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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남 이경성(石南 李慶成)선생님 타계를 애도하며

김영순


-미술인의 후광을 포착하는 韓ㆍ日저널의 거리 -





한 해를 마감하는 부산한 시기에 불과 일주일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한ㆍ일미술계는 각기 현대미술발전과 미술의 사회화에 기여를 한 거목이 스러지는 부음을 받아 애도하고 있다. 석남 이경성(石南 李慶成, 1919-2009.11.26)선생님과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 1930-2009.12.2.)화백의 타계소식이 그것이다.

석남선생님의 미술계와 사회에 대한 공적 기여는 앞의 오광수선생님의 추도사에서 열거한 대로이며, 고인의 공헌에 대한 개인적 기억들은 아트가이드 일 년 분에 연재를 하고도 모자랄 것이다. 히라야마화백은 동경예대 일본화과교수를 역임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비롯한 문화재보존과 국제교류에 진력하여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부터 추도사가 당도할 만큼 폭넓은 활동가였다. 2001년 예술의 전당에서 김흥수 화백과 2인전을 개최하고, 월드컵이 개최되던 2002년 제5회 한일합동운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여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화가이다. 구체적 이력은 본 논지에서 벗어나 생략한다.

부음을 받은 두 나라 미술계 애도의 소리는 다를 리 없다. 더구나 우리의 다정다감한 특질 상, 애끓는 추모의 정은 저들 보다 뒤질 리가 없다. 하지만, 대중미디어의 보도반응은 천양지차이다. 물론 취재대상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대중인지도의 차이, 또 석남선생님께서 마지막을 미국으로 이민 간 가족들 품에서 91세의 천수를 다하시고 조용히 타계하신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기사의 규모 차이는 인정된다. 그렇다 해도 히라야마 이쿠오 화백의 조전은 12월3일 조간 일본의 대중매체가 일제히 상당량의 지면에 심도있게 발신하고 텔레비전 뉴스로 반복하여 타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의 경우(사진) 제1면의 절반을 박스기사와 함께 할애하고, 문화와 사회면 각1페이지 전면, 즉 무려 3페이지에 걸쳐 하토야마수상의 애도사와 함께, 실크로드테마작품과 원폭투하에 대한 진혼과 재생을 그린 히로시마생변도(広島生變圖)에 대한 분석, 그의 국내외 교육과 전시, 문화재 보호활동. 중국, 아프카니스탄, 티벳, 북한 등과의 국제외교와 일본문화 발신의 공적을 여러 장의 칼라사진과 함께 게재해 독자의 눈길을 끌었다. 2주가 지난 지금도 반복되어 그의 애도행사가 타전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대중매체들의 석남선생님에 관한 기사는 어떠한가? 수많은 이력은 차치하고라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고 전문 큐레이터제도의 도입과 정착이라는 현저한 족적을 남겼다는 공인에도 불구하고, 국내유족 없이 돌아온 유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빈소설치를 거부당해 인천시립박물관에 빈소가 마련되었다. 이 사실이야말로 기사거리가 아닌가? 이에 미술인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절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그나마 빈소가 마련된 인천지역신문들과 이례적으로 한국일보가 문화면 애도기사를 게재했다. 다행이라해야 할까?

보도 방식 개선과 업그레이드 요망

바로 그 전날 일본 문화청이 주최한 오사카문화 포럼에 참여한 필자는 일본측 전문가들이 한국의 문화예산이 일본 그것의 다섯 배라며 일본 문화청장을 압박하는 모습을 목도했다. 그러나 대중매체로부터 우상이 된 히라야마화백의 추모기사와 생전의 업적이 일반 경력사항으로 남아버린 석남선생님의 부고기사 사이에서 우리사회의 미술 문화인식의 현주소를 확인해야 했다. 돌아보니 이것은 석남선생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간 미술계 보도의 하나의 흐름이었다. 물론 탁월한 안목과 전문소양을 갖춘 기자에 의해 특정 미술전시나 미술가에 대한 정보가 문화지식으로서의 해설과 비판으로 다루어진 기사가 없지 않다.

그러나 대개의 미술기사는 어떠했나? 젊은 여성큐레이터의 학위 위조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쫒아 취재 보도하고, 작품위조나 사회적 부조리에 매개된 사건은 탐정수준으로 밀착 취재하여 국민들의 알권리에 봉사했다. 옥션의 작품낙찰가가 경신되면 다음날 문화면에 작가의 이름과 숫자기호를 올려 브랜드효과를 부풀리는 데 얼마나 신속하고 열정적이었나? 그러나, 이들 기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속성은 천민자본주의에 기댄 황색저널리즘 아닌가? 미술이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부가가치의 문화산업이요, 문화자본으로 대중에게 확산되어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 사회의 미술가치를 확대생산하는 채널이 바로 대중매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파악하고 있을 터이다. 부디 그 미술을 배태하고 생산하는 작가나 관련 인물들의 문화적 족적과 작품 속에 깃든 의미의 문맥을 대중에게 지적 문화자원으로 재생산하여 발신해야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요, 전문적 권위를 스스로 창출해가는 길임을 통감하며 보도방식의 개선과 업그레이드 해줄 것을 요망한다.

생전 온화하시던 석남선생님을 기리며 온 마음으로 명복을 기원한다.


- 2009년 12월 김영순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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