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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울시립미술관은 정말로 개관했는가?

하계훈

30여년간 서울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어왔던 곳이며 조선시대의 경희궁터였던 자리에 1988년 8월에 문을 연 서울시립미술관은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모습으로 10년을 넘게 운영되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관장도 없었고 큐레이터도 없었으며 미술관(이라고 불리는 기관)의 성격과 비젼을 제시해줄 소장품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예전의 학교 교실창문을 막고 조명을 설치한 다음 약간의 변형을 더하여 이것이 전시시설을 갖춘 미술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설립된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의 부서별 소관업무표에 의하면 문화관광국 문화과에서 운영 지도ㆍ감독 및 등록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며 운영되어 왔다. 이러한 출발에는 행정관료들이나 행정 공무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관한 문화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가시적 성과, 계량적 수치 등에 익숙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건물과 행정 중심으로 적당히 돌아가는 체제가 마련되고 이를 잘 지도, 감독하면 대부분의 일이 잘 풀려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에 옛 대법원 건물 자리에 번듯한(?) 건물을 지어 이사해 놓고 개막식 행사까지 치루어 놓았으니 이제 그들의 기준으로 보면 서울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은 완성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지난 5월 공식적으로 이전 개관한 미술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염려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건물의 규모에 맞는 소장품이 있는지, 소장품과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와 전시 활동을 할 수 있는 큐레이터들이 제대로 확보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정 절차나 전문 영역에 관한 적절한 의사결정 방식 등이 제대로 도입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외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외국이라기보다는 미술관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 선배역할을 했던 기관으로서의 선진국 미술관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외국의 미술관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경우 전문가와 협조적인 재력가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중요한 사항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정된 사항의 세부적인 집행은 관장에게 일임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경우 운영자문위원회라는 기구를 두고 있지만 자문과 이사회의 결정은 다르며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형식적인 자문이라면 이 기구는 눈속임일 뿐이다. 그리고 관장이 행정적 간섭이나 견제 없이 소신껏 일을 집행하고 거기에 따르는 결과에 책임을 지면 된다. 다음으로 큐레이터에 대해서 말하자면 마치 축구시합은 축구를 잘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처럼 미술관은 미술을 잘 아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축구장을 잘 짓거나 체육행정 사무직원들이 앞에 나선다고 우승하는 것이 아니며, 선수들이 제대로 연습하고 경기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이 승리의 조건인 것처럼 큐레이터가 마음껏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할 수 있도록 행정적으로 뒷받침 하는 것이 미술관의 성공의 첫째 조건인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제대로 자격을 갖춘 유능한 큐레이터의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마지막으로 소장품에 관해서 말하자면 소장품을 제대로 갖추어 놓지 않고 출발하는 미술관은 마치 제대로 된 운동복과 축구공이나 축구화 없이 선수들에게 시합을 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지 않고 섣부른 기증이나 기부에만 의존한다면 몸에 맞지 않는 옷과 신발, 그리고 질나쁜 축구공을 선수들에게 제공하는 격일 수도 있다.<지난번 학예직 시험에서 미술이론 전공자들이 제외되어 논란을 일으켰고, 곧 새로 채용된 큐레이터 4명이 일을 시작한다. 지난 5월 서울시립미술관은 새 건물로 이전 개관했다. 그러나 그것은 행정적인 개관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제부터 개관을 준비하는 셈인 것이다. 앞에서 축구에 비유한 것처럼 관중들은 축구장 시설을 보러 경기장에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진행 요원과 행정직원들이 나서서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간섭하려 든다면 관중들은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꼭 외국처럼이라기 보다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미술관 운영의 합리화를 기대하고 빠른 시일 안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진정으로 개관되기를 바라면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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