 전시되어야 한다. 하지만 후기 기호학의 입장에서 이해하자면 미술은 데리다류의 ‘산종’에 의해 지배받는 구조들이다. 그것들은 그것이 생성된 컨텍스트와는 다른 컨텍스트들 가운데로 들어간다. 장소를 달리하면서 이뤄지는 전시는 가장 대표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 최초의 컨텍스트에서 조차도 기호는 해석자에 의해 의미를 획득한다. 작품이 쓰임새를 위해 혹은 새롭게 그 목적으로 위해 특정 장소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호 작용이 아직은 부실한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작품이 다른 장소에서 보여지는 것은 지극히 공공연한 일이면서 새로운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 전시는 그 자체가 담론 생산 기계이다. 전시를 통해 작품(들)의 맥락적 재구성이 없다면, 그때의 작가의 작품은 노먼 브라이슨의 말 처럼 “반쪽 기호도 되지 못한다.” 미술에 관한 전시 기획, 혹은 글쓰기는 이중의 명령, 즉 기록적이면서 해석학적인 요구를 해온다. 미술은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데리다적 의미에서 ‘산종’에 부합하는 영역이다. 그것은 다른 컨텍스트로 자주 이동할 수 밖에 없다. 심지어 그 최초의 컨텍스트에서 조차 기호는 해석자에 의해 의미를 획득한다는 점에서 기원에서 벗어나 있다. 작품은 그것이 만들어진 장소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에서 전시가 될 때, 작품의 의미는 그것이 당도한 곳으로부터 기호에 새롭게 ‘투사’된다. 기호들의 체계로서의 담론, 미술 작품, 전시 등은 물질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해 있는 것들 사이에 던져지거나 그들 안에 무언가를 투사하는 ‘수행성(performity)’을 본질적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업과 노동의 산물로서 사회적 권력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안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러시아 속담에 “삶이란 탁 트인 벌판을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빈 캔버스, 빈 장소, 빈 전시 공간 같은 것은 단지 물리적인 양태일 뿐, 사회적 기호와 담론 생산의 관점에서는 그것은 비어있는 것도 아니고 트인 벌판 같은 것도 아니다.



IV. 밤에의 초대, 전의 개념 및 구성

선천성 시각 장애인이 있다. 그는 어른이 되었고 손으로 만져서 직육면체와 구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눈을 뜬다면, 즉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둘을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보고 어느 것이 직육면체이고 어느 것이 구인지 알 수 있을까?
(존 로크, 인간 오성에 대한 한 연구)

