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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터-넷과 유유상종

이영철

36년간 이웃 나라 지배를 받고, 3년 동안 큰 전쟁을 겪고 이어 장기군사독재 속에서 난관을 빠져나온 지금, 한국민은 지구화라는 거센 파도를 타야 하는 기로에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파도를 탈 것인지 말 것이냐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탈 것이냐의 문제만 있다. 누가 이 파도타기를 하게 만들었느냐고 비난하고 맞서는 것은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 될 수 없다.<파도의 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과 파도를 잘 타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자주 혼동된다. 이는 글 잘 쓰는 비평가가 미술 작품을 잘 만드는 것과 다른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큐레이팅과 미술비평은 전혀 별개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화의 거대한 파도의 일부가 되어 파도의 높이, 방향, 속도를 측정하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할 수 없는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론과 실천은 정지점에서는 둘일 수 있지만 통과점에서는 오직 하나다. 통과점에서는 무수한 변수와 잦은 변경이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이론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점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다수(一 卽 多, 多 卽 一)가 되는 마술적 공식을 파악하는 능력은 돌파와 해결을 통한 현실 획득의 문제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현실이라는 단어를 말하지만 통과 위치와 상황 그리고 통과자의 의식과 태도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서로 터놓고 의견을 교환하는 일에는 게으르다. 게으름의 이면에는 배고픔, 자리 상실의 두려움 과 함께 유유상종의 타성, 권력 의지가 깃들어 있다. 파도가 땅을 뒤덮어도 아직 나는 땅을 밟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본주의자들이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파도에 실제로 저항하는 실천적 근본주의자는 아주 드물다. 유일하게 1980년대 민중운동이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파도에 몸을 싣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땅의 논리인 근본주의가 아니며 그렇다고 변화를 풍경처럼 바라보며 말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과 해결의 문제이다. 이는 과거 국제주의 모더니즘 시대에서든 그리고 현재 지구화의 포스트모던 시대에서든 통과점과 상황에 대한 논의, 즉 변화를 측정하고 실험하는 사람이 부족했고 현재도 아쉽다는 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종종 한국에는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식의 곡해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한국이라는 지형적, 경험적, 관념적 울타리, 유유상종이란 습성에 자신이 길들여져 있을 때, 이웃이 무엇을 하는지, 입장과 시각이다른 친구가 무엇을 하는지, 누가 파도를 측정하거나 실험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단지 세간에 알려진 이름에 따라 판단하는 습성 때문에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은 아닌지 물어볼 일이다.<광주비엔날레는 지구화의 파고가 치솟던 1990년대 중반에 생겼다. 그후 국내 미술인들의 논의는 자신이 타고 있는 물결에 대한 토픽과 첨점cutting edge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물결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그것을 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정체성이 싫다 좋다의 어린 아이 같은 논의에 빠져 있었다. 한국은 인터넷 사용 1위의 국가라고 한다. 인터넷은 서로간에 관계(그물)를 만든다는 의미로서의 inter-net이다. 그것은 1대 1의 대응 관계가 아니라 1대 다수의 동시다발적 관계를 말한다. 한국 미술에서의 타자의 부재와 인터넷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지난달 28일, 4회 광주비엔날레를 기념하는 오픈 파티에는 전시 참가자 외에 한국미술계를 움직이는 기성 작가들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는 잘 살든 못살든 외국의 어떤 비엔날레를 가도 볼 수 없는 진기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국제비엔날레가 아니라 서울의 여느 미술관 기획전과 뭣이 다르겠는가. 3회에서도 똑같았고 2회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광주비엔날레를 하는 것일까. 누가 국제화를 강요한 것일까. '어색한 자리, 어색한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는다.' 그것이 국제비엔날레를 3개나 열어놓은 한국미술의 여전히 변치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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