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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주비엔날레를 위하여

이영철


‘광주비엔날레’란 단어만 나오면 이제 누구나 ‘신정아’를 떠올린다. 심지어 외국인 전시기획자들도 ‘신’이란 성만큼은 기억할 정도다. 젊은 나이에 권력(청와대)-교육(동국대)-종교(불교계)-예술(광주비엔날레)-기업을 넘나들며 세상을 어지럽힌 정신질환적 범죄 행각은 그녀 자신의 의도와 별개로 부패한 사회·인간·조직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이처럼 개인이 공공부문을 희생시켜 사리사욕을 채우고 불법 수단으로 이권을 획득하는 것은 아주 부패한 행위다. 특히 국제비엔날레와 같이 고도의 지적·경험적 전문성을 요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절대 이래선 안 된다. 매우 긴장된 도덕성이 있어야 한다. 혹여 외압이 있었다 해도 그것을 과감히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는 이제까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숱한 지적과 쓴소리에 눈과 귀를 닫았다. 신정아 감독 선임 과정은 미술계 전문가의 상식으로 보기에 너무도 명백한 사기조작극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감독 선정 배후의 ‘몸통’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했다. 미술계는 사회에서 별로 끗발이 없다. 그러므로 쓴소리를 하거나 바른말을 한 사람이 불편해지고, 거꾸로 명예훼손을 당하는 사태까지 가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 사건이 언론사의 사회부로 넘어가면서, 즉 미술계 문제에서 정치·사회적 문제로 비화하면서 ‘몸통’을 밝히려는 의지 자체가 실종되고 말았다. 광주비엔날레는 창립 이후 높은 기준을 표방하는 고양된 지적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게 이권을 둘러싼 은밀한 거래와 만연된 위선, 공모와 협잡으로 얼룩졌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신정아 사건은 이런 것들이 곪아터져 나온 사례일 뿐이다. 전문성을 키우며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원칙과 상호 신뢰와 대안을 찾기보다는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틀 안에서 외국인과 내국인의 전문성은 점차 이권 거래의 일시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갔다.

한때 우리가 일본인 전체를 싸잡아 ‘경제 동물’이라 부르며 정신적·도덕적으로 타락한 나라로 비난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자신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아니 그 이상이다. 신정아 회고록 출간을 위해 출판사들이 다투어 경쟁을 한다는 말을 들으며 할 말을 잃는다. 광주비엔날레가 신정아 사건을 통해 광고비 한 푼 쓰지 않고 전 국민에게 홍보한 것을 축하라도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비엔날레는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의 아픔을 딛고, 드러난 모든 병리현상을 치유하고 광주비엔날레는 새로 태어나야 한다.

도덕적 정당성이 무너진, 사실상 텅 빈 광주비엔날레라는 집에서 지금 외국인 예술감독(나이지리아 출신의 오쿠이 엔웨저)이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한국 미술인들은 모두가 바보가 돼 한국·아시아에 그동안 전혀 관심도, 정보도 없던 그가 벌이는 연극을 망연자실 지켜봐야 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한때 “예술은 사기”라 했지만 이때의 사기란 말은 도덕적·법적 사기 행각을 고무시킨 말이 결코 아니었다. 마치 사기꾼처럼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존의 관행과 정형의 틀을 과감히 깨부수라는 말이었다. 실제 그는 자신의 서명이 누군가에 의해 도용된 사기를 확인하고 매우 흥분했다.

가장 먼저 무능과 부패의 온상이 되고만 이사회를 폐지해야 한다. 그 대신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제위원회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도덕적인 사기와 부패를 근절시킬 수 있는 엄격한 도덕 조항도 신설해야 한다. 아무리 온당한 권위가 위협받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원칙을 따르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는 한 부패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160만 관객 동원부터 시작된 ‘달콤한 추억’과는 이제 결별해야 한다. ‘한국형’ 비엔날레를 만들어 냈다는 그간의 후한 평가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 뼈를 깎는 아픔과 대수술이 있어야 광주비엔날레가 한국,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비엔날레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

- 중앙일보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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