(1) 현대적 삶과 문화의 장애는 시각의 헤게모니에 있다. TV, 비디오, 컴퓨터, 인공위성, 광고, 대중매체 등의 발달로 눈에 보이는 것은 도처에서 흘러넘친다. 우리의 생각이나 다른 감각들은 너무 많이 보거나 보이는 것들에 종속되며, 이제 누구나 일상적으로 감시 카메라에 노출되어 산다. 작가와 일반인들 모두가 미술을 시각적 형태와 의미를 구하는 예술 활동이라 여겨온 지식과 통념은 시각장애인들을 미술 바깥으로 제외시켰는데, 이것은 모든 것을 ‘보는 것’ 중심으로 조직해온 근대적 삶이 안고 있는 특징의 일부이다. 이런 정황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이 보거나 보이는 것을 통해 오히려 우리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게 되고 결국 감각하지 못하게 되는 시각의 ‘역반응’ 현상이 시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 물질 문명은 일상에서 밤을 추방해 버렸다. 한국에는 실제로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 편의점이 많다. 거리는 가게의 광고판, 높은 빌딩의 전광판으로 휘황찬란하며 집에 들어오면 밤에는 실내등과 TV가 거의 항상 켜 있다. 현대인들은 어둠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고, 과거는 대개의 경우 아주 먼 기억 처럼 되고 만다. 근래들어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품들의 전시가 많아지면서 전시관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 그것은 일종의 불랙 박스이다 - , 관객들은 빛을 발하는 영상 화면을 찾아다니는 곤충이나 벌레들 처럼 어두운 전시관을 이리 저리 배회한다. 2003년 프랑스의 리용비엔날레에서 펠릭스 곤잘레스 포에스터라는 작가는 어둠의 전시를 하였지만 완전한 어둠은 아니다. 또한 제임스 터렐은 어둠을 이용하여 표면적인 강도의 빛공간을 만들어낸다. 시지각을 신체적 장으로 확대한 그의 작품은 모든 감각을 시지각의 강력함으로 환원시키는 점에서 모더니즘 미학의 정점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3) 완벽한 어둠의 전시관이라는 것은 미술 자체의 존립 근거를 되묻는 동시에 인간의 몸과 심리적 상태, 나아가 영혼의 문제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걸어가는 아이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정하기 어렵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발을 뗄 때마다 조심스러워진다. 소리, 촉각, 냄새, 온도, 크기 등에 매우 민감해지며, 아주 작은 빛에도 눈은 예민해진다. 다른 한편에서 전시에 초대된 밤에 대해 우리의 이성이 어두워진 상태에 대한 은유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는 백주에도 밤이 존재한다고 여기게 되며, 빛이 가득찬 공간에서 조차 어둠의 지배를 믿는다. 혼미한 이성은 태양을 향해 눈을 뜨고 있으나 보는 것은 ‘무’이다. 즉 보지 않는 것이다. 이때 각자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공통된 1차적인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 혹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물음이다. 어둠 속에서는 장소를 지칭하는 ‘여기’ ‘저기’ ‘가운데’ ‘뒤에’ ‘앞에’ 라는 용어들이 부정확하고 모호해진다. 따라서 그것은 장소에 대한 물음이라기 보다 위험 속에서 각자 자신이 나가야 할 방향이나 출구(틈)에 대한 ‘처방(predicament)’의 물음이다. 따라서 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어디 계세요? 라는 질문은 장소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과 출구을 찾으려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이다. 또 매일 같이 집 안이나 집 밖에서, 멈춰있거나 이동 중에 전화를 걸어 '거기 어디야?' 라고 서로 묻는 것은 관계를 확인하려는 심리적 상태의 거의 습관적 질문이다. 문학 작품에 대한 단테의 전통적인 해석학을 전시에 적용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4가지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A. 각자의 물리적인 위치에 대한 물음
B. 각자의 육체-심리적 상태에 대한 물음
C. 각자의 사회적 조건에 대한 물음
D.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다.

이 질문이 발생하는 공간은 ‘지금 여기’라는 현실 공간이다. 미술은 단지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라 행동의 과정이고, 생활의 구체적인 일부이다. 이 전시는 어떤 설정과 플랜을 외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플랜이 미리 어떤 답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것을 포함하는 플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4. 전시의 특징

