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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테크놀로지를 비평하다

이영준

모든 것이 전문화, 세분화되는 이 시대에, 비평도 전문화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예술분야의 비평을 접고 테크놀로지비평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테크놀로지라니까 사람들은 첨단기술을 생각하는데 이 세상에 테크놀로지라는 것이 꼭 첨단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는 나라에서는 아직도 로우 테크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하이 테크는 로우 테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테크놀로지비평이란 사람을 살게 해주고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그 테크놀로지에 대해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비평이다. 예를 들어 왜 사람은 자동차를 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왜 꼭 스포츠카를 타야 하는지, 왜 공장은 시커멓고 무식한 모양과 색깔로 되어 있는지, 이런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테크놀로지 비평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테크놀로지 없이는 살 수도 없고, 더 나아가 인간일 수도 없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자동차와 시계와 컴퓨터와 가스레인지가 없다고 해보자. 물론 산 속에서 나무 때며 목가적으로 며칠 살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사회인으로 있을 수도 시민으로 있을 수도 없다. 테크놀로지 비평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그 조건에 대한 해석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아트에 대해서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트의 경지에 이른 테크놀로지, 알게 모르게 우리의 감각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어서 더 이상 내쫓을 수 없는 그 테크놀로지의 국면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의 삶의 토대를 이루는 테크놀로지의 메트릭스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하다. 예술을 단일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듯이, 테크놀로지를 단일한 논리로 인간에게 해가 된다, 혹은 인간을 발전시키고 이롭게 한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신체와 눈과 감각은 이미 테크놀로지라는 물로 속속들이 염색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일상은 인사동에서 전시 구경하는 대신 공장이나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기계와 시설들을 보는 것으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곳을 다니면서 구경하다 보면 그런 것들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단지, 아직 아무도 테크놀로지의 아름다움과 숭고함과 의미 있음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감탄사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메아리치다가 끝난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얘기들을 설명하고 지지해 줄만한 이론적 패러다임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감탄사의 파장은 짧아서, 동굴벽을 이리저리 반사하다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결국 테크놀로지 비평은 그런 목소리에 긴 파장을 주어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예술비평을 포기하고 나니까 예술이 더 흥미롭게 보인다는 점이다. 역시 사물은 집착을 버린 눈에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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