1) 미술관 공간을 모두 완전 어둡게 ‘블랙 박스’로 만들어 정안인들이 시각장애 체험을 하도록 유발한다. 예외적으로
단 한개의 빛 작업이 있다. 밀폐된 공간 작업으로 사각형의 밀폐된 방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 문을 닫으면, 센서의 작동으로 수십개의 형광등이 동시에 켜져서 작은 방이 엄청나게 밝아진다.
2) 전시장 입구와 출구를 각각 10미터의 좁고 긴 통로로 만들어 사람의 나고 죽음을 상징화했다.
3)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들(촉각, 청각, 후각, 미각)을 활용하며 전시 관람자가 자신의 생각, 감각, 상상을 최대한 동원하게 만든다. 전통 매체든 영상 매체든 어떤 작품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4) 시각장애자들을 위하여 작가와 작품 설명 점자판이 공간에 설치된 손잡이용 봉에 부착되어 있다.
5) 정안인은 점자판을 읽지 못하므로 작가명, 작품명을 시각장애인 도슨트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이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2개의 전시장(각각 120평 규모)을 구분하여 하나는 ‘시각장애인 도슨트들이 관람객들을 안내했고 다른 방은 관람객 스스로가 이동하며 감상하게 하였다.
6) 카탈로그는 발행하지 않았고, 작품의 시각 이미지는 신문이나 잡지에 공개되지 않았다. 미술 잡지에 리뷰가 실리는 경우에도 시각이미지는 게재하지 않고 단지 검정 박스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KBS 위성 TV에서 취재를 하려 했으나 빛을 차단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므로 방영이 불가능했다.
7) 이 전시를 위하여 조각가들과 1차례 워크숍을 가진 바 있고, 사전에 여러 명의 시각장애인들과 만나서 대화, 인터뷰를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일시적인 만남이긴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들과 정안인 사이에 구분이 없어지는 점에 고무되기도 했다. 대학생 도슨트들은 어둠 속에서 정안이들을 안내하며 전시의 의미, 경과, 그리고 어둠 속에 배치된 작품들(오브제, 과정적, 참여적 성격의 다양한 복합 미술)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을 자신이 한다는 사실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어둠 속에서 대화가 이뤄지는 상황은 스태프들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5. 작품 사례들

1) 이 전시는 작가, 작품의 수준, 우열, 지명도와 상관없는 기존의 학습된 미술 정보와 지식을 넘어선 공공적 성격을 지향한다. 어둠 속에서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미술 감상, 미술의 가치 기준은 통용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라도 취지에 공감한다면 참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어둠 속에서 (미술) 작품이 독특한 방식으로 기능하고 미적으로 경험되고 선호도가 평가된다는 것은 새로운 관심을 끌기도 한다.
2) 음악과 음향은 단순 효과음이 아니라 작곡된 작품 자체 혹은 작품의 일부로서의 편집된 사운드들이다. 알프레드 하르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활동해온 독일의 전문적인 실험 음악 작곡가로 이번 전시의 취지에 공감하여 특별 참여를 했다.
3) 작품들의 사례들:
전시장 입구에는 철로 만들어진 무거운 신발을 신고 걸으며 사운드를 듣게 하는 홍명섭의 작업이 전시의 출발을 알려준다.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브뤼겔의 작품에서 인간의 발은 가장 느리고 둔탁하고 조심스럽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문지방에서 신을 끄는 소리가 들려온다. 출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통로의 양쪽 벽에는 수백개의 총알이 뚫고 지나간 철판들이 걸려 있다. 통로 벽 안쪽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간간히 전쟁 상황의 음향이 들려오고 관객들은 날카로운 모서리들이 안전하게 처리된 총구들을 만지며 통로를 지나가게 된다. 벽을 따라 통로를 빠져나오면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 지점에서 관객은 로프를 잡고 이동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마치 탯줄과도 같은 부드럽고 탄력적인 고무 호스의 질감을 느끼며 관객은 미술관 내부를 아주 조심스레 이동해 간다. 김재광은 관객이 지나가며 손이 닿는 부분에 점자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점자가 정보적인 효과를 갖고 이용되는 것은 동선을 따라 일종의 이정표 처럼 늘어 배치된 전통적인 근대 조각 작품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간단한 설명을 제공해 주는 데 적절히 활용되었다. 좁은 방 안에서 소리로만 감상하는 영화 작품이 있다. 서보형의 작품으로 시각장애인 남성과 정안인 여성 간의 로맨스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승영은 휘어진 15미터 길이의 통로를 만들어 새벽 공기의 냄새를 느끼게 하는 천연향을 사용하였다. 이순주는 태어나서 자신의 얼굴, 신체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선천성 시각장애자에게 주먹만한 크기의 점토를 주고 손과 발을 만들도록 한 후 그것을 굳힌 뒤에 테이블 위에 A4 용지들과 함께 올려 놓았다. 관객들은 그의 손과 발 조각 오브제를 어둠 속에서 만지면서 백지에 드로잉한 이미지를 전시장 바깥으로 가지고 나와 다른 관객들이 그린 것과 대조해 보는 작업이었다. 윤영석은 후각을 자극하는 나프탈렌으로 인간의 뇌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조금씩 줄어들다 결국 없어지고 만다. 서정국은 벽면의 양쪽에 구멍을 뚫어 벽을 더듬으며 지나가는 관객들끼리 우연히 손이 부딪히며 놀라게 되는 작업을 했다. 선천성 시각 장애인 임원호는 전시 기간 내내 어둠 속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방문객에게 음료를 제공하며 대화를 했다. 마지막 날에는 스스로 전통 악기인 대금을 불어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후천성 시각장애인 임장순은 어둠 속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강의를 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 장유경은 어둠 속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고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결어;

이 전시에는 유일하게 아주 밝은 하나의 작은 방이 칠흑 같이 어두운 전시 공간에 있었다. 전적인 가시성의 체제를 시사하는 이 방의 존재는 어둠 속의 빛이면서 빛 가운데에서 볼 수 없음의 어떤 상태를 나타낸다. 아보쿨라 가설은 하나의 시선을 가진 눈, 단일한 전제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지 않으며, 두개의 시선, 가설 과 가설, 혹은 가설과 가설에 대한 패로디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에게 있어 아보쿨라 가설은 최소한 두개의 가설를 지칭하며. 하나의 책 안에 한명의 데리다가 아니라 무수한 데리다가 있고, 하나의 전시 안에 많은 기획자가 있다. 눈멂의 상태, 그것은 단순히 내적이라서 볼 수 없는 것, 초월적이라서 볼 수 없는 것, 사적이라서 볼 수 없는 것, 영상에 의해 분쇄가 되어 볼 수 없는 것 등과 다른 어떤 것이다. 펠릭스 가타리의 생애 마지막 심포지움에서 페테르 파르 펠바트는 볼 수 없는 것의 ‘생태학’을 강조했다. 미학(예술)과 정치학과 윤리학이 통합된 생태학적 관점을 통과하는 점은 바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통찰이라고 한다. 이때, 볼 수 없는 것은 은폐된 힘과도 다르며 비밀과 무관하고, 의사든 환자든 특별한 사람 밖에 가까이 하지 않는 신비스런 어떤 것과도 다르다. 볼 수 없는 것은 그러면서도 사물을 포함하고, 사물로 침투하고, 그것의 안감으로 되어 두께나 무거움, 가벼움을 받아들이고 사물에 그 빛을, 기적을, 공상을, 그 참신성, 추악함, 타성을 부여하는 피막층과 같다. 말을 바꾸자면 그것은 강렬한 피막층으로 영상과 관계를 하지만 영상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며, 언어와 관계하지만 그렇다고 언어에서 생겨나지는 않는 무엇이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볼 때 그(그녀)의 머리 위에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죽음 그 자체, 태고 이래 모든 살아있는 것, 죽는 것을 그 머리에서 지켜온 죽음이라는 사건이다. 본질적인 것은 볼 수 없는 것의 영역에서 일어나며 볼 수 없는 것이 찾는 것은 어찌보면 대개는 볼 수 없는 형태로 확산되며, 비인격적(non-personal) 비인간적 형태를 띠고 있지만, 늘 존재해 왔고 그것으로부터 무엇보다 계속 존재할 하나의 종족, 시간을 벗어난 사람들의 종족이다. 어두운 곳을 어떤 사나이가 걷고 있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장님이 등불을 들고 걸어왔다. 사나이는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은 보아하니 장님인 듯한데 어째서 등불이 필요합니까?” 그러자 장님이 대답했다. “내가 이것을 들고 걸으면 내가 걷고 있는 것을 눈 뜬 사람이 보고